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용 : 5,000달러
그레엄 오브리는 자동차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 필요가 없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사이클 선수인 그는 자동차만큼 빠른 자전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플라잉 스코츠맨’의 실제 주인공인 오브리는 1993년 원형 트랙에서 1시간 동안 51.5㎞를 달리며 역대 최장 주행거리 기록을 수립한 바 있다. 다른 선수가 이 기록을 깨자 1994년 재차 왕좌를 탈환하기도 했다.
“승리는 마약과도 같아서 반드시 이겨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42세가 되던 2007년, 그는 또 다른 레이싱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동력 이동수단(HPV)의 개발이었다. 당시 세계 기록은 2009년 샘 위팅엄이 리컴번트 바이크로 세운 시속 133.284㎞. 오브리는 냄비, 롤러스케이트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해 2년간 시제품들을 설계·제작했다.
“사이클에 대한 어떤 선입견도 가지지 않으려고 했어요. 외계인이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스스로에게 자문했죠.”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하던 어느 날 그는 스카이다이빙이야 말로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외계인스러운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스카이다이버가 몸을 일(一)자로 만들어서 머리부터 수직 강하할 때의 속도는 시속 300㎞에 근접한다.
그래서 오브리는 엎드려서 타는 프론 바이크를 설계했다. 탑승자는 엎드린 채 불편한 자세로 다리를 앞뒤로 움직여서 페달링을 해야 하지만 항력과 공기저항, 마찰력에 의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윽고 2013년 9월 오스티는 ‘비스티(Beastie)’로 명명된 프론 바이크를 가지고 네바다주의 인적 드문 2차선 고속도로에서 개최된 ‘세계 인간동력 스피드 챌린지(WHPSC)’에 참가했다. 1차 주행에서 그는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지만 바이크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 세 번째에선 맞바람 때문에 바이크가 갈지자로 주행하면서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날 오브리의 최고 기록은 시속 91.12㎞. 목표에는 크게 못 미쳤지만 프론 바이크 세계기록인 88.35㎞를 경신하는 소귀의 성과를 거뒀다. 참고로 이번 대회에선 네덜란드 학생팀이 ‘밸로X3(VeloX3)’라는 모델로 133.78㎞를 마크하며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현재 오브리는 레이싱을 그만두고 비스티의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누군가 비스트를 더욱 개선해 세계 기록을 수립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껏 저는 빠른 것에만 집착했어요. 이젠 내가 잘못한 것보다는 잘 한 것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HPV Human Powered Vehicle의 약자.
리컴번트 바이크 (recumbent bike) 누워서 타는 속도 기록 수립용 자전거. 이와 반대로 ‘비스티(Beastie)’처럼 엎드려서 타는 자전거를 ‘프론 바이크(prone bike)’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