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쓰레기 맨

THE GARBAGE MAN<br>마이크 비들의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이용하면 영원히 새로운 플라스틱을 제조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2001년 12월 미국의 환경운동가 짐 퍼켓은 폐 컴퓨터들의 행방을 찾으러 중국 광둥성의 구이유 지역을 찾았다. 그는 서구사회에서 배출된 폐전자제품들이 현재 구이유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구이유의 마을 4곳은 지난 수백 년간 인근의 롄장(廉江) 유역에서 쌀을 재배해 생활해왔지만 퍼켓이 그곳에 도착해 처음 본 것은 한 남성이 컴퓨터 키보드가 5m 높이로 쌓인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던 모습이었다. 마치 동화 속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갔듯 퍼켓도 자전거를 쫓아 마을에 입성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기괴하고 어이없는 마을 풍경에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거리와 집 마당마다 모니터, 프린터, 팩스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웃마을에서도 여성들이 도로로 나와 회로기판을 태우고, 아이들은 잿더미 위에서 놀고 있었다. 엄청난 전선들이 타면서 내뿜은 유독한 연기가 거대한 구름을 형성했으며, 땅에는 질척한 침전물이 바다를 이뤘다. 주민들의 모습은 프린터 토너를 뒤집어 쓴 듯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멨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제 구이유는 5시간 거리의 항구도시 난하이에서 배출되는 폐전자제품의 재활용 거점으로 특화됐다. 하루 1달러 50센트의 일당을 벌기 위해 과거 농사를 짓던 수천 명의 주민들이 교외에서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일종의 가내수공업처럼 마을마다, 집집마다 특정 종류의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어떤 집은 구덩이를 파고 전선을 태워서 구리를 얻었고, 어떤 집은 문을 닫은 대중목욕탕의 욕조에 산성 액체를 들이붓고는 회로기판을 담가서 금을 추출했다. 물론 그들 중 보호의를 입은 사람은 1명도 없었다.

마을 전체가 플라스틱 재활용에 나선 곳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공장의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컴퓨터 케이스를 손도끼로 부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라인더가 플라스틱 파편들을 콩알 크기로 파쇄하면 아이들이 일일이 뒤져서 색깔별로 분류하고, 압출 성형기에 넣어서 천천히 녹이게 된다.

“5분정도 작업을 구경했더니 메스꺼움이 느껴지더군요. 그곳에는 환기시설이라고는 전혀 없었죠. 작업자들은 하루 종일 탄화수소를 들이 마시고 있었어요. 게다가 플라스틱에는 브롬화 난연제 같은 유해물질이 함유돼 있어요. 그런 플라스틱을 태우면 온갖 발암물질을 들이마실 수밖에 없습니다.”

“마을의 수로에서 샘플을 채취해 수질을 검사했더니 중금속 함유량이 세계보건기구(WHO) 음용수 안전기준치의 190배나 되더군요. 크로뮴(Cr)의 경우 미 환경보호청(EPA)이 정한 환경위험기준의 무려 1,338배에 달했습니다.”

퍼켓은 유해폐기물에 의한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활동하는 비정부기구인 바젤행동네트워크(BAN)에서 일하고 있다. 2002년 BAN은 퍼켓의 여정을 다룬 ‘유해물질 수출:아시아의 첨단 쓰레기’라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했는데 미국이 개발도상국에 폐전자제품을 내다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입증한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

