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잭 루: 알 듯 모를 듯한 재무부 수장

(Jack Lew) THE KNOWN UNKNOWN AT THE TREASURY

루의 추상적인 서명(위)은 달러화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됐다. 루는 미 달러화에 넣을 서명을 새로 만들었다.
by Tory Newmyer

76대 재무부 장관 잭 루 Jack Lew 는 올여름 단 몇 주 만에 사람들의 통념을 완전히 깨버렸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째는 지난 7월 초 루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 의장 게리 겐슬러 Gary Gensler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긴급회의를 가진 것이다. 그 후 루가 겐슬러를 견제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골드만 삭스의 파트너로 일한 적이 있는 겐슬러는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 전 세계 파생상품 시장 규제를 추진했지만 많은 금융업계 종사자들은 겐슬러의 계획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월가의 로비스트들은 시티은행에서 잠깐 대체투자상품 부서를 맡은 적이 있고, 무엇보다 로버트 루빈 Robert Rubin의 제자인 새 재무부 장관이 ‘우리 중 하나’, 즉 자신의 편이라는 사실을 이 일이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름 뒤 루가 뉴욕에서 열린 딜리버링 알파 Delivering Alpha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한 후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큰 덩치에 학구적인 루(58)는 방 안을 꽉 채운 투자자들에게 도드프랭크법안 중 아직 미완성인 많은 금융 규제 규정을 올해 말까지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많은 은행 CEO들과 로비스트들이 지연시키거나 무산시키려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던 바로 그 도드-프랭크 법 얘기였다. 이후 워싱턴 정가에선 이 사건이 민주당의 거물 팁 오닐 Tip O’ Neill의 제자였던 루가 사실 철저한 개혁가라는 결정적인 증거라는 소문이 퍼졌다.

사실 두 사건 모두 떠도는 소문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소문의 출처에 대해 더 혼란스러워 했다. 루의 월 스트리트 연설은 행동을 촉구한 것이 아니라 사실 법 시행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은근히 밝힌 것이었다. 또 겐슬러를 질책했다는 소문에 관해선, 루가 의지가 강한 개혁가에게 설교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겐슬러의 방식을 지적했을 뿐 본질을 지적한 것은 아니었다. 루는 정부 부처의 모든 규제기관이 협력하고 단결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재무부 장관으로서 임기가 거의 반 년이 지난 지금, 잭 루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예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금융계의 황제(대통령과 연준 의장을 제외하면 다음 세대의 경제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인물이다)인 그가 금융계에 깊게 관여하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루는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더 선호할지 모른다(루는 이 기사와 관련해 포춘 인터뷰를 거절했다). 사실 협상가들의 입장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이 일치하기가 더 쉽다.

실업률은 4년 반째 최저 수준이고, 연방 예산 적자는 GDP의 4%수준으로 감소했고(2011년에는 8.7%였다), 주식 시장은 계속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더 이상 팀 가이트너 Tim Geithner나 전 재무부 장관 행크 폴슨 Hank Paulson 같은 위기 관리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다. 그에게 필요한 사람은 금융위기의 잔재를 처리하고,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기본적인 규제 조치들을 실행할 사람이다(‘다음 금융 위기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나?’ 기사를 참조하라).

오바마 대통령은 조용히 분열을 일으키지 않고, 어려운 임무를 수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의원들과 규제당국, 업계 관계자들이 법 시행에 빠르게 합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 부채 한도 상한과 재정한도 증액이 공화당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의회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할 동안 시장을 평온하게 유지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복지제도 개혁과 세금에 대한 논의를 다시 벌일 수 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잭 루처럼 일을 잘하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재무부는 연방정부에서 가장 역사가 길고 존경 받는 부서다. 재무부의 기원은 독립선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무부의 전신은 독립 전쟁 자금 때문에 생긴 채무를 관리했다. 최초의 공식적인 재무부 장관은 알렉산더 해밀튼 Alexander Hamilton이었다. 앤드루 멜런 Andrew Mellon, 제임스 베이커 James Baker, 루빈, 로런스 서머스 Lawrence Summers, 폴슨 등이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루는 지금도 도시락을 싸와서 책상 앞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는 재무부 건물의 복도를 돌아다니며 먼 구석에 있는 부하 직원들에게 자신을 소개한다. 수십 년간 잭 루와 정부 예산을 갖고 협상한 사람들은 그가 항상 자료로 터질 듯한 검은 바인더를 두세 개씩 들고 회의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루와 오랫동안 함께 일했고, 현재 대통령 수석 보좌관인 롭 네이버스 Rob Nabors는 루가 바인더를 열어야 할 상황은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상사의 임무 수행을 헌신적으로 도운 덕분에 루는 일찍 오바마 정부의 핵심인사에 올랐다. 선거캠프 출신이 아닌 인사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다. 오바마 정부는 올여름 새로운 경제 정책 홍보를 위해 루가 4편의 일요일 방송에서 연속으로 인터뷰를 하게 했다. ABC의 조지 스테퍼노펄로스 George Stephanopoulos는 잭 루에 대한 소개를 다시 해야 했다. 그는 녹화할 때 “장관님”이라는 경어를 쓰지 않고 “잭”이라고 불렀는데 그건 사실 흔한 실수였다.

