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어떤 CEO의 가장 어려운 선택

[TECH STAR] A CEO’S HARDEST CHOICE

라스 댈가드 Lars Dalgaard는 34억 달러에 석세스팩터를 SAP에 매각했다. 당시 두 살이던 아들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by Adam Lashinsky

지난 5월 24일 금요일 아침, 당시 석세스팩터의 CEO였던 라스 댈가드는 짙은 색 양복에 상아색 넥타이를 매고 수백 명의 직원들 앞에 서 있었다. 평소 간편한 복장을 즐기는 댈가드는 두서 없는 타운홀 미팅 식의 연설로 유명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연설이었다. 이날 아침 일찍 SAP-이 독일 소프트웨어 대기업은 18개월 전 34억 달러에 석세스팩터를 인수했다-는 댈가드가 석세스팩터 CEO와 SAP의 클라우드 사업 부문 대표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댈가드는 직원들에게 “벤처 캐피털 회사 투자자가 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그의 뒤로는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른 곳에서 일하라’는 사인이 보였다. 댈가드가 가장 좋아하는 인용문 중 하나였다. 흔한 실리콘밸리 이야기의 결말이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회사를 매각한 CEO 중 3분의 2 이상이 2년 내에 합병 회사를 떠난다.

올해 45세인 댈가드는 SAP의 영향력 큰 이사 자리를 받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그가 상대적으로 조용한 SAP의 기업 문화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가 SAP를 떠난 데에는 보다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린 아들이 신체의 조혈조직을 파괴하는 혈액암인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댈가드의 이야기는 CEO가 일과 가족간의 균형을 맞출 때 직면할 수 있는 어려운 선택의 극단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크게 정신을 차리게 됐다”고 말한다.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실제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댈가드는 자기 생각을 서슴없이 말한다. 190cm가 넘는 장신에 덴마크 혈통으로, 유니레버 CEO를 역임한 댈가드는 솔직담백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몇 차례나 직원들 앞에서 운 적이 있다. 댈가드는 2001년 망해가던 인적자원 관리소프트웨어 회사 석세스팩터를 인수한 후 거대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로 변모시켰다. 2007년에는 주식 상장에도 성공했다. 2011년 12월 3일 SAP는 34억 달러에 석세스팩터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수십 년간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든 SAP는 몇 년간 클라우드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클라우드 전도사’로 거듭난 댈가드는 덕분에 SAP 이사진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새로운 회사에서 처음 몇 달간 전 세계를 누비며 직원과 고객들에게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의 ‘복음’을 전파했다.

댈가드는 2012년 5월 캘리포니아 주 말리부 Malibu에서 짧은 가족 휴가를 보내고 다시 여행가방을 꾸렸다. 독일 만하임 Mannheim에서 열리는 SAP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틀 동안 원래의 활기찬 모습을 잃어버린 아들 라스 주니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의 몸에는 작고 붉은 반점들이 생겨났고, 전혀힘이 없는 상태였다. 댈가드는 “아들이 녹아버린 브리 치즈 같았다”고 회상한다.

당시 임신 중이던 여자친구가 라스 주니어를 가까운 응급실로 데려갔다. 잠시 후 댈가드는 공항행 리무진을 타고, 탑승 수속을 밟아도 될지 확인하기 위해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댈가드는 “‘상태가 어때’라고 물었다. 나는 여전히 사무적이었다”고 말했다. UCLA 의료 센터의 의사들은 아이의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백혈병의 징후였다. 댈가드는 여행가방을 내팽개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6시간 후에 그는 아들의 몸에 어떤 강한 화학요법을 적용해야 할지 선택해야 했다. 의사들은 빠른 결정을 원했다. 화학치료는 빠르게 증식하는 비정상적인 혈구를 죽이지만 정상 혈구도 파괴할 가능성이 있었다.

석세스팩터에서 댈가드는 화려한 격려 연설로 유명했다. 직원들을 크리스마스 이브까지도 일하게 하는 까다로운 상사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다른 많은 CEO들이 그렇듯, 댈가드도 거의 자지 않고 전용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하는 일벌레였다. 하지만 아들이 아프자 곧바로 SAP의 공동 CEO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임을 통보했다. 그들은 댈가드를 말렸다. 몇 달간 얼굴을 볼 수 없어도 좋으니 회사에 남으라고 설득했다. SAP의 공동 CEO인 빌 맥더못 Bill McDermott은 그에게 “‘아들, 가족들과 함께해라. 당신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겠다. 회사 일 때문에 비행기를 탈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고 회상했다.