영상이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크 비들이라는 화학공학자가 우연히 그 영상을 접했다. 미국 땅에서 나온 폐전자제품들의 행방에 의혹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수년간 플라스틱 제조분야에서 일했던 그는 1992년부터 완전히 정반대의 일이라 할 수 있는 플라스틱 분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혼합 플라스틱, 즉 페트병과 비닐봉투 등 다양한 플라스틱 재료로 만든 재생 플라스틱은 재활용 업계에서도 막장으로 통한다. 혼합 플라스틱으로 만든 뒤에는 더 이상의 재활용이 불가능한 탓이다. 게다가 컴퓨터 같은 하이엔드 제품에 쓰였던 플라스틱이 이렇게나마 화분, 배수시설용 타일 등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대부분은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로, 바다에 버려진다. 그런데 BAN의 영상을 보고 난 뒤 비들은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해냈다. 혼합 플라스틱을 완벽히 재분리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특히 이 기술은 하이엔드 제품의 소재를 로우엔드 제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하향적 재활용도 아니다. 예컨대 비들은 폐 노트북에서 얻은 플라스틱을 극상의 상태로 정제해 새로운 노트북 제조용 플라스틱으로 판매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여기에 투입되는 비용이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치몬드에 위치한 자신의 공장에서 새 플라스틱 제조에 필요한 에너지의 단 10%만으로 새 플라스틱과 다름없는 재생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 현재 세계에서는 매 10초마다 24만장의 비닐봉지가 사용된다. 미국 국적 항공사의 이용객들이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컵은 매 6시간마다 100만개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매년 버려지는 플라스틱은 족히 1억톤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폐플라스틱을 새 플라스틱으로 정제해 플라스틱 제조와 재활용을 매칭시킬 수 있다면 인류의 석유의존도는 대폭 낮아질 것이 자명하다.

또한 이는 유가에 더해 국가간 무역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저개발국들이 폐전자제품으로 뒤덮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람들이 플라스틱을 마구 버리지 않고 비들에게 준다면 그는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초 만에 자동차 1대가 조각조각 분쇄되는 모습을 보여드릴까요?”
런던 교외의 공업지대에 위치한 영국 최대 금속 재활용 기업인 유럽금속재활용(EMR)의 고철 야적장으로 걸어가던 필자에게 비들이 던진 말이다. 영국의 2월 아침은 생각이상으로 추워서 빨리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 장관을 놓칠 수는 없었다.

당초 비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필자는 샌프란시스코주 리치몬드 소재의 공장에서 따뜻한 날씨 속에 플라스틱 재생에 관해 얘기를 나눌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비들이 설립한 MBA 폴리머스는 미국에선 전혀 플라스틱을 재생하지 않았다. 재활용에 필요한 원료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리치몬드 공장을 연구시설로 활용하는 대신 영국과 중국, 오스트리아에 재생공장을 건설했다.

“2011년 미국과 유럽에서는 각각 3,000만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했어요. 유럽은 이중 25% 이상을 재활용했지만 미국의 재활용률은 10% 미만이었죠. 산업화를 이룬 국가 가운데 법으로 전자제품과 자동차의 국내 재활용을 의무화하지 않는 것은 미국뿐입니다. 미국이 쏟아낸 폐플라스틱의 상당량이 개발도상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비들에게 유럽과 아시아의 일부 국가는 기회의 땅이다. 실제로 유럽 제조기업들은 유럽연합(EU)의 지침에 의거, 구체적인 재활용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덕분에 비들도 여러 기업과 협력관계를 맺고 폐플라스틱을 확보하고 있다. 영국 공장의 경우 EMR이 원료 대부분을 공급 중이다.

비들과 필자가 이른 아침부터 EMR의 고철 야적장을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비들의 공장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240㎞ 떨어진 곳에 있지만 재활용 공정의 첫 단계는 여기서 시작된다.

3기의 크레인이 낡은 BMW와 아우디 자동차를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자 3층 건물 높이의 파쇄기 입구로 차량이 이송됐다. 이후 대형 롤러가 엄청난 굉음과 연기를 뿜어내며 차량을 납작하게 찌그러뜨리더니 5,000마력급 파쇄기로 던져 넣었다. 안내를 해주던 EMR의 직원인 그림 카루스에 의하면 파쇄기 속에서는 180㎏의 강철해머 16개가 분당 500회 회전하며 지옥도를 연출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산산조각이 납니다. 전자제품이든 자동차든 이 녀석에게 자비는 없죠. 그렇게 시간당 220톤의 폐기물 파쇄가 가능합니다.”

