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제조업체 혼다의 뛰어난 엔지니어링 기술도 경제적 대격변과 지진, 홍수에서 회사를 지켜내지 못했다. 이제 혼다는 좀더 광범위한 사업 기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Alex Taylor III
로봇 미모 Miimo가 혼다 캘리포니아 지사 -로스앤젤레스 서부에 위치해 있다-의 작은 잔디밭에서 열심히 잔디를 깎고 있다. 전기동력으로 가동되는 장식용 쿠션만 한 이 로봇은 제 맘대로 여기저기를 다니며 조용히 잔디를 깎고 있었다. 이 로봇을 작동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 로봇의 활동범위는 매립케이블에 의해 제한된다. 미모는 미식축구 경기장 반 정도 크기의 잔디밭을 깎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따금 충전스테이션으로 이동해 배터리를 충전한다. 미모는 혼다 R&D 엔지니어들의 창작물이다. 혼다는 북미에 14곳의 R&D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오토바이와 다른 종류의 차량도 개발한다.
그중 하나인 미모가 잔디 깎기에서 뛰어난 성능을 증명할 날이 머지않았다. 이곳에서는 약 1,100명에 달하는 엔지니어들이 암호로 통제된 사무실에서 연구한다. 신차를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다른 직원들은 이 사무실에 접근할 수 없다. 혼다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둬야 할 점은 R&D가 이 회사의 심장과 영혼이라는 것이다. 혼다는 저배기량 엔진(small displacement engine)에 정통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애니마트로닉 로봇 animatronic robot *역주: 영화 등을 위해 만든 사람이나 동물을 닮은 로봇과 작은 제트기는 물론, 자가통제 잔디깎기 기계 같은 엔지니어링의 결과물들도 혼다의 강력한 기업문화를 상징한다. 혼다는 최고급 엔지니어링 제품을 출시해왔다. 1970년대 출시한 저공해 자동차엔진인 CVCC엔진을 비롯해 1999년 출시한 최초의 하이브리드 가스·전기 동력전달장치부터 2014년형 어큐라 RL. X 2014 Acura RLX의 정밀 사륜조향장치(precision all-wheel steering)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한 바 있다.
혼다의 R&D 노력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이 회사는 자사 차량이 판매되는 해외시장에서 새 모델을 출시하는 최초의 자동차 업체가 되었다. 뛰어난 엔지니어들을 보유한 덕분에, 혼다 차량-최소한 혼다 어코드 Accord가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일본 차가 된 1982년부터-은 효율적인 포장과 직관적인 인체공학, 그리고 품질과 신뢰성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하지만 혼다의 성공에는 단점도 있었다. 혼다 그 자체가 유명해지면서, 다른 상업적 특성을 개발할 필요가 없어졌다. 즉, 기억에 남는 디자인이나 고객들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해줄 현명한 마케팅 전략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다. 혼다 광고는 20년 이상 단 한 곳의 에이전시가 맡아 진행하면서 결국 정체되고 말았다. 마케팅은 주로 레이싱 팀을 지원하는 것이 전부였다. 혼다의 프리미엄 브랜드 어큐라는 고급스러운 이미지 같은 무형의 특징을 추구하는 명품 구매자들과 연결되지 못했다. 혼다의 엔지니어링 문화에선 기술만이 모든 질문의 답이었다.
동시에 혼다는 더 많이 성장하고, 기업구조는 더 복잡해졌다. 혼다는 1984년 미국 오하이오주 매리스빌 Ohio Marysville에서 단일 제조업체로 시작해 북미사업을 계속 확장한 결과 7개의 엔진, 변속 및 제조 공장과 12개가량의 부품공장을 세우게 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매년 19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한다. 규모가 확대되면서 협업도 어려워졌다. 혼다가 일본에서 2번째, 전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자동차 제조업체로 성장하면서, 소위 일본에서 ‘대기업 병(big company disease)’으로 불리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혼다의 2013년 회계연도가 끝난 3월 31일 기준으로, 회사 매출은 무려 1,190억 달러에 이르렀다.