백혈병에 걸린 아이의 생존율은 90% 이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그러나 긴 치료를 견디다 보면 면역 체계가 망가지고 신체에 큰 피해가 간다. 라스 주니어는 치료 초기 몇 달간 다우노루비신 daunorubicin, 페가스파가제 pegaspargase, 메토트렉사트 methotrexate 같은 발음하기도 힘든 항암제들을 투여 받았다. 척추에 직접 주사해야 하는 약물도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아이와 함께 병원에서 200일을 보낸 댈가드는 “말 그대로 아이를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래야만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라스 주니어가 한밤중에 깨어 소리를 지르며 몸에 연결된 많은 튜브를 뽑으려고 하면, 댈가드는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를 진정시켰다. 간호사, 암 연구자, 혈액의, 마취의들이 아들을 ‘찌르는’동안 댈가드는 항암치료로 인해 독소가 차 있는 든 대변 기저귀를 갈며 그의 작은 손을 잡았다. 병원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 수백 개의 레고 세트와 책을 사기도 했다. 라스 주니어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자 댈가드도 머리를 밀었다. 그는 “아이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이가 외부세계를 두려워하는 비사회적인 사람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여러 부작용에도 라스 주니어는 치료에 잘 적응했다. 댈가드는 말리부에 집을 마련했다. 가족들은 병원에 붙어 있지 않을 때 잠깐이나마 쉴 공간을 갖게 됐다. 댈가드도 가끔 회사 일로 ‘도피’할 수 있었다. 그는 집에 화상회의실을 설치해 SAP 이사회에 참석했고,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댈가드는 “일을 하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됐다. 회사 일과 아들을 돌보는 일, 딱 두 가지만 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른 겨울 무렵 댈가드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건강한 여자 아이를 낳았다. 칼리시 애너리사Khaleesi Annalisa라고 이름을 지었다(‘왕좌의 게임’ 시리즈 등장인물의 이름을 따왔다). 라스 주니어는 여전히 병원을 들락거리며 치료를 받았지만 희망이 보였다. 심지어 머리카락도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댈가드는 최악의 상황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가족의 삶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 댈가드는 가족들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댈가드는 “실제 다시 사회 생활로 들어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라스 주니어는 그 집에서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었지만 힘이 없고 더위를 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결국 몸에 열이 났다. 면역력이 떨어진 어린 아이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었다. 댈가드는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그 후 며칠간 라스 주니어는 평상시 복용하던 항암제 외에 링거로 항생제를 맞았다. 면역 체계는 더 악화됐다. 불안정한 상태에 빠져 바늘만 보면 비명을 지르고 소리쳤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전히 병원에 있던 댈가드는 아들 병실에 있는 큰 화이트보드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렸다(실내에는 식물을 둘 수 없었다). 트리 위에 별을 그리고 작은 장난감과 스티커를 붙였다. 댈가드는 “심한 무력감을 느끼면 그나마 뭔가 할 수 있는 일에 매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따뜻했던 5월 초 어느 날, 댈가드는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South San Francisco에 있는 석세스팩터 사옥에서 자신의 주특기인 타운홀 미팅 스타일의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기 얼마 전이었다(또한 댈가드가 SAP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3주 전이었다). 마침 회사에 “아이를 데려오는 날”이었다. 라스 주니어는 최소 열 명이 넘는 다른 직원들의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난 아이는 유모에게 달라 붙어 뒤편에 서 있었다. 댈가드는 평소처럼 즉흥적으로 직원들이 어떻게 자신의 일을 사랑해야 하는지 연설한 뒤, 마이크를 석세스팩터의 최고 인력관리 책임자에게 넘기고 얼른 방을 가로질러 가서 아들을 안았다. 라스 주니어는 이제 호전된 상태라고 알려져 있다(현재는 세 살이고 앞으로 3년간 상태 유지를 위해 항암제를 맞아야 한다).

댈가드의 오랜 친구이자 덴마크에 소재한 부동산 자산관리회사의 CEO인 예스퍼 툴린 Jesper Tullin은 “그는 상황을 똑바로 보게 됐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 처하기 전에는 누구나 적당한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알게 됐다.” 댈가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만큼 여유가 있고, 돈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아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주저 없이 인정한다. 하지만 은퇴할 생각은 없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석세스팩터 사옥으로 출근하며 “SAP의 클라우드 사업 고문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 캐피털 회사 앤드리슨 호로비츠 Andreessen Horowitz는 최근 댈가드를 제너럴 파트너로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회사의 공동 설립자인 벤 호로비츠 Ben Horowitz는 “우리는 수천 번 다시 회사를 만들어도, 같은 방식으로 회사를 창업할 사람을 원한다”고 말했다. 세일즈포스닷컴의 CEO 마크 베니오프 Marc Benioff는 “라스는 다른 회사를 설립할 것이다. 열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사실 댈가드 자신도 투자자라는 새로운 역할로 인해 “수백 개의 석세스팩터를 창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준비가 됐고, 아들 덕분에 감정을 살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 5월 24일 전 직원이 모인 가운데 사임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댈가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우라고 조언했다. 라스는 직원들에게 “(SAP에서) 여러분의 일과 삶이 좀 더 정상적으로 균형을 이뤄도 좋을 것 같다. 나는 매일 여러분을 죽도록 닦달했다. 하지만 가정을 갖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아들, 가족들과 함께 해라. 당신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겠다. 회사 일 때문에 비행기를 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빌 맥더못, SAP 공동 CEO

“아이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이가 외부 세계를 두려워하는 비사회적인 사람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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