필자 일행은 이 야수를 뒤로하고 분쇄된 폐기물 더미로 다가갔다. 총 3개의 더미가 있었는데 첫 번째 것은 주먹 크기의 회색 강철 덩어리들이었다. 파쇄기의 해머에 얻어맞아서인지 뜨거운 연기를 뿜고 있었다. 두 번째 더미는 알루미늄, 구리 등의 비철금속이었고 세 번째 더미는 분쇄 잔여물이었다. 분쇄 잔여물에는 플라스틱, 발포재, 고무, 유리, 가죽, 카펫, 심지어 나무와 돌도 섞여 있었다.

“분쇄된 파편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면서 가벼운 것들은 진공청소기에 의해, 무거운 철제 파편은 자석에 의해 걸러져 세 종류로 분류됩니다. 분쇄 잔여물의 경우 과거에는 쓰레기 매립지에 버렸지만 이제는 비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비들에게 플라스틱은 이론상 영원히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분쇄 잔여물 더미는 쓰레기에 불과하겠지만 제 눈에는 노다지로 보입니다.”





3시간 정도를 런던 북쪽으로 달려가면 한때 번성했던 워크소프 탄광촌이 나온다. 바로 그곳에 1만8,600㎡ 면적의 MBA 폴리머스의 폐플라스틱 재생공장이 들어서 있다. 파란색의 이 공장 역시 버려진 유리병 제조공장을 재활용했다.

로비에 들어서자 비들이 걸음을 멈추더니 한편에 놓여있던 멋진 검은색 탁상 램프들을 보여줬다. 그리고는 EMR에서 보내온 분쇄 잔여물들이 잔뜩 쌓여있는 집하장으로 안내했다. 이것이 아까 본 멋진 탁상 램프의 원료였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광물 채굴과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물질들 사이에서 필요한 물질을 골라내는 것이야말로 MBA 폴리머스의 재생공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의 하나다. 비들에게 있어 필요한 물질은 내구재의 원재료로 쓰이는 5대 플라스틱이다. ABS 수지, 내충격성 폴리스티렌(HIPS),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폴리프로필렌(PP), 그리고 물성 향상을 위해 특정 물질을 첨가한 폴리프로필렌(Filled PP)이 그것이다.

“가끔은 동물들의 사체가 나오기도 해요. 분쇄 잔여물 속에는 없는 게 없답니다.”
비들이 플라스틱처럼 보이는 검은 물체를 끄집어내더니 말을 이었다.
“이건 플라스틱이 아니라 고무 튜브에요. 탁상 램프 같은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지를 포함해 이런 비(非) 플라스틱 물질들을 99%까지 제거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품에 결합이 생깁니다.”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에도 분류공정은 계속된다. 앞서 언급한 5대 플라스틱을 다른 플라스틱들과 구별해야하기 때문이다. 금속은 종류별로 밀도와 색상, 전자기적 물성에서 비교적 뚜렷한 차이가 있어 분류가 용이하지만 플라스틱은 밀도가 대동소이한데다 워낙 다양한 모양과 색상으로 성형이 가능해 5대 플라스틱을 구분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특히 플라스틱은 종류에 더해 물성에 따른 분류도 요구된다. 동일한 종류의 플라스틱이라도 어떤 것은 난연성(難燃性)이고, 어떤 것은 가연성이다. 또한 어떤 것은 강화플라스틱이지만 어떤 것은 아니다. 게다가 플라스틱에 입혀진 각종 코팅과 도료들이 이 모든 분류공정의 복잡성을 한층 배가시킨다.

“정말 힘든 일이죠. 저희 말고는 누구도 이런 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아무도 저희만큼 세밀한 분류공정을 운용하지 않습니다.”