혼다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08년 경제위기 때였다. 당시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하자 혼다는 예산을 삭감하기 시작했다. 혼다는 어큐라 라인을 V8 및 V10 엔진과 후륜구동 플랫폼을 바탕으로 고급화하려는 계획을 철회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 대회 포뮬러 1에서도 철수했고, 9만 달러짜리 주력상품인 NSX 스포츠카의 디자인 변경 계획도 포기했다. 또 인기 소형차인 2012 시빅의 출시를 미루고, 기존 부품을 더 저렴한 부품으로 바꿔 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런 결정은 후에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다. 현대와 기아가 공격적인 판매에 돌입하면서 혼다의 허를 찔렀다.
그리고 곧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지진이 발생하는 바람에 5개 이상의 혼다 공장이 조업을 중단해야 했다. 한 달 후 태국에서 발생한 홍수로 부품 공급업체들도 타격을 입었다. 혼다는 한마디로 몸져 누운 상태였다. 이와무라 테츠오 Tetsuo Iwamura 혼다 미국지사 사장 겸 CEO는 “우리가 재해와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일본 경쟁사들을 포함한 여러 라이벌 업체들이 우리의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재해는 엄청난 장애 요인이었다”고 회상했다. 혼다는 6개월 동안이나 생산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혼다는 가파르게 쇠락했다. 어큐라의 시장 점유율은 2009년 11.1%로 정점에 달한 후, 2010년엔 10.7%, 지진이 발생한 2011년엔 9%로 떨어졌다. 틈새시장을 노린 일체형 혼다 리지라인 Ridgeline 픽업트럭과 크로스투어 왜건 Crosstour wagon의 시장점유율은 거의 0%대로 떨어졌다. 혼다는 엘리먼트 밴 Element Van의 생산을 중단해야 했다. 혼다 차가 소비자들의 구매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 업계에선 ‘오랫동안 구매자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던 혼다가 이제 매력적인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혼다의 마력은 이제 사라진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다.
2011년 지진 피해가 광범위하게 나타난 곳은 일본 도치기 Tochigi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도쿄에서 북쪽으로 80마일 떨어진 곳으로 다수의 혼다 공장이 위치해 있다. 당시 혼다 R&D 센터에서 1 명이 사망하고, 30명 이상이 다쳤다. 지진 발생 이틀 후 피해규모를 알고 싶었던 혼다의 이토 타카노부 Takanobu Ito 사장 겸 CEO는 대중교통이 모두 파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엔지니어 출신인 이토 사장(57)은 통근할 때 이용했던 1,100cc 혼다 CB1100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내부 사람들은 후에 이를 “혼다 운명의 전환점”이라고 불렀다.
이토는 전공과 경험 면에서 혼다 사장을 지낸 6명의 전임자들과 닮은꼴이다. 그는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R&D부서에서 승진한 엔지니어 출신 사장이다. 하지만 그는 풍부한 기술지식을 바탕으로-그는 첫 NSX개발에 기여했다- 1998년 은퇴한 카리스마 넘치는 가와모토 노부히코 Nobuhiko Kawamoto 사장 이후 혼다의 가장 강력하고 존재감 있는 리더가 되었다. 2009년 6월 취임 이후 이토는 신제품 개발을 서두르고 R&D를 판매, 제조 및 조달과 더 잘 조화시킴으로써 지역의 의사 결정과정을 개선했다. 그는 또 기업 관리를 담당하는 직위를 신설해 혼다의 6개 글로벌 지역에 각각 파견하고 모든 개발, 생산 및 구매를 감독하도록 했다. 이토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모델에 미세한 변화만 있어도 R&D가 먼저 예비 검토를 하고, 그 다음 자동차 사업부가 공식 승인을 하면 개발 지침이 발표되고, 이어 실제 개발 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제는 판매, 제조, R&D 및 구매담당 직원들이 단일 팀처럼 일하고 신속히 의사 결정을 한다”고 말했다.
