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미술 투자 대중화 시대

CLOSER LOOK

미술계가 아트페어를 통해 일반 소비자에게 다가서고 있다. 창조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술 대중화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미술계의 주장이다.

차병선 기자 acha@hk.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한국국제아트페어(KIAF·Korea International Art Fair)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코엑스 전시장. 서진수(56) 강남대 교수는 행사가 열리는 10월 3일부터 7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시장을 누볐다. 무거운 사진 장비를 들고 다니며, 직접 작품을 사진 자료로 남겼다. 서 교수는 미대 교수가 아니다.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고전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미술과 문화가 갖는 경제적 가치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른바 ‘미술과 자본의 아름다운 만남’을 추구하고 있다.

서 교수는 2004년에 ‘미술시장 연구소’를 설립해 지난 10년간 국내외 미술시장을 연구해오고 있다. 매년 세계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와 경매를 직접 찾아 다니고 있으며, 최근 5년 동안은 여름방학마다 자비로 러시아와 몽골에 한 달씩 머물며 암각화를 탐사할 정도로 열성을 보이고 있다. 국내 미술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잡지 ‘월간미술’에도 매년 두 차례 이상 미술시장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국내 미술 시장에서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미술 애호가이자 경제학자답게 그가 바라보고 분석하는 미술 시장은 좀 더 객관적이다.

서 교수와 미술업계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국내 전체 미술시장은 연간 약 4,500억 원 규모다. 작품이 유통되는 경로는 크게 3가지. 화랑전시를 통한 매매는 가장 오래됐고 시장규모 역시 가장 크다. 정확한 통계를 잡는 건 불가능하지만 대략 2,500억 원대 규모로 추산된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경매시장이 붐을 이뤘다. 서울옥션과 K옥션이 경쟁체제로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침체되며 총 경매액도 급감했다. 2007년 1,900억 원까지 치솟던 경매시장 규모는 2012년 800억 원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이후 KIAF 같은 아트페어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다수 화랑이 함께 모여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공동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전시와 판매를 하며 효과를 보고 있다. 국내 아트페어 판매액 규모는 약 336억 원 수준. 이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KIAF의 지난해 판매액은 140억 원이었다. 그 외 공공미술이나 빌딩 앞에 설치되는 전시물 등이 시장 집계에 포함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국내 미술 시장은 2005~2007년에 반짝 전성기를 누린 뒤 침체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지난 몇 해는 악재 투성이었다.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가 계속됨에 따라 국내 미술시장에 햇볕이 드는 것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미술품과 관련한 사건 사고도 최근 몇 년간 끊이지 않았다. 미술품이 기업 탈세와 축재, 뇌물 수단으로 악용되며 미술 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었다.

그렇지만 “국내 미술시장도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서 교수는 말한다. “선진국에선 미술시장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미술품은 부유층 포트폴리오에서 빠지지 않아요. 중국만 하더라도 미술품은 투자 포트폴리오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입니다. 우리는 시장 역사가 짧고 규모가 작아 쉽게 흔들리고 있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미술 시장 역시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KIAF 판매 규모는 국내 미술시장이 호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KIAF 판매액은 190억 원을 넘었다. 역대 최대 거래액이다. 호황이던 2007년의 170억 원을 넘어섰다. KIAF 관계자는 말한다. “올해에는 전문 컬렉터는 물론 비교적 젊은 컬렉터 층과 일반 관객들의 작품 구매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국내 미술 시장에서도 소비심리가 되살아나고 미술품을 구매하고 소장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또 “특히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방문이 유의미하게 늘어 미술 애호가들의 저변이 확대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미술이 창조 경제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노동시간이 줄고 여가시간이 늘어납니다. 여가를 책임질 산업이 커져야 하죠. 경제학 역시 예전에는 ‘부의 원천이 무엇인가’만 가르쳤지만, 요새는 ‘부를 획득해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까지 연구합니다. 이른바 문화경제학입니다. 문화투자가 많을수록 경제규모는 커집니다. 제조업 이윤이 평균 3~5%인 데 비해 영화, 음반, 출판, 게임과 같은 문화산업은 15~30%에 이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도 이와 같은 맥락이죠. 이제는 경제목표가 문화입니다. 그 기본이 문학이고 음악이고 미술이죠.”

그렇다면 실제 시장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저성장 시대에도 투자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서 교수는 미술품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돈 벌기 위한 투자로 희소성에 투자해야 한다. 피카소, 마네, 모네, 이중섭 작품 등에 투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성과 시장가치 모두 높은 작품에 투자하면, 수익이 보장된다. 그렇지만 이 시장은 근본적으로는 머니게임이다. 돈 많은 사람이 돈버는 구조다. 돈이 없는 사람은 접근조차 할 수 없고 재미도 없다.

큰돈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건 취미형 시장이다. 미술품이 좋아서 구입하고 향유하는 소비 시장이다. 취미형 시장에 투자하려면 최소 3년 혹은 5년 정도 작품을 감상하고 공부를 하라고 서 교수는 권한다. 구매는 그 이후로 미루라는 것. 시작부터 이것저것 사모았다간 나중에 안목이 생겼을 때 돈이 바닥날 위험이 있다. 안목이 좋다면, 신인작가전에서 30만 원에 구매한 작품을 나중에 300만 원에 되팔 수도 있다. 못 팔더라도 작품을 향유한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미술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숙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 미술업계에선 작가 발굴과 전시회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투자시장에선 더 많은 판매와 재판매가 이뤄지고 트랙 레코드를 쌓아 관련 지수도 정교하게 재단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마냥 기다리다간 때를 놓치기 십상. 2005~2007년에 돈 번 사람들은 취미형 시장에 10년 이상 투자해온 사람임을 잊지 말자.


신인작가전에서 30만 원에 구매한 작품을 나중에 300만 원에 되팔 수도 있다. 못 팔더라도 작품을 향유한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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