비들과 필자는 집하장을 나가서 2층 정도 높이의 철제 계단을 올라갔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컨베이어 벨트와 플라스틱 분류 장치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저는 이곳을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윌리 웡카 공장’이라고 부릅니다.
광업, 금속 재활용, 식품 가공 등 다양한 업종에서 사용하는 기술들이 총망라되어 있거든요. 물론 저희가 직접 개발한 기술도 많지만요.”

구체적으로 집하장의 분쇄 잔여물들은 가장 먼저 분쇄기로 보내져 동전 크기로 부서진다. 2단계는 세척으로 화학물질을 일정 사용하지 않으면서 먼지 등의 불순물이 제거된다. 이것을 조립기(造粒機)에 넣어서 색종이 꽃가루 정도로 잘게 부서뜨린 뒤 수십 번의 분류공정을 거치면 5대 플라스틱이 종류별로 분리돼 저장고로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저장고의 폐플라스틱을 녹여서 국수 가락처럼 압출성형해 겨자씨 크기의 펠릿으로 절단하면 모든 공정이 완료된다.

비들의 설명은 이게 전부였다. 분류공정의 세부적인 원리는 고사하고 공정의 순서나 공정의 수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전 공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회사 내에서도 극소수라고 한다. 가장 까다로운 분류 공정의 경우 출입제한구역에서 별도로 진행된다고도 귀띔했다. 사실 이 같은 비밀유지는 충분히 예상됐던 바였다.

MBA 폴리머스는 여러 종류의 폐플라스틱을 한꺼번에 녹여서 만든 혼합 플라스틱을 생산하지 않는 전 세계 유일의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업이기 때문이다.
“혼합 플라스틱은 모든 면에서 원래의 플라스틱에 못미칩니다. 그렇게라도 재활용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습니다.”

MBA 폴리머스에서도 일부 분쇄 잔여물을 혼합 플라스틱 제조업자에게 판매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기업들이 이 회사가 생산한 고순도의 재활용 플라스틱을 구입하고 있다. 이미 MBA 폴리머스의 재활용 플라스틱은 네스프레소의 커피머신과 일렉트로룩스의 진공청소기 같은 하이엔드급 전자제품 제조에 활용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가전업체들도 고객으로 확보했다. 그동안 60건의 특허를 획득했고, 출원 중인 특허는 이보다 훨씬 많다.

“지금까지 오기 위해 20년의 세월과 1억5,000만 달러의 자금이 투자됐습니다. 이 사실을 말했다고 투자자들이 저를 죽이려 들지도 모르겠네요.”




10대 시절부터 비들은 신문배달, 식당 청소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부모님을 도와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가족은 집을 잃었고, 그 경험은 비들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관련기사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던 그는 공부에 매달렸고, 고교 때는 ‘미래에 가장 크게 성공할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 비들은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 재능을 공학에 활용해 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공학 분야에서 가장 연봉이 높다고 알려진 화학공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켄터키주 소재 루이빌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집에서 가까웠고, 우수한 공학 교육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었던 데다 한 학기당 등록금이 단돈 265달러에 불과해 그에게는 더없이 완벽한 대학이었다.

대학 졸업 후 비들은 세계적인 종합가전기업 GE의 플라스틱 연구소에 들어가 연구원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플라스틱이 미래 우주시대를 선도할 첨단 소재로 여겼었고, 비들도 플라스틱에 푹 빠져들었다. 그래서 훗날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에서 고분자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해 다우케미컬에서 합성 플라스틱 연구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1980년대 후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몇 건의 뉴스를 접하면서 플라스틱을 바라보는 비들의 시각에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모브로 4000(Mobro 4000)’이라는 바지선에 대한 뉴스였다. 이 바지선은 3,168톤의 쓰레기를 처리할 곳을 찾기 위해 뉴욕과 벨리즈 사이를 무려 5개월 동안이나 떠돌았지만 팽배한 님비현상에 밀려 어디에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브로 4000의 쓰레기는 수차례의 수사와 법정 공방, 접근금지 명령, 멕시코 해군과의 대치 등 무수한 이슈들을 남긴 채 뉴욕에서 소각 처리됐다.

