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촉'이 지배하는 미래의 세계 경제

돈은 머리로 버는 것이 아니라 코로 번다. 돈 냄새 나는 곳을 찾아내는 촉(觸)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촉의 기계' 스마트폰이 시각과 청각을 점령했다. 촉의 시대에 전통의 강자는 의미가 없다. 돈을 벌려면 한국에도 촉이 필요하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인간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정보를 습득한다. 미국은 인간이 시각과 청각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전기기를 만들어 대박을 냈다. 이후 가전산업 주도권은 일본과 한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인간의 뇌를 대신하는 기계, 즉 PC를 만들어 다시 전 세계 시장을 독점했다.

PC 생산이 조립가공 산업으로 전락하자 미국은 전쟁에서 사용하던 무전기를 핸드폰으로 만들어 새로운 대박 산업을 만들었다. 휴대폰이 대중화되면서 치열한 가격싸움이 벌어지자 미국은 이 사업도 다시 접었다.

그 후 스티브 잡스가 죽어가던 미국의 휴대폰 산업을 부활시켰다.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촉감의 기계로 바꾸면서 혁명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브의 사과'가 인류에게 이성을 알게 했고 '뉴턴의 사과'가 인류에게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면 '스티브 잡스의 먹다 만 사과'는 스마트혁명 시대를 개막했다.

휴대폰은 영화와 음악은 물론, 모든 디지털 데이터를 잡아먹는 괴물이 됐다. 그리고 디지털 컨버전스의 총아로 부상했다. 눈과 귀에 의존하는 기성세대에게 휴대폰은 전화기에 불과했지만 손가락 촉이 좋은 젊은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친구에서 애인을 넘어 '영혼'으로 승화했다.

잠자리에서 화장실, 식당, 지하철, 엘리베이터까지 어디서든 손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시간 날 때마다 확인하고 액정화면을 쓰다듬는 촉의 중독에 걸려든 셈이다. 마약보다 더 강한 중독이 바로 촉감으로 얻어 들인 정보의 중독이다.

북한산, 지리산, 태백산 할 것 없이 한국의 명산에는 모두 신기(神氣)가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기가 센 사람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고 그들은 변화에 잘 적응한다. 기가 강하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신기'는 신나는 '흥'과 상통한다. 이는 스마트 정보혁명이 만든 콘텐츠 전성시대에 딱 맞는 기질이다.

한반도는 해양에서 대륙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뾰족한 지형이라 할 수 있다. 기는 항상 뾰족한 곳으로 모인다. 천둥과 번개가 아무리 강해도 이를 받아내는 것은 뾰족하고 가느다란 피뢰침이다. 한반도는 서방 해양세력들이 대륙을 점령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1800년 이후 한반도가 세계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지금은 문지방을 잘 지켜야 돈이 생긴다. 인터넷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문을 지키는 포털이 모든 걸 다 챙긴다. 마찬가지로 해양국가가 대륙으로 진출하려면 문지방인 한반도를 넘어야 한다. 붉은 사회주의 중국을 접촉하기 두려운 나라는 2000년간 중국과 치고 받고 살아온 한국을 벤치마크해야 한다.

공산주의 국가 북한과 머리를 맞대고 사는 한국을 살펴보면 중국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중국에서 자동차와 핸드폰을 팔아 떼돈을 버는 한국은 중국진출이 두려운 서방세계에게 좋은 플랫폼 국가가 될 수 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기울고 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지만 돈은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흐른다. 성장률이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금리가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흐른다. 지금 세계의 돈이 아시아로 모이고 있다. 세계의 공장과 석유가 모두 아시아에 있기 때문이다. 페트로 달러와 차이나 머니는 세계 유동성의 저수지다. 선진국은 모두 무역 적자국이고 아시아는 흑자국이다.

이제는 아시아에 대한 촉을 누가 갖느냐가 부의 향방을 가른다. 아시아는 지난 2000년간 쌀을 주식으로 하며 유교와 한자의 영향을 받아왔다. 먹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 사람은 상대의 촉을 읽기도 쉽다. 한국은 중국에서 사회주의와 함께 사라져버린 공자문화의 원형을 지방 향교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나라다. 중국에서 사라진 것을 한국이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가 중국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중국 건국기념일 등 주요행사에 반드시 등장하는 중국의 대표적 군가, 팔로군행진곡의 작곡자는 한국인 정률성이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북경 혁명열사 묘역에 안장된, 중국이 인정하는 대표적 음악가다.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내림인지도 모른다. 한국은 2000년간 중국과 치고받고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중국인을 감동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촉을 만들어왔다.

'폴더 시대' 휴대폰 강자였던 핀란드 노키아는 한방에 무너졌다. '촉의 시대'를 연 애플은 세계최대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회사로 올라섰다. 촉의 시대가 만들어낸 의도하지 않은 대박이었다.

근력이 아니라 염력(상상력)이 진짜 힘인 시대가 바로 촉의 시대다. 다른 사람의 촉감을 먼저 읽고, 건드리는 이가 성공한다. 애플 앱스토어와 갤럭시 장마당은 놀이터이면서 일자리이고 황금을 캐는 돈벌이 장소다.

친절하고 쉽고 재미있는 앱이 대세다. 아이디어 하나면 단박에 70억 고객을 만들 수 있는 황금벌이가 생긴 것이다. 먼저 다른 이의 마음을 읽어 세상의 흐름을 보고, 큰 흐름을 타면서 멀리 내다보는 포석을 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인 셈이다.

기(氣)가 센 한반도의 촉, 애플을 때려 눕힌 삼성의 아이디어 촉, 흥에 넘치는 싸이의 신명 촉, 그리고 중국인의 마음을 읽어 내는 한국인의 촉을 제대로 키우고 연결시켜 돈벌이로 엮으면 그것이 바로 창조경제다. 수조 원짜리 설비투자 없이 종이와 연필, 사람만 가지고도 아시아의 돈을 한국으로 끌어 모으는 비법이 될 것이다.


전병서 소장은…
대우증권 리서치본부장과 IB본부장을 역임했다. 한화증권 리서치본부장을 거쳐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원 중국경영학과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 칭화대 경제관리학원(석사), 푸단대 관리학원(석사·박사)에서 공부한 그는 현재 중국 자본시장 개방과 위안화 국제화, 중국 성장산업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저서로는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 '5년 후 중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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