오랜 친구들은 루의 감각이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루는 주로 중산층들이 거주하는 퀸스 Queens의 포레스트 힐스 Forest Hills에서 정통 유대교도로 자랐다. 폴란드에서 온 이민자였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희귀한 책을 통신 판매하는 일도 했다. 어머니는 대공황 시기 15세 때부터 가족들을 돕기 위해 온종일 일했다.

루는 고등학교 시절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길게 기르고, 베트남 전쟁과 세계 기아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루는 미네소타 주의 칼턴 Carleton 대학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미래에 상원의원이 된 진보성향의 선동가 폴 웰스톤 Paul Wellstone을 지도교수로 만났다. 일 년 후 자퇴하고, 맨해튼 Manhattan의 웨스트 사이드 West Side 하원의원이자 또 다른 좌파의 상징인 벨라 앱저그 Bella Abzug 밑에서 일했다. 그 후 하버드에서 학사 학위를 땄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당시, 사회 정의에 관심을 가졌던 루는 예산 체계의 메커니즘에 빠져들었다. 그는 하버드 우수 학위 논문에서 지불 급여세보다 더 혁신적인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해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년 후 겨우 차를 빌릴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하원의장 팁 오닐의 수석 보좌관으로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직접 참여했다.

전설적인 정치인인 팁 오닐은 엘리베이터 직원에게도 국가 원수들을 대할 때처럼 예의 있게 행동하며 어린 부하 직원이었던 루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하지만 루가 가장 큰 가르침을 받은 건 오닐이 그런 정신을 정부 프로그램 개혁에 적용한 점이었다. 오닐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타협해 이뤄낸 역사적인 사회보장제도 개혁은 은퇴연령을 높이고, 사회보장제도의 지급능력 확보를 위한 세수를 확대했다. 양측 모두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해 처음에 내세운 원칙들을 수정했다. 당시 오닐의 법률 고문이었던 스탠 브랜드 Stan Brand는 “매우 어려운 시련이었지만 잭은 단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루는 정부의 본질을 익히면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쌓았다. 그는 승승장구하며 클린턴 정부에서 예산관리국 국장에 올랐고, 1997년 공화당 의원들과 협상을 통해 균형예산법을 통과시켰다. 덕분에 30년만에 처음으로 흑자예산이 편성됐다. 래리 서머스 같은 클린턴 정부동료들이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다가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과는 달리, 그는 계속 절제된 태도로 공세를 잘 피해갔다.

시티그룹에서 일한 경력이 재무부 장관 인준에 걸림돌이 될 뻔했던 걸 예로 들 수 있다. 전 재무부 장관 로버트 루빈은 2006년 루가 시티그룹의 자산관리 부서의 운영 부문을 맡도록 도움을 주었다. 한 전직 동료는 “시티는 공무원을 좋은 투자 대상으로 봤다”고 말한다. 루는 2008년 대체투자상품 부서로 옮겼다. 당시 수익률이 떨어지던 헤지펀드가 대체상품 부서에 속해 있었다. 시티그룹은 연방정부로부터 다른 어느 은행보다 큰 구제금융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루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한 공화당 상원의원은 장관 내정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난관 중 하나인 상원금융위원회 위원들과의 면접에서 루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태도를 보였다”고 회상했다. “‘훌륭했다’는 건 그가 시티그룹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도, 모든 질문에 쉽게 대답해냈다는 뜻이다.” 루는 청문회에서도 비슷한 유술 *역주: 메치기, 누르기, 급소 지르기 등 기술에 기반을 둔 일본 기원의 스포츠. 유도의 원형 기술 을 선보였다. 루의 재무부 장관 인준안은 상원을 통과했다.

루의 최우선 과제는 자신이 잠시 몸담았던 산업을 개혁하는 것이다. 2월 28일 루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재무부 장관 취임 선서를 마친 후 금융안정감독위원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의장으로 처음 참석하는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재무부 건물로 바로 걸어갔다. FSOC는 개혁법을 시행하는 규제 담당자들을 소집하고, 재무부 장관에게 합의를 촉구하는 권한을 부여한다.

