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물의 네트워킹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혹은 사물지능통신(M2M:Machine to Machine.)은 우리 주변의 사물에 센서와 통신기능을 부여함으로써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면서 상호작용하도록 하는 지능형 네트워킹 기술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ICT 기술이 사람과 기기 간의 상호작용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IoT 하에서는 기기들이 자체적으로 정보를 수집·가공한다. 심지어 의사결정까지 직접 내리는 주체적 존재로 격상된다.
향후 IoT의 구현이 본격화되면 냉난방기기와 조명시스템이 사람의 위치를 인식해 자동 조절되고, 스프링클러가 알아서 적시에 적당량의 물을 정원에 살포하는 등 만물이 지능화되는 세상이 도래한다.
사실 ICT 업계는 이런 기술 트랜드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왔다. 이미 웬만한 가정에서는 스마트폰, 스마트 TV 등 네트워크에 24시간 연결된 기기들을 최소 2~3종류 이상 접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숫자가 2022년에 이르러 50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이런 기기를 개발하는 것과 각 기기들이 상호작용하며 일을 처리하도록 만드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단순 상호작용을 넘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여러 기기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주인공은 바로 컴퓨터와 컴퓨터 간의 통신방법, 또는 컴퓨터와 단말기 간의 통신방법에 대한 규약인 프로토콜(protocol)이다. 예컨대 현재 웹에 관련된 프로토콜만 최소 50개나 존재하며 무선기기의 경우 블루투스, 지그비, 무선 태그(RFID) 등의 프로토콜로 정보를 교환한다.
결국 IoT는 사실상 작게 쪼개진 수백 개의 인터넷과 다름없다. 각 기기들이 자기만의 네트워크에 위치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사용자는 여러 네트워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거나 여러 네트워크를 동시에 동작시켜야만 한다. 문제는 지능형 전구와 지능형 블라인드처럼 동시 작동이 필연적인 사물임에도 기술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 아직은 각 사물마다 별도의 스마트폰 앱을 다운받아 개별적으로 제어할 수밖에 없다.
시장선점을 위한 선제적 투자
이에 대한 해법은 없는 걸까. 현재 엔지니어들은 임시방편으로나마 이 난제를 우회할 방안을 찾아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홈오토메이션 기업 리볼브는 10가지 무선 프로토콜을 다룰 수 있는 허브를 판매 중인데 온도조절기, 차고 문, 조명 등 가정의 와이파이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는 무선기기들과 자동 연결돼 제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이용해 이들을 개별 제어할 수도, 동시 제어할 수도 있으며, 조명을 켜면 온도조절기가 특정 온도로 세팅되도록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초기의 IoT는 이 정도만으로도 큰 문제가 없지만 IoT가 지닌 잠재력이 온전히 발휘되려면 진정한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IBM, 시스코 등의 기업들은 모든 네트워크 연결기기를 위한 개방형 표준 마련에 돌입했다. 후보로 논의되고 프로토콜 중에는 페이스북이 iOS 기기의 실시간 알림 프로토콜로 사용 중인 MQTT도 있다. 유연성과 확장성 면에서 스마트 기기의 표준프로토콜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IoT에 국가 차원의 정책적·사업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IoT가 궁극적으로 환경, 에너지, 재난·재해 관리 등의 분야에서 현안문제 해결의 최적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주요 기업들 역시 비용 절감, 경영 효율화, 신규 서비스 창출 등 IoT의 효과에 주목하면서 선제적 연구개발에 나선 상태다. 그 결과, 초기의 IoT 서비스는 전력·가스·기계 등 고정된 산업시설에 주로 적용됐던 반면, 근래 들어 자동차, 휴대기기, 사람 등 움직이는 객체로 적용성이 지속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2009년 방송통신위원회가 IoT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방송통신 미래서비스 전략에 IoT를 포함시키는 등 공공분야를 중심으로 선도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최근 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융합기술 연구생산센터에 입주해 있는 벤처기업 페타리와 공동으로 물류·운송용 팔레트에 통신기술을 접목, 위치 추적·관리가 가능한 관제시스템 개발에 성공한 것도 이러한 투자의 결실이다.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다
IoT와 함께 떠오르고 있는 ICT 소통기술로 근거리무선통신(NFC)이 있다. 현재 미국에서만 2,150만명이 저 시력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령화에 따라 이 숫자는 30년 내 두 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10㎝ 이내의 근거리에서 다양한 무선 데이터를 주고받는 NFC는 이런 현실에 맞춰 스마트폰과 연계해 시각장애인들의 제2의 눈이 돼줄 수 있는 기술로 지목된다.
물론 이미 스마트폰에는 저 시력자들을 위한 기술들이 적용돼 있다. 애플은 텍스트 크기를 56폰트까지 키울 수 있도록 iOS를 프로그래밍 했으며, 화면상의 글자를 읽어주는 보이스오버 기능도 지원한다. 시각장애인용 앱도 하나 둘이 아니다. iOS용 ‘LookTel Recognizer’ 앱은 사진을 촬영하는 것만으로 냉장고 속 반찬의 종류, 찬장의 통조림 종류를 알 수 있다.
다만 이런 앱들은 대개 인터넷에 접속한 상태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반면 NFC는 인터넷 연결 없이도 이 같은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물건에 NFC 태그를 부착하고, 휴대폰에 NFC 리더기를 내장하면 특정 물건의 10㎝ 이내로 휴대폰을 가져다댔을 때 해당 물건의 태그 정보가 휴대폰에 인식된다.
NFC는 현재 조금씩 보급이 이뤄지고 있는데 작년 가을 출시된 구글의 전자지갑 ‘구글월렛(Google Wallet)’도 NFC를 이용해 신용카드 정보를 송신한다. 구글은 또 NFC를 기본 지원하는 안드로이드 4.0을 내놓았으며 삼성전자, LG전자 등 휴대폰 제조사들 역시 NFC 지원 모델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덕분에 지금은 NFC 태그의 단가가 몇 센트 단위로 떨어졌다.
특히 NFC의 스펙 개발을 담당하는 NFC포럼으로부터 NFC 관련 라이선스를 획득한 기업이 벌써 1,100개사에 이른다. 이중에는 시각장애인 관련 라이선스도 있다. 핀란드의 국가연구기관인 VTT 국립기술연구센터는 약병에 NFC 태그를 적용, 약물 정보와 복용 방법을 알려주는 기술을 제시했고 프랑스의한 식료품 기업은 NFC로 식품의 영양정보를 제공하는 ‘씽크&고(Think&Go)’ 기술을 시험운용한 바 있다.
이렇듯 NFC 활용도가 늘어나면 저 시력자들을 위한 앱들도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이 인쇄물 브로슈어 대신 NFC 태그로 다운받을 수 있는 디지털 브로슈어를 도입한다면 저 시력자들이 예술품을 감상하는 꿈같은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다.
국내의 경우 한동대학교에서 NFC 기술과 스마트폰과 접목해 라이프, 교육, 관제, 행정 등으로 적용 범위 확대를 모색 중이다. KT와 공동 개발하고 있는 이 시스템은 도서관, 강의실, 식당, 서점 등 각종 시설의 이용 예약과 결제가 가능하다. 이렇듯 ICT 소통 기술은 ‘사람-사람’, ‘사람-사물’을 넘어 ‘사물-사물’이 소통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는 그동안 여러 제약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들을 획기적으로 해소하는 방향으로 신기술과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