1년 전 이토는 원대한 목표를 발표했다. 2017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600만 대의 자동차를 판매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2012년 수준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는 필자에게 “원칙적으로 혼다는 흥미로운 상품을 출시하길 원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혼다의 자동차 판매량은 증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한 목표 없이 일을 추진할 순 없다.”
지난 5월 이토는 혼다가 2015년 맥라렌 McLaren 팀의 엔진 공급자로 포뮬러 1에 복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은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는 일이다. 수백 명의 엔지니어들을 경기당 1,000만 달러 이상 소요되는 이 값비싼 스포츠를 위해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이토는 레이싱을 통해 혼다와 고객들 사이에 유대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토는 물밑에서 고객들과 또 다른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세상이 변했다”라고 말한다. “혼다 차는 품질, 신뢰성, 그리고 가치로 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고객들은 단지 이성적인 이유로만 우리 차를 구매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우리 차의 장점에 대해 고객들과 직접 소통해야 한다. 좋은 상품은 저절로 팔리게 돼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기적이다.”
이런 솔직한 태도 하나만으로도 그는 전임자들과 차별화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례적인 것은 그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느냐 하는 것이다. 바로 두 명의 미국인인데, 그중 1 명은 지난해 이토가 혼다 R&D 미국지사 사장으로 임명한 에릭 버크먼 Eric Berkman이다. 이로써 버크먼은 이 조직을 이끄는 최초의 미국인 수장이 됐다. 직설적인 성격의 버크먼은 1982년 매리스빌에 위치한 혼다 공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이 회사와 인연을 맺은 오랜 혼다 가족이다. 그는 9년간 이 공장에서 일한 후 R&D 부서로 옮겨, 그곳에서 8개의 신모델 디자인 및 엔지니어링을 감독했다. 그중에는 큰 인기를 끈 어큐라 MDX 크로스오버도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혼다와 어큐라에 대해 좀 더 명확한 비전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경제위기 전에 우리는 제품 사양에 대해 크게 과시하지 않았고, 마케팅도 튀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신뢰성만 강조했고, 그 이상을 넘지 않았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우리 차에 돈을 지불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토는 버크먼에게 혼다의 새 소형차 전략을 시행할 책임을 맡겼다. 혼다의 우수한 소형차 피트 Fit는 수년간 미국에 실질적인 부분만 할당되어 왔다. 이 차가 일본에서만 생산됐고, 생산량도 연간 약 6만 대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이 차를 좋아했지만, 딜러들은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현재 혼다는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고 있다. 2014년부터 이곳에서 피트와 새로운 소형 크로스오버를 연간 20만 대씩 생산할 예정이다. 버크먼은 “이제 피트의 생산 제한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며 “굉장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매와 마케팅 부서에서 버크먼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마이크 아카비티 Mike Accavitti다. 그는 2011년 최고마케팅책임자로 회사에 합류한 혼다의 새 식구다. 혼다가 외부인을 영입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특히 디트로이트 빅3 출신은 더욱 고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 약점이 점점 부각되면서, 혼다는 아카비티 영입에 나섰다. 그는 크라이슬러에서 승진해 닷지 브랜드를 이끌던 인물이었다. 닷지는 거침없는 성격을 가진 브랜드로 공격적인 광고를 한다. 혼다와는 정반대다. 혼다에 입사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그는 자동차 사업부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미 넘쳐나는 그의 업무리스트에 제품기획, 유통, 품질 보증 및 시장조사까지 추가됐다. 혼다 같은 수평 조직에서조차 이는 엄청난 임무이다. 아카비티의 승진은 구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혼다의 바람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버크먼처럼, 아카비티 역시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최고마케팅책임자로서, 그는 혼다답지 않은 일을 했다. 9억 달러에 달하는 광고예산을 검토대상에 올린 것이다. 상황이 진정되기도 전에, 그는 RPA(구 루빈 포스테어 어소시에이츠 Rubin Postaer Associates)와의 26년 관계를 청산했다. 그리고 어큐라 광고와 광고매체 구매업무를 더 이상 RPA에 맡기지 않았다(RPA는 혼다 브랜드 광고를 독점해왔다). 아카비티는 “우리 제품이 매우 우수했기 때문에, 그 명성에 의존해 어려운 일을 처리하려 했다”고 지적한 뒤 “이제 이런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잘 알게 됐다”고 말했다.