비들의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또 다른 뉴스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시당국의 1회용 스티로폼 용기 사용금지 조치였다. 이 소식을 접한 비들은 다우케미컬이 스티로폼 용기의 재료인 폴리스티렌 발포재를 생산한다는 사실에 괴로움을 느꼈다.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사회문화적으로 1회용품 사용이 늘어가면서 자신이 만든 플라스틱이 더 많이 버려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폐플라스틱의 합리적인 처리 방안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1988년 비들은 이 문제를 다우케미컬의 연구개발 부장인 번 메이 박사와 상의했지만 메이 박사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우리는 쓰레기나 연구하라고 박사를 고용한 게 아니에요.”

비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수차례의 설득 끝에 관련연구를 허락받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비들은 회사를 나와 독립했다. 당시 그는 폐플라스틱에 엄청난 가치가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대량의 폐플라스틱을 종류별로 분류할 방법 없이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크나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던 1992년 미국플라스틱협의회(APC)가 비들의 컴퓨터용 플라스틱 재활용 방안 연구에 자금을 지원했고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미 환경보호청(EPA), 미 에너지부(DOE), 미 상무부(DOC) 등도 잇따라 보조금 및 융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1993년부터 1999년 사이 그는 700만 달러의 자금으로 핵심 사안의 해결방법을 연구했다. 컴퓨터 구성품의 분리와 파쇄 중 어떤 공정을 먼저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기존 분류기술 중 활용 가능한 것은 무엇인지 등이 그것이었다.

이 시절 비들은 레이 만이라는 영국인과 친분을 맺었다. 유럽에서 알아주는 전자제품 재활용 업자였다. 비들의 눈에 만의 시스템은 너무나도 길고, 수고스러우며, 많은 양을 처리할 수 없는 비효율적 공정이었지만 그가 만든 재생플라스틱이 IBM에 납품되고 있었다. 비들은 만의 시스템을 보면서 폐기물을 분리하기 전해 미리 분쇄하면 자동화 공정을 통해 대량의 물량을 처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만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폐기물을 산산조각 낸 상태에서 분류를 하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농담하느냐고 되물었죠. 비들도 플라스틱을 다루는 데는 이력이 난 사람이지만 그것이 고순도의 재생플라스틱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어요.”

이후 비들은 플라스틱 분류방법을 하나 둘 배워나갔다. 하나의 분류공정을 완벽히 습득하고 만족스러운 해법을 찾고 난 뒤에야 다음 단계의 분류공정으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비들의 연구팀은 실험 규모를 확장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투자자를 물색해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파일럿 공장을, 리치몬드에 상용공장을 건설했다. 그리고 2000년이 되자 리치몬드 공장은 직원들을 3교대로 24시간 운용해야 될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비들은 회사가 커나갈수록 충분한 폐플라스틱을 구하는 데 한계를 느꼈고, 그 문제야 말로 자신의 힘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미국 연방법에는 폐자동차나 폐전자제품의 재활용을 의무화하는 법규가 없었으며, 폐전자제품을 연안에 버리는 행위조차 금지하지 않고 있었던 것. 결국 비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가 처음 주목한 곳은 일본. EU가 제조사들에게 폐전자제품과 폐자동차를 수거해 책임감을 가지고 재활용하라는 지침을 마련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지만, 일본은 이미 그 이전부터 폐전자제품의 대규모 수거와 재활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재생공장 설립은 재정적, 물류적 부담이 너무 컸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중국이었다. 당시 중국도 미국처럼 재활용 관련 법규가 없었지만 비들의 개념에 관심을 갖는 기업들이 많았다. 그는 이런 기업들과 폐전자제품을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도록 계약을 체결하고 2006년 광저우에 공장을 세웠다. 같은 해 EU의 재활용 법규제정에 맞춰 오스트리아에도 폐전자제품의 플라스틱 재생공장을 설립했고, 2010년에는 폐자동차의 플라스틱 재활용에 초점을 맞춘 공장이 영국 런던에 들어섰다.

