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원의 시장을 잡아라
미국, 독일, 일본 등 로봇 강국에서는 지능형 서비스 로봇 개발이 한창이다. 노인이나 환자를 돌봐주는 간호사 로봇, 가사를 도와주는 가사도우미 로봇, 아이들의 놀이와 교육을 담당하는 유아 교육 로봇, 음식점의 주문과 서빙을 책임지는 웨이터 로봇, 스스로 쓰레기를 찾아 수거하는 도로 청소로봇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서비스 로봇들이 개발돼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지능형 서비스 로봇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구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 인구의 노령화, 개인화로 치닫는 사회구조, 야외활동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변화 등에 의해 노인과 독거생활자들을 돌봐주고 야회활동으로 소홀해진 집안일을 대신 처리해줄 지능형 로봇의 수요가 대폭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조사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오는 2020년에 이르면 전 세계 지능형 로봇 시장이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현재 세계 로봇시장은 94억 달러(약 10조1,200억원) 규모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중 서비스 로봇의 비중이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 비중은 2018년 85% 수준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관측이다. 세계 3대 휴머노이드 로봇 강국으로 꼽히는 우리나라에게도 지능형 서비스 로봇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는 상황인 것. 정부가 지능형 로봇을 10대 성장동력산업의 하나로 선정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능형 로봇의 근간
지능형 서비스 로봇에 적용되는 핵심 기술은 로봇 간의 네트워킹, 자율이동, 이족보행, 음성인식, 센싱 등 하나 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사람과 동일한 손동작을 구현할 수 있는 인간형 로봇 손의 개발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뛰어난 능력을 갖췄더라도, 아니 다른 모든 것이 완벽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일지라도 사람 수준의 손동작을 취할 수 없다면 결코 사람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정밀한 로봇 팔이 개발돼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산업용 로봇 팔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고차원적 임무는 수행이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 이미 해외에서는 미국 섀도로봇의 ‘덱스트러스 핸드(Dexterous Hand)’, 버지니아텍 연구팀의 ‘라파엘(RAPHaEL)’, 영국 터치바이오닉스의 ‘아이-림(i-Limb)’ 등 머그컵과 연필, 과일 같은 물건을 넘어 계란이나 백열전구처럼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물건까지 잡을 수 있는 로봇 손 또는 로봇 의수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에서도 이와 버금가는 손재주를 발휘할 수 있는 로봇 손이 개발돼 주목을 받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로봇기술본부 지능형로봇연구그룹의 백문홍 박사, 배지훈 박사 연구팀. 두 사람은 로봇 손이 움직이는 위치·속도·거리 등의 정보를 이용해 다양한 손동작과 물체 파지능력을 구현하는 제어기술을 확보하고, 4개의 손가락을 가진 로봇 손을 제작했다.
이 로봇 손은 총 16개의 관절을 지니고 있으며, 각 손가락이 개별적으로 움직인다. 덕분에 중량 1.1㎏, 길이 23㎝로 사람의 손보다는 30%정도 크지만 사람과 유사한 방식으로 물건을 잡을 수 있다. 또한 물건을 잡은 상태에서 물건의 위치나 방향을 조작하거나 손가락 끝부분을 이용해 물건을 잡는 것도 가능하다.
인간형 로봇 손은 크게 집게형과 덱스트러스(손재주) 방식으로 구분되는데 생기원의 로봇 손은 손재주 방식에 속한다. 사람의 손을 생체·해부학적으로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자인과 설계가 이뤄졌다.
배 박사는 “생체학적 데이터에 따르면 사람의 손이 수행할 수 있는 동작은 손가락 4개로도 충분하다”며 “실제로도 이번에 개발된 로봇손은 움켜잡기와 집기(Pinching) 동작을 모두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어기술 개발 주력
일반적으로 로봇 손에는 전동 모터, 기어 등의 구동기와 관절각도 센서 그리고 제어와 통신을 위한 전자부품·장비들이 내장돼 있다. 로봇의 양 팔에 부착된 로봇 손을 움직이려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제어 기술이 필요하며, 팔이 움직일 때의 관절의 각도·위치·힘을 정밀하게 계산해 반영해야 된다.
백 박사는 “우리가 손을 움직일 때는 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로봇 손의 제어에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로봇 손이 물체를 놓치지 않게 하려면 손가락이 내야하는 힘을 정확히 계산해 각 모터에 최적의 전류를 입력해야하며, 입력한 전류가 모터에 정확히 흐르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피드백 받아 확인해야 한다.
때문에 연구팀은 사람의 손 모양을 완벽히 모방하기보다는 사람의 손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재현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백 박사는 “로봇 손이 안정적으로 물건을 잡을 수 있도록 해주는 핵심 기술은 사람의 손이 생체학적으로 물건을 잡는 메커니즘인 ‘감각 피드백(sensory-feedback) 신호를 찾는 것에 있었다”며 “16개의 관절, 16개의 모터를 통해 힘, 위치, 방향, 속도 등을 정밀 제어하는 기술개발에 주력했다”고 밝혔다.
현재 연구팀은 이 로봇 손의 지적재산권을 확보하는 한편 후속연구를 진행해 본격적인 지능형 서비스 로봇 시대에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로봇 손을 가사도우미 로봇, 간호 로봇 등 실제 지능형 로봇의 팔에 부착하기 위해서는 소형화를 비롯해 제어기술, 인지능력 등의 보강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배 박사는 “장기적으로 힘 센서, 접촉 센서를 채용해 손가락의 움직임을 한층 자연스럽게 만들고, 물건의 형태를 식별해 힘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확보할 계획”이라며 “최종 목표는 사람이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동작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PROSTHETIC ROBOT HAND]
로봇 의수의 지존
사고나 질병으로 손이 절단된 환자들에게 인공 의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료 기구다. 그러나 과거의 인공 의수들은 손을 쥐고, 펴는 등의 단순한 동작만 가능해 실제 손의 역할을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영국 터치바이오닉스의 ‘아이-림(i-Limb)’은 이 같은 인공 의수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혁신적 로봇 의수다. 사람과 동일한 5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으며, 관절의 위치와 구조도 동일해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각 손가락을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개발자인 데이비드 고우 박사는 손가락의 독자적 구동 능력 확보를 위해 손 전체를 단일 구조로 성형하는 대신 손가락과 손바닥, 엄지손가락 등을 별도로 설계·제작·조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로봇 손과 달리 로봇 의수는 로봇이 아닌 사람의 팔에 부착돼야 하며, 뇌의 신호에 정확히 반응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림에는 착용자의 근육 신호를 인지하는 전극이 채용돼 있다. 착용자가 손을 움직이려 할 때는 뇌가 보낸 신호에 의해 팔의 근육이 움직이는데, 이 근육신호를 전극이 감지·분석하여 아이-림의 구동모터에 전달함으로써 착용자의 의도대로 손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이다.
성능은 로봇 의수의 지존이라 불러도 무방한 수준이다. 악수는 물론 펜으로 글씨쓰기, 마우스 사용하기, 카메라로 촬영하기, 휴대폰 사용하기, 신발 끈 묶기, 책장 넘기기, 캔 뚜껑 따기, 바나나 껍질 벗기기, 자물쇠 열기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실상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손가락 표면에 압력 센서를 내장, 부서지기 쉬운 물체도 망가뜨리지 않고 집어 올린다.
손 절단 환자들에게 새 삶을 실현시켜줄 아이-림의 가격은 환자의 상태와 옵션 등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기본형이 약 1만8,000달러부터, 고급형인 울트라 레볼루션은 3만8,000달러~12만 달러 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