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대통령과 미술, 그리고 미술시장

서진수의 ‘미술과 경영’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윤보선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등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과 관련된 작품은 경매시장에서 마니아 층을 확보하고 있다. 대통령의 문화활동이 많은 국민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기 때문이다.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문화대통령을 기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 겸 미술시장연구소 소장


2013년 말과 2014년 초 국내 미술시장의 핫이슈는 단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를 위한 미술품 경매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과 미술전문 출판사를 운영하는 장남 전재국이 운영하는 시공사와 개인 소장 미술품이 압수되고 경매로 팔리기까지 국민과 미술시장의 관심은 온통 압수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은 어떤 것이며, 판매액은 모두 얼마나 될 것인가였다.

K옥션과 서울옥션 두 회사가 현장에서 직접 진행한 오프라인 경매의 결과는 K옥션이 출품된 80점 100% 낙찰에 25억 6,740만 원, 서울옥션이 출품된 121점 100% 낙찰에 27억7,000만 원이었다. 전두환 일가 압수미술품 경매 100% 낙찰은 그 자체로 또 다시 엄청난 뉴스를 재생산해 냈다. 미술품 경매가 자리 잡은 나라의 경매에서 출품된 작품이 100% 낙찰되는 것은 쉽지도 않고 흔치도 않은 일이어서 경매사가 화이트 글로브(White Glove Awards)상을 받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완판’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문화가 전부였고, 특히 이번 경매는 국고 환수를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으므로 잔치를 벌일 상황도 아니었다. 더욱이 특별경매에 이어 치러진 두 회사의 2013년 마지막 메인 경매의 결과가 K옥션 77.4% 낙찰에 32억 8,610만 원, 서울옥션 66% 낙찰에 31억5,000만 원에 그쳐 4년째 지속되고 있는 미술시장의 침체를 확인하는 선에서 한 해가 마무리되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전재국 소유였던 미술품 경매 가운데 고가 작품은 K옥션에서 5억5,000만 원에 팔린 김환기의 유화작품 ‘24-VIII-65 South East’와 서울옥션에서 6억6,000만 원에 팔린 이대원의 유화작품 ‘농원’이었다. 김환기는 최근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판매액 1위에 올라있고, 이대원 역시 톱 10 작가 반열에 있다. 더욱이 이대원의 작품 ‘농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에 걸려 있는 사진이 공개된 작품이어서 경매전부터 관심과 문의가 쇄도하였다.

경합이 치열했던 작품은 22회의 경합 끝에 2억2,000만 원에 낙찰된 오치균의 ‘가을정류장’, 25회의 경합 끝에 1억 1,000만 원에 낙찰된 김종학의 ‘설경’, 35회의 경합 끝에 2,800만 원에 낙찰된 류인의 조각작품 ‘어둠의 공기’, 29회의 경합 끝에 2,200만 원에 낙찰된 자수화조도 십폭병풍도, 21회의 경합 끝에 3,400만 원에 낙찰된 석지 채용신의 무신도, 30회가 넘는 경합 끝에 7,000만 원에 낙찰된 몽인 정학교의 괴석도, 25회의 경합 끝에 6,800만 원에 낙찰된 겸재 정선의 ‘강변한정’ 등이었으며, 이대원의 ‘농원’도 추정가가 상향 수정되었음도 21회의 경합 끝에 6억6,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경합이 심했던 작품은 모두 미술시장의 인기작가 작품 중 걸작이거나 대통령 일가 소유로 출처가 증명된 고미술품이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2년에 전재국의 결혼 기념으로 서산대사의 시를 서예로 써준 작품은 추정가 200만~400만 원에 출품되어 가장 치열했던 61회의 경합 끝에 2,300만 원에 낙찰되었다. 평소에도 꾸준히 판매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이라는 프리미엄과 서산대사의 명시, 그리고 결혼선물로 받은 진품이라는 요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내용도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발걸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라는 명구였다.

또 다른 김대중 대통령의 한문 서예작품인 ‘실사구시(實事求是)’도 추정가 150만~300만 원에 출품되어 33회의 경합 끝에 720만 원에 낙찰되었다.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수험생인 처조카에게 써준 추정가 100만~200만 원에 출품된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친필 휘호도 40회의 경합 끝에 1,100만 원에 낙찰되었다.

경매 현장에서 가장 박수가 많이 나온 때는 전직 대통령들의 서예작품과 고미술품이 경합을 벌이다가 고가에 낙찰되는 순간이었고,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가장 많이 터진 때는 역시 고가 작품이 낙찰될 때였다. 미술시장에서 대통령과 관련된 미술품은 나름대로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윤보선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서예, 친필 서간, 사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서예와 도자기 등은 이미 상당한 판매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이나 명구 휘호는 2,000만~4,000만 원대에 판매된다. 역대 경매에 20여 점 출품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서예 작품 가운데 최고가는 2006년 12월에 서울옥션에서 1억 5,500만 원에 낙찰된 ‘지인용(智仁勇)’ 휘호이다. 경매에 출품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은 100여 점에 달하며, 확실한 마니아 층이 형성되어 있어 2,000만~4,000만 원대의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작품 가운데 최고가는 2007년 3월 서울옥션에서 1억1,000만 원에 낙찰된 장문의한글 서예작품이다.

한자와 서예 세대인 대통령이 명구를 쓴 서예작품이나 정치적 신념 또는 국가와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글을 휘호로 남기는 것은 그 자체로 멋있는 행위이고, 대통령과 존경받는 정치인들의 서예작품과 소장품이 미술시장을 통해 판매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민들 입장에서 대통령은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언어, 문화생활, 행동은 모방의 대상이기도 하고 비판의 대상이기도 한다. 문화융성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지금 시대는 문화대통령을 고대하고 있다. 현실이 경제대통령과 복지대통령을 더 필요로 하고 있어 대통령이 드러내놓고 문화소비에 앞장서기가 쉽지는 않지만, 음악회와 미술전시회를 정말 편하게 찾는 대통령의 멋진 행보를 기대하는 국민도 많을 것이다. 숱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루브르궁전 앞에 유리 피라미드를 세운 미테랑 같은 문화대통령이 그립다.


서진수 교수는 …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2002년부터 미술시장연구소를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또 아시아미술시장연구연맹(AAMRU)의 공동창설자이자 한국 대표로 아시아 미술시장의 공동발전과 체계적 연구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문화경제의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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