오늘날 비들의 MBA 폴리머스는 하루 450톤, 연간 12만5,000톤 이상의 재생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있다. 비들이 이사로 활동 중인 친환경 전자제품 인증기관 EPEAT의 웨인 리퍼 연구부장은 이렇게 전했다.
“비들은 재활용을 통해 기존의 저품질 재생 플라스틱이 아닌 고품질 플라스틱도 얻을 수 있음을 세상에 알려준 사람입니다. 이 분야의 개척자이자 선구자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전 세계 플라스틱 소비량을 감안하면 비들의 재활용 규모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환경운동가 짐 퍼켓에 의하면 지금도 대다수 개발도상국에서 폐전자제품과 폐플라스틱들이 부적절한 방법으로 처리되고 있으며, 이는 비들의 꿈과 인류의 미래에 현실적 위협이 되고 있다.
“홍콩에만 매일 컨테이너 박스 100개 분량의 유독성 폐전자제품이 도착합니다. 상당수의 국가들이 이처럼 타국의 폐플라스틱을 대신 처리해주고 있다는 점이 비들의 문제 중 하나에요. 기존 방식은 부적절하지만 저렴하죠. 반면 비들은 제대로 처리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비쌉니다. 가격으로는 경쟁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2000년부터 비들은 개발도상국으로 흘러들어가는 폐전자제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퍼켓이 중국 구이유에서 다큐 영상을 촬영하기 훨씬 이전이다. 리치몬드 공장의 운용에 필요한 자재를 구하기 힘든 이유가 궁금했던 비들은 홀로 중국을 여행했고, 훗날 퍼켓이 만천하에 알린 내용을 직접 목격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했다.

“문제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 상황이 제 사업에 지장을 줄 수 있음을 인지한 것은 한참이나 지난 뒤였어요.”
폐플라스틱 수급의 불안정성은 중국과 유럽에 재생공장을 설립한 이후에도 그를 계속 괴롭혔다. 일례로 유럽은 엄격한 재활용 관련 법규에도 불구하고 집행이 너무나 느슨해 무역업자들과 브로커들이 계속해서 개발도상국에 방대한 폐전자제품을 넘겨버렸다.

좀 더 정확한 실정을 파악하고자 비들은 뭄바이, 멕시코시티 같은 곳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계 최대 규모라 해도 무방할 거대한 쓰레기 더미들을 봤다. 수십만명의 극빈자들이 타국에서 온 쓰레기들을 뒤져서 조잡하고, 위험한 방법으로 재활용하고 있었다.

결국 비들은 부유한 국가들이 가난한 국가에 폐기물을 떠넘기는 행위를 ‘환경적 부당거래’라고 규정하고 공론화시키기 시작했다. 뉴델리에서 열린 UN의 지속가능 발전컨퍼런스에서 이 주제를 거론하며 폐플라스틱 재활용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미국의 폐전자제품을 해외로 보내는 것을 금지하는 법규 제정과 관련해 미 의회에서 참고인 증언을 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세계 최고의 지식나눔 행사로 꼽히는 TED 컨퍼런스에서 강연한 동영상이 조회수 100만회를 돌파했다.

이 모든 활동은 그의 명성에 더해 환경 부당거래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높였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비들을 기술 선각자로 칭했고, 2007년에는 제인 구달, 자크 쿠스토, 레이첼 카슨 등이 받았던 ‘지구를 지키는 영웅(Earthkeeper Heroes)’ 칭호도 받았다.

