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장수 리스크'를 미연에 방지하라

우재룡의 한국형 은퇴준비

내가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재산이 살아남을 것인가? 정답은 재산이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도록 노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재룡 한국형 은퇴설계연구소 소장


"몇 살까지 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은퇴 준비와 관련된 강연을 하러 가서 참석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하곤 한다. 80세와 85세 사이라고 응답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90세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5%도 채 안된다. 한두 사람이 100세 이상이라고 답하면 옆에 앉은 이들이 "뭘 그리 오래 살려 하느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며 웃곤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수명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4명 이상이 다가올 100세 시대를 '축복'보다는 '재앙'이라고 답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수명은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생명표에 따르면, 2011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81.2년(남 77.6년, 여 84.5년)으로 전년대비 0.4년 증가했다. 50대 남성의 예상수명은 79.9세, 여성은 85.8세다. 지난 10년간 매년 5개월씩 수명이 늘어난 셈이다. 선진국이 매년 3개월씩 증가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가파른 증가세다. 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하는 기대수명으로 노후를 설계해선 곤란하다.

지난해 말에 발표된 2011년 생명표는 그해에 사망 신고된 값을 집계해 추정한 것이다. 발표된 예상수명은 이미 확정된 값을 근거로 예상한 값이므로 앞으로 수명이 늘어난다는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각 연대별 평균수명이기 때문에 평균보다 더 장수한다면 틀린 값이 되어 버린다.

노후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수명을 예측하는 일이다. 가정한 것보다 더 장수하면 노후자금이나 의료비 등에서 많은 차질을 빚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삶의 질도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금융회사들이나 실버산업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막연하게 100세 장수시대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와도 5~10% 정도의 일부 국민들만이 100세를 넘겨 살게 된다. 평균수명이 100세에 육박하는 사회는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장래인구추계: 2010년~2060년'이라는 자료에서도 우리 국민의 기대수명을 2010년 현재 남자 77.2세와 여자 84.1세에서 2060년 남자 86.6세와 여자 90.3세로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50년 동안 남성은 9.4년 수명이 늘어나며, 여성은 6.2년 수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중장년층들은 매년 최소한 2~3개월씩 수명이 늘어난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재산 수명을 늘리자

은퇴자들의 가장 큰 재정적 위험은 자신의 수명보다 소득이나 자산이 더 빨리 소진되는 것이다. 은퇴자들은 '재산이 먼저 죽느냐, 아니면 내가 먼저 죽느냐'를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다. 즉 한참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는데 가진 돈을 다 써버려 빈털터리가 된다면 난감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산보다 생명이 오래 유지되는 것을 장수 위험(longevity risk)이라고 정의한다. 재정 기반 없이 장수하는 건 위험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재산의 수명이 육체의 수명보다 길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재산의 수명을 줄이는 위험요소를 파악해 방지하고, 재산 확대 전략을 동시에 펼쳐나가야 한다.

은퇴 이후 삶의 버팀목이 되는 자산이나 소득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크게 6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인플레이션이다. 지속적인 물가 상승으로 자산의 실질 가치가 하락하는 위험이다. 둘째는 거액의 의료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거나 질병에 걸려 상당한 은퇴 자산을 소진할 위험이 있다. 셋째는 치매나 뇌졸중과 같은 노인성 질환 등으로 인한 간병 비용이고 넷째는 여가시간을 보내기 지출해야 하는 취미나 여가 비용이다. 특히 은퇴 직후에는 평생 힘들게 일한 보상심리로 그동안 미뤄왔던 여행이나 취미활동을 활발하게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비용이 가파르게 증가하게 된다. 다섯째는 주가나 금리 변동 등으로 인해 연금액이 줄어들거나 투자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공시이율형 연금상품은 금리에 따라, 투자형 연금상품은 투자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연금액이 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축은행 사태에서 목격했듯, 부실금융회사에 자산을 맡겼다가 손해를 입거나 금융사기 등을 당할 수도 있다. 세계적 고령국가인 일본의 경우에도 노인을 대상으로 한 전화금융사기가 지속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원인을 안다면 처방도 있는 법이다. 앞에서 열거한 재산의 소진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책을 세워야 재산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우선 인플레이션을 막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구매력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물가연동형 연금을 구매해야 한다. 거액의 의료비를 청구할 수 있는 민간의료보험 구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은 물가에 연동하는 상품이 많지 않은 데다가, 매년 지급액을 물가상승률만큼 증가시키는 체증형 연금지급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당연히 체증형 연금은 고정금액을 지급하는 연금보다 보험료가 비싸다. 민간의료보험도 은퇴 후 평생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품인 데다가 비싸기 때문에 물가상승의 위험을 100% 회피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둘째는 거액의 의료비를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사가 제공하는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방법이나 저축, 투자를 통해 의료비를 따로 마련하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노후생활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비를 충분하게 마련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운동이나 음식조절 같은 좋은 생활습관으로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조기 건강검진으로 미연에 큰 병을 방지하는 노력도 당연히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간병비용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집에서 간병기를 보내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저렴한 방법이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수천만 원의 입주금 외에도 매월 적게는 80만~90만 원에서 많게는 15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장기간병비용을 생명보험회사의 보험으로 마련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다. 우선 상품의 종류가 많지 않고, 보험금 지급조건이 까다롭거나 정해진 기간 동안만 간병비를 지급하는 등 제약도 많다. 또한 사망보험이나 연금보험까지 결합된 상품이 주를 이루고 있어 저렴하고 간단한 상품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넷째, 취미나 여가비용의 과도한 지출을 막아야 한다. 이런 비용은 풍요로운 인생을 만드는 요소이므로 비용 측면보다는 그 의미나 보람을 추구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면 과도하게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지출되게 되고, 이는 노후자금의 고갈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미리 취미·여가 비용을 감안해 은퇴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연금보험이나 저축성 보험에서 취미·여가 비용을 인출하는 방법보다는 별도의 투자상품으로 이 자금을 마련해야 수익률이나 비용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다.

다섯째, 투자손실을 방지해야 한다. 고수익 고위험 투자전략을 사용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고, 반대로 너무 안정적으로 예·적금이나 채권형 상품을 사용하면 수익률이 저조해지는 문제점을 낳게 된다. 자신의 스타일과 재무상태에 따라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전략을 적절히 세워야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

여섯째, 금융사기를 방지해야 한다. 고령이 되면 판단력이 떨어져 남의 말을 잘 믿게 되기 때문에 사기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빚보증, 대여, 사업체 출자 등을 이용한 범죄행위를 늘 염두에 두고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은퇴 생활자는 가능하면 타인이 손을 댈 수 없도록 자산을 고정화하는 방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자산 중 일정금액을 중간에 해약할 수 없는 상품에 가입해 규칙적으로 연금을 인출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우재룡 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펀드평가대표이사, 동양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장,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을 거쳐 현재 한국형 은퇴설계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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