더욱 신속한 의사 결정을 위해, 이토는 서열 2위의 이사인 이와무라 테츠오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로스앤젤레스로 보내 북미 사업부를 감독하도록 했다. 이와무라는 미국인 동료들처럼 혼다의 실수에 대해 매우 솔직해졌다. 한때 도요타와 함께 하이브리드 혁신기업으로 인정받던 혼다는 마일드 단일 모터 시스템(mild one-motor system) *역주: 하이브리드 차량은 보통 가솔린과 전기의 2개 엔진을 탑재한다. 단일 모터 시스템은 개발비가 적게 들고 연비가 좋다는 장점이 있다에 몰두하면서 호기를 놓쳤다. 이와무라는 “피트나 시빅 같은 소형차를 넘어 단일 모터 시스템을 더욱 확장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그것은 어코드 같은 중형차에도 잘 맞지 않았다.”
혼다가 변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예가 있다면, 그건 2012년형 혼다 시빅과 이것이 2013년형 모델로 신속하게 바뀐 점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형 시빅 개발이 거의 디자인 완성 단계에 이르고 있을 때, ‘리먼 충격’에 휘청대던 임원들은 이것이 엔트리카 수준치곤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이토는 좀 더 저렴한 모델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출시 시기를 당초 계획인 2010년 가을에서 6개월 늦췄다. 비용삭감은 차 내부에 변화를 가져왔다. 더 저렴하고 더 광택이 많이 나는 플라스틱이 사용됐고, 계기판 조립 비용도 낮췄다.
혼다 간부들은 저렴한 부품으로의 교체가 너무 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변화를 거스르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다. 그 대신, 고위 중역들은 2014년 봄으로 예정됐던 시빅의 중간 개선시기를 18개월 앞당겨 2012년 가을로 조정했다. 전례 없는 조치였다. 약 1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매우 복잡한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2012년형 시빅이 출시되자 시장의 반응은 매우 나빴다. 2011년 11월 도쿄 오토 쇼에서 이토는 “제품에 대한 최종 반응은 모두 내 책임”이라며 공개적인 비판을 받아들였다.
재디자인 된 2013년형 시빅은 그로부터 1년 후 로스앤젤레스 오토 쇼에서 공개됐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차체는 더 단단해졌고, 판금은 밝아졌고, 내장 트림(interior trim) *역주: 자동차 차체의 내측과 외측에 추가로 부착되는 모든 부품도 업그레이드 됐다. 이런 변화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 오토모티브 뉴스의 추산에 따르면, 혼다는 500달러 이상의 새로운 부품들을 추가했지만, 가격은 단 160달러만 인상했다. 가격 인상에도 소비자들의 반응은 좋았다. 시빅은 지난 6월 동급 세그먼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차가 됐고, 전체 모델을 통틀어서도 베스트 셀링 4위에 오르는 성적을 올렸다.
혼다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7명으로 구성된 북미 지역사업위원회를 구성해 신모델에 대한 의사 결정을 신속히 내리고, 출시 기간도 단축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위원회의 일원인 버크먼은 직원 다수의 입장을 대변해 “우리는 변화의 속도에 만족한다. 이제 더 심화된 경쟁 속에서 매출증대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토는 개인적으로 차세대 NSX 슈퍼카 개발을 북미 R&D 측에 맡기면서 신뢰를 보여주었다. 이 차가 2014년 말 출시되면, 6개 실린더 엔진이 탑재된 이 하이브리드 쿠페는 혼다 역사상 가장 빠르고, 가장 비싸고(10만 달러 이상을 호가할 전망이다), 가장 매력적인 차가 될 것이다. 여기서 가장 ‘매력적’이라는 말에 주목하라. 혼다는 다시 마력을 되찾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미모가 트렁크에 내팽개쳐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더 심화된 경쟁 속에서 매출 증대를 위해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