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로펌업계 ‘경제민주화’ 특수 누린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전부터 강조했던 ‘경제민주화’가 정책으로 구체화되면서 법무법인(로펌)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로펌들은 정부 정책에 대비하려는 대기업의 ‘방패’ 역할을 맡으면서 특수 맞이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경제민주화’가 로펌들에게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블루 오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조양준 서울경제 사회부 기자 mryesandno@sed.co.kr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적 약자를 확실히 돕는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골목상권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집행체계의 획기적 개선 ▲비정규직 차별해소 ▲조세와 재정 정책의 소득 재분배 제고 및 효과 제고 등을 경제민주화 방향으로 천명했었다. 또 대기업 집단의 장점은 살리고, 잘못된 점은 반드시 바로잡겠다면서 ▲대기업 경영자의 불법행위와 총수 일가 사익 편취 행위 엄격 대처 ▲기업지배구조개선 ▲금산분리 강화를 약속했다.

정부의 경제민주화는 주로 세무조사 강화,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의 분야로 집중된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대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 제재가 대폭 강화되고, 7월부터 일감 몰아주기 과세가 단행되면 기업의 법률 수요는 지금보다도 커질 수밖에 없다.

김현진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최근 경제민주화로 기업이 겪게 될 예상 법률 이슈를 정리해 자료를 배포했다. 우선 증여세와 관련, ▲업종 고려 없는 일률적인 정상거래비율 문제 ▲자기증여에 대한 과세 적정성 ▲완전포괄주의에 의한 증여세 과세 문제 ▲이중과세(배당소득) 문제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 문제 등이 있다. 공정거래 법률 이슈로는 ▲물량 몰아주기 규제 강화의 입증책임 전환 및 형사처벌 강화 ▲하도급법 위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 확대 ▲공정거래 관련 법 위반죄에 대한 고발 주체 확대 등을 꼽을 수 있다.

김 대표변호사는 “대기업의 경우 법무팀 등을 통해 경제민주화 이슈에 상당 기간 준비하고 있지만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재무팀이나 기획팀 등에서 조세에 한정하여 대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일감을 받는 수혜법인뿐 아니라, 일감을 몰아준 법인 역시 공정거래법상의 과징금 등이 문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조세 뿐 아니라 공정거래법상의 ‘물량몰아주기’, 회사법상 ‘회사의 기회유용 금지 규정’, 형사상 ‘업무상 배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법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형 로펌들 TF 가동해 다양한 법률 수요 대비

기업들의 법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로펌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대형 로펌들은 앞으로 밀려들 수요에 대비해 전문 팀을 꾸리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빠른 곳은 1년 전부터 변호사·회계사·변리사 등 전문 인력을 모아 팀을 꾸렸으며, 대선 후보 공약을 분석하고 외국 사례를 수집해 왔다.

법무법인 태평양과 세종은 ‘경제민주화 관련 태스크 포스(TF)’를 따로 꾸릴 정도로 적극적이다. 태평양은 지난해 8월 조세·공정거래·금융·형사 등 각 분야 전문가 20여 명으로 TF를 구성했다. 크게 조세 그룹과 공정거래팀으로 구분된다. 조세 그룹에서는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된 기업의 세금 문제 자문, 세무조사·조세소송 대리 등을 맡는다. 지난해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소송에서 대형마트 측을 대리했던 한위수 변호사와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김종필 변호사 등이 팀을 이끈다. 공정거래위원회 전문위원 출신의 오금석 변호사 등이 이끄는 공정거래팀은 4대강 사업 입찰 담합 사건에서 기업을 대리하기도 했다.

세종은 지난해 5월부터 20여 명의 조세·공정거래 분야 변호사·회계사 등으로 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역시 조세팀과 공정거래팀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조세팀은 조춘·김현진 변호사가, 공정거래팀은 서울고법 판사 출신의 임영철 변호사가 총괄을 맡았다. 특히 세종은 지난해 공정위가 꼽은 10대 중요 사건 대부분을 ‘싹쓸이’하면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법무법인 율촌은 따로 TF를 구성하는 대신 공인회계사·세무사·관세사 등 총 60명의 전문가로 조세 그룹을 강화했다. 율촌은 경제민주화, 특히 조세 강화와 관련돼 기업이 받을 영향에 대해 법적인 검토를 끝마쳤다고 밝혔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으로 율촌 조세팀장을 지낸 소순무·강석훈 변호사가 팀을 주도한다.

법무법인 화우는 지난 3월 대기업 법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경제민주화 관련 세미나를 열었고,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응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 중이다.

대형로펌ㆍ회계법인 경쟁적으로 인력 충원 나서

로펌들은 새 정부 특수를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인력 충원에 나서고 있다. 공정거래 담당 인력 100여 명, 조세 담당 140여 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올 들어 전 국세청 납세자보호관(국장급) 이지수(49·여) 변호사, 전 조세심판원 조사관 최정미(42·여) 변호사를 영입했다. 광장은 김교식(61) 전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을 스카우트했다.

세종은 최근 국세청 조사국 출신의 임종현 세무사, 공정위 시장감시본부 출신인 이규석 전문위원을 영입할 정도로 의욕적이다.

율촌은 최근 채경수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조세 전문가들을 합류시켰다. 율촌 조세 그룹은 삼성전자를 대리해 반도체 DDP(Dual Die Package)에 부과된 285억 원의 관세부과처분취소 소송을 승소로 이끌기도 했다.

다른 대형 로펌들도 공정위·국세청 출신 변호사뿐 아니라 공무원·회계사·세무사·변리사 등 다각적으로 인력 충원을 하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대기업들은 지배구조 개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면서 “이미 지배 구조 개선안 자문을 받은 대기업이 있으며, 다른 기업들도 자문을 구해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형 로펌 관계자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들도 다수 자문을 하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슈가 터지고 나서 준비하면 이미 늦다”며 “업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이나 법안 등에 대한 업계의 동향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게 로펌 생존 전략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로펌만 경제민주화 특수에 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형 회계법인들도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 단행으로 ‘대박’을 노리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일·삼정·안진·한영 등 대형 회계법인들은 경제민주화로 세무 관련 일거리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인력충원 등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현재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의 세무자문 인력은 530여 명에 달하며, 다른 대형 회계법인들도 이에 못지않은 인력을 갖추고 있다.

로펌과 회계법인은 경제민주화 특수 대비를 위해 ‘손님 맞이’에 분주한 모습이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커지고 있다. 로펌의 기업 변호가 세금을 안 내려는 기업의 ‘꼼수’를 없애고 불공정 거래 행위를 바로잡자는 경제민주화에 오히려 역행한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기업이 낸 과징금을 오히려 정부가 돌려줘야 하는 과징금 환급률이 2009년 42%에서 2010년 58%, 2011년 55%로 늘어났다. 과징금 부과 못지않게 공정 거래 소송에도 정부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이 국세청, 공정위 출신 전관들을 싹쓸이 해오며 전관들에게 정부기구와 법인 간 터미널을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는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며 ‘전관 예우’를 부추긴다는 지적 역시 피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유명무실한 전관예우금지법 대신 판·검사를 포함한 4급 공무원이 퇴직 후 로펌에 갈 때 취업 심사를 강화하자는 공직윤리법 개정안 논의가 한창인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대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 제재가 대폭 강화되고, 7월부터 일감 몰아주기 과세가 단행되면 기업의 법률 수요는 지금보다도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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