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산업을 초토화시킨 온라인이 지금 방송 시장을 노려보며 군침을 삼키고 있다. 클라우드와 빅데이터를 이용한 예측형 분석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차병선 기자 acha@hk.co.kr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미디어 빅뱅이 시작됐습니다.” 빌 휘튼 아카마이 미디어 사업부 수석 부사장이 미디어 산업에 닥쳐올 빅뱅을 예고했다. 포춘코리아는 6월 21일 서울 역삼동 아카마이 본사에서 빌 휘튼 부사장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아카마이는 세계 최대 CDN (Contents Delivery Network) 기업으로 인터넷 콘텐츠를 안정되고 빠르게 전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빌 휘튼 부사장은 미디어 콘텐츠 분야에서 애플, 페이스북, 소니, 방송사 등을 주요 고객으로 CDN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빌 휘튼 부사장은 먼저 최근 트렌드를 말하며, 현재의 산업 모델이 바뀔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동영상이 웹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인터넷 트래픽의 90%가 동영상으로 채워질 겁니다. 모바일 디바이스 역시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어요. 이 같은 변화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동영상을 시청하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고객은 보다 고화질의, 보다 빠른 동영상 스트리밍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미디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게 된다.
예상 가능한 변화는 푸시 Push 네트워크의 등장이다. 현재 네트워크는 풀 Pull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즉 유저가 영화 다운로드나 플레이 버튼을 클릭해야, 비로소 서버가 동영상 자료를 단말기로 전송한다. 푸시 방식은 그 반대다. 유저가 클릭하기 전에 서버가 자료를 미리 단말기로 전송해 저장시킨다. 클릭도 하기 전에? 그렇다. 이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 내가 오늘 밤에 어떤 영화를 다운받아볼지 심지어 나조차도 잘 모르는데?
네트워크가 그만큼 똑똑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과거에 내가 영화 ‘다이하드’ 시리즈를 모두 봤다면, 새로운 시리즈가 나왔을 때 이를 시청할 확률은 매우 높다. 또다른 예로, 내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전날 밤 블룸버그의 증권 방송을 다운받아 본다면, 내일도 같은 방송을 받아보리란 걸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푸시는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 행동을 예측하는 ‘예측형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예측형 분석은 오래전부터 회자돼 온 미래기술이지만 클라우드와 빅데이터를 통해 한층 더 실현 가능해졌다. 클라우드에 유용한 데이터가 축적되고, 빅데이터가 이를 분석해 더욱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다.
예측형 분석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능케 한다. 영화나 방송 매체에도 추천형 비즈니스를 도입할 수 있다. 현재 아마존 등에서 사용하는 추천엔진과 유사하지만, HD급 고용량 자료에 적용되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유저의 습성과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어 타깃형 광고가 더욱 용이해진다. 이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TV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효과다. 온라인이 가진 강점이다.
물론 푸시 네트워크나 예측형 분석이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푸시 네트워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는 사실이다. 새 네트워크를 증설하는 것보다 비용이 상당히 절감되기 때문이다. 빌 휘튼 부사장은 말한다. “고화질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6년이 되면 대부분의 콘텐츠는 HD가 될 겁니다. TV방송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될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네트워크 망으로는 프라임 시간대 트래픽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푸시 방식은 이미 소규모로는 구현되고 있다. 새로운 게임이 나오거나 영화가 나왔을 때, 게임 서버는 다운로드 매니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미리 조금씩 PC에 저장해 놓는다. 나중에 유저가 클릭하면 따로 다운로드할 필요없이, 곧 바로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대규모로 활용하려면 네트워크의 능력이 더욱 개발되어야 한다. 빌 휘튼 부사장은 “3년 이내에 대규모 푸시가 상용화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다른 변화는 온라인 미디어의 부상이다. 온라인 미디어가 TV 기능을 일부 대체하게 된다. 이미 일부 구현되고 있다. 물론 인터넷이 방송을 완전히 집어 삼키는 건 아니다.
빌 휘튼 부사장은 말한다. “방송사가 가진 콘텐츠 제작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신문처럼 맥 없이 넘어질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신문은 복제 변형 재생산이 용이한 활자를 매체로 삼고 있지만, 동영상은 변형이 어려워 원작자의 저작권을 잘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사가 누려온 콘텐츠 중계자(Provider)로서의 기능은 큰 도전을 받고 있다. 다양한 산업에 도전장을 내며 챔피언 벨트를 노리고 있다. 가장 선도적인 건 애플이다. 애플은 아이튠즈에서 동영상을 사고 파는 뛰어난 성공모델을 제시해 운영하고 있다. 네트워크 회사는 IPTV를 통해 콘텐츠를 판매하고 있다. 인텔은 셋톱박스를 출시해 가상의 케이블TV 운영사가 되려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는 X박스와 플레이스테이션을 단순 게임기가 아닌 미디어 허브로 확대시키고 있다. 스마트TV를 생산하는 애플, 구글, 삼성, LG 등은 두말할 나위 없다. 방송의 고유 영역이던 콘텐츠 중계 시장이 이제는 세계 굴지 IT기업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콘텐츠가 온라인으로 옮겨오면 광고와 자본도 따라올 수밖에 없죠. 이 시장을 누가 잡게 될까요?” 빌 휘튼 부사장은 말한다. “미디어 분야에서 14년간 일해왔지만 지금처럼 흥미진진한 시기는 없었습니다.”
빌 휘튼 부사장은 한국 기업이 가진 강점과 역량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인이 사랑하고 선택하는 디바이스를 제작하는 국가입니다. 우리는 한국 기업과 긴밀히 협력해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방한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현재 국내 기업과 콘텐츠 가속화 장치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동영상 자료 전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가속 장치를 아예 기기 내부에 장착시켜 출시할 계획이다.
협력사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지만, 갤럭시5나 옵티머스 프로 차기 버전에 적용되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다. 가속화 장치를 스마트 TV나 다른 단말기에 적용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한국 기업은 기기 제작에 탁월한 만큼, 이를 바탕으로 차세대 미디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한순간에 뒤처질 위험도 주의해야 한다.
방송의 고유 영역이던 콘텐츠 중계 시장이 이제는 세계 굴지 IT기업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