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교보문고 전자책 대여 서비스의 허와 실

교보문고가 최근 전자책 대여서비스를 시작했다. 정체된 전자책 시장에 활력을 가져올 수 있을까?
차병선 기자 acha@hk.co.kr


어릴 적 서점에서 책을 읽다 보면 으레 주인이 와서 한마디씩 했다. "서점에 왔으면 책을 사야지. 앉아서 책 읽으려면 도서관에 가라. 만화방에 가서 빌려보든가."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일부 책에 비닐을 씌워 아예 펼쳐보는 것조차 금지하기 시작했다. 서점은 그런 곳이다. 책을 파는 곳이다. 그런 서점이 책 대여 서비스에 나섰다는 건 이 업계가 얼마나 큰 변혁기에 놓여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방증이다.

교보문고가 2월 말부터 전자책 대여 서비스 '샘(Sam)'을 출시하고 나섰다. 소비자가 연간 약정을 맺고 1만5,000~3만5,000원가량의 월정액을 내면 매달 5권에서 12권까지 빌려준다. 한 권당 약 3,000원에 대여하는 셈. 실제 종이책 값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와 함께 전자책 단말기도 함께 출시했다. 도서 대여 약정을 맺으면 단말기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교보문고가 대여 서비스에 나선 건 일종의 극약처방이었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의 진영균 씨는 말한다. "전자책이 국내에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시장은 여전히 정체 상태입니다.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않고 있어요." 진 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상당수 소비자들이 전자책 가격이 비싸다고 인식하고 있어요. 또 전자책으로 변환된 책 종류도 종이책의 15.3% 정도에 불과하죠." 교보문고가 밝힌 바에 따르면 2012년 전자책 매출은 약 140억 원으로, 회사 전체 매출의 3%가 채 안되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수수방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로벌 전자책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국내 역시 머지않아 이 추세를 따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놓은 '세계 전자책 시장 현황과 이슈 분석'을 보면, 전자책 시장은 2011년 55억 달러에서 연평균 30%씩 성장해 2016년에는 208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국내에서도 올해 전자책 시장이 지난해보다 2.5배 늘어난 4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교보문고로선 어떻게든 기선을 잡고 싶었을 것이다.

전자책 업계가 당면한 문제는 이른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문제다. 출시된 전자책이 적으니 찾는 이가 적고, 찾는 이가 적으니 출시되는 전자책도 적다. 교보문고는 대여 서비스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허정도 교보문고 대표이사는 샘 출시 행사에서 대여서비스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내 최초로 실시하는 샘 서비스는 전자책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사회적으로 독서인구를 늘리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독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출판사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수익을 발견하고, 서점은 새로운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어 독자, 출판사, 서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샘 서비스를 통해 위기에 빠진 종이책 시장을 견인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시장 여파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도 몇몇 전자책 업체가 책 대여 서비스를 제공했던 적이 있지만, 교보문고 같은 메이저 업체가 전면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샘 출시와 함께 대대적인 광고에까지 나서고 있어 바람몰이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출판계는 술렁이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출판 생태계 위협하는 회원제 전자책 서비스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샘이 무한 가격 할인 경쟁을 촉발해 출판 시장 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렇다고 모든 출판사가 반대를 하는 건 아니다. 교보문고 측에 따르면, 230여 개 출판사가 샘 서비스에 나섰는데, 그중에는 출판인회의 회원사도 있다. 위즈덤하우스, 길사, 웅진씽크빅 같은 출판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책을 내는 출판사가 약 2,300 여 곳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은 적은 숫자다. 진영균 씨는 말했다. "실제론 대부분이 사태를 관망하며 시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 반응은 어떨까? 교보 측에 따르면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다. 진영균 씨는 "구체적인 가입자 수를 밝힐 순 없지만, 당초 예상보다는 빠르게 회원 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도서분야와 독자 층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김상훈 교보문고 e비즈니스본부장은 설명한다."샘 출시 이후 3월 초까지 전자책 이용현황을 분석해본 결과 큰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기존 전자책 시장은 장르소설 콘텐츠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어요. 이를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죠. 하지만 샘 서비스 출시 이후 문학, 자기계발, 인문 분야 등으로 이용자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있어요." 샘 서비스 중 가장 많이 읽힌 책은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이다. 뒤를 이어 박영숙의 '유엔미래보고서 2030', 김미경의 '흔들리는 30대를 위한 언니의 독설', 박광수의 '광수생각' 등이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아쉬움을 드러내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샘 회원이 대여할 수 있는 전자책이 한정돼 있다. 교보문고가 보유한 전자책은 약 13만 권 정도인데, 이 중 샘 서비스가 적용되는 전자책은 1만 7,000여 권밖에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대여서비스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한 달에 책을 다섯 권 읽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그만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책을 사서 보죠. 또 막상 대여해보려 해도 독서광을 만족시킬 만큼 책 구성이 다채롭지 않아요." 이에 대해 교보 측은 "최신 서적과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점차 서비스를 보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회원을 확보하려면 좀 더 명확한 원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덧붙인다. "예를 들어 베스트셀러 10권은 무조건 대여가 가능하다는 등의 원칙이 있다면 소비자들의 구미가 당길 겁니다. 하지만 중구난방 식으로 대여가 된다면, 소비자 신뢰를 얻기 어려워요. 어떤 책을 빌릴 수 있을지 모르는데, 누가 매달 돈을 꼬박꼬박 내고 싶겠어요." 교보문고가 풀어야 할 숙제는 아직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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