아직 임기 초기이기 때문에 루의 빠른 절차를 강조하는 방식이 결실이 맺을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몇몇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새로운 스왑 규정을 만들고, 은행의 자본 요건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머니마켓펀드 money-market fund *역주: 고객의 돈을 모아 주로 금리가 높은 CP, CD, 채권 등 단기금융상품에 집중 투자하고 여기서 얻는 수익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주는 실적배당 상품 안정을 위한 지원을 시작했다. 부실한 금융기관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에도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시작이 늦었다. 로펌 데이비스 포크 Davis Polk 에 따르면, 도드 프랭크법이 발효된 지 정확히 3년째인 7월 15일까지 실제로 시행된 법안은 약 40%에 불과하다. 또 규제 조치의 62%가 이 시점까지 법에 명시된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포춘 홈페이지의 ‘질문을 회피하는 데 능통한 제이콥 루’ 기사를 참조하라).

가까운 사람들은 루는 성공에 대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법 시행을 단순히 해야 할 일로 보지 않고, 실용적인 질문(이런 법안이 실행 가능한가? 결과가 있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에 대답하고자 한다. 한 정부 관료는 “규제 시스템을 뒷걸음 치게 만든 제도적 결함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법 시행만으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잭의 시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를 알 수 있는 시험은 다음 금융위기뿐이다.


루가 어디에 동조하는지 묻는 것은 당연한 질문이다. 그는 취임 2주 뒤 노조 등 진보 성향 단체의 리더 열두 명과 함께 첫 번째 지원회의를 열었다. 또 한편으로 월가 경영자들과의 대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골드만 삭스의 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 Lloyd Blankfein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월가, 시장, 그 내부 사람들의 관습에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재무부 장관은 엄청 빠르게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는 분명 시간을 내어 월가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에 몰두하는 동안 다른 일도 일어났다. 루는 유럽의 재무부 장관들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또 지난 3월 중국을 방문, 고위 관료 중 처음으로 중국의 새로운 지도층을 만나 양자 간 투자협정 협상을 시작했다. 5월에는 국세청(IRS)의 비영리단체 표적조사 스캔들이 터지면서 재무부가 논란의 중심에 휩싸였다. 이란 제재 문제 같이 눈에 덜 띄지만 똑같이 중대한 문제도 있었다. 현재 커빙턴 앤드 벌링 Covington & Burling의 파트너인 스튜어트 아이전스 탯 Stuart Eizenst at 전 유럽연합 대사는 “전쟁과 평화를 가를 수 있는 문제이고, 잘못되면 석유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무부 장관으로 재임하는 처음 반년 동안 루에게는 한 가지 행운이 따랐다. 바로 공화당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조용했다는 것이다. 예산관리국 국장과 수석 보좌관이었을 때는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장관 직책을 맡은 초기에 그는 평판에 다소 타격을 입었다. 루는 2011년 여름 부채 상한 협상을 둘러싼 교착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예산 자동삭감을 제안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이에 대해 그가 불쾌하고 간교한 협상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이런 불만에 주의를 기울일 것 같지도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루를 존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그는 논의에서 영향력도 커졌다. 지난 7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루는 일자리 증가를 촉진하기 위해 긴축 정책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부 지출을 지지하는 합의 성명작성을 도왔다. 지출 삭감을 강조하는 독일도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의회는 이와는 별개인 세계이다. 지난 8월 말 루는 10월 중순이면 정부의 차입 권한이 소진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차입 한도를 확대하는 대신 주요 정책 양보를 바라는 공화당과 다시 대립했다. 여기에 더해 재정한도 증액과 예산 자동삭감에 대한 대처를 둘러싼 예산 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경제 위기가 닥치고 5년이 지난 지금 연방 지출이 과도하게 늘어남에 따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규제체계 정비가 시작됐다. 정부는 싸울 준비가 돼 있다. 루가 어디에 참호를 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가운데쯤이 될 것이란 점뿐이다.

[트랑셰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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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증권을 판매한 후 다음날 다시 매입하는 약정이다. 부동산 증권이 부실화하면서 환매시장에 위기가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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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랑셰

‘조각’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주택저당증권(MBS)이 종종 트랑셰로 분류된다. 선순위 트랑셰가 최우선 상환순위에 금리도 최저이기 때문에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된다.

4,206억 달러 연방정부가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통해 은행과 기업에 제공한 구제금융 액수

1,500억 달러 2008년 이후 401(k) 연금의 자산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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