또 2012년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와 전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에 이어 지속가능 발전 부문의 예테보리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과연 비들의 지명도 향상이 정말로 폐플라스틱을 대하는 일반 대중의 인식이나 감정도 바꿔놓았을까? 이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특히 미국에서는 더 그렇다. 2011년과 2013년 미 의회는 초당파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전자제품 재활용법의 표결에 실패했다.

그나마 소귀의 성과는 있었다. 작년 4월 EPA가 미국에서 발생한 분쇄 잔여물 속의 폐플라스틱을 선별해 재활용하도록 할 법적 근거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비들의 대외 활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케임브리지대학의 강연 중 일부를 맡고 있으며, 각국의 환경 장관들이 참여하는 기후변화포럼의 만찬에도 참석한다. 케임브리지대학의 지속가능 리더십 프로그램(CPSL) 책임자인 폴리 커티스 박사는 CPSL의 후원자인 찰스 왕세자와 비들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영국에서 그와 함께 했던 3일 동안에도 그는 이런저런 강연장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중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강연을 참관할 수 있었다. 그날 비들은 1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의 아들이 장난감을 갖고 노는 사진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처음 본 것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뭔가를 만들 때면 거기에 들어간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라고 하죠. 자기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것이 부서져 버리는 순간, 뒤처리는 남에게 넘겨버립니다.”비들은 말을 이어갔다.

“저는 재활용 업계에서 20년을 보내면서 우리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들 세상의 규칙을 따르고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비들은 뭄바이에서 찍은 빈민가의 사진 1장을 더 보여줬다. 사진 속에는 그에게 플라스틱의 종류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들의 모습도 찍혀 있다고 했다. 플라스틱을 태워서 냄새로 알아맞히는 방법이었다.
“뭄바이의 현지인들은 플라스틱을 태운 뒤 유독성 가스를 직접 맡아보고 플라스틱의 종류를 구분해 별도의 수집함에 넣습니다.”
태평양 미드웨이제도에서 촬영한 앨버트로스 사체의 해부 사진도 등장했다. 뱃속에는 수백 개의 플라스틱 조각이 들어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예컨대 생산과정에서 노동력 착취가 일어나지는 않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확인합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이 어떻게 폐기되고 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이 사진들을 통해 폐기 과정이 불공정하며, 안전하지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비들은 미국이 산업화를 이룬 국가 중 재활용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임을 먼저 실토한 뒤 영국의 법률도 부실하게 집행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폐전자제품들이 해외의 브로커들에게 판매되고 있으며, 그 최종 행선지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의원들에게 2가지를 요구하며 강연을 마쳤다. 하나는 법 집행을 더욱 엄격히 해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활용 촉진을 위해 재생 플라스틱 판매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자는 것이었다.

몇 주 후 비들과 통화를 했더니 영국 정치가들의 입바른 소리보다 그의 마음을 북돋운 사건에 대해 알려줬다. 다름 아닌 중국 정부가 발표한 ‘그린 펜스(Operation Green Fence)’ 정책이었다. 이는 순수 재활용품이 아닌 오염물질이나 폐기물이 섞인 재활용품의 중국 유입을 불허하는 정책이다. 이로 인해 미국 내 폐기물 브로커들의 행보에 큰 제약이 걸렸고, 비들의 전화기는 끊임없이 울려댔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이 1년 후쯤 예전의 정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중국이 원하는 것은 재활용 가능한 자원이지 쓰레기가 아니니까요.”
불현듯 수화기 너머로 비들의 헛웃음 소리가 들릴듯 말듯이 흘러나왔다.
“지난 수년간 유럽과 미국의 국회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그린 펜스와 유사한 취지의 정책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더군요. 그런데 중국이 한발 앞서 정책변화를 꾀하고 있어요. 앞으로 그린 펜스정책이 제대로 정착되기를 기대합니다.”

MBA 폴리머스의 폐플라스틱 재생 공정
MBA 폴리머스의 구체적인 재생공정은 기업비밀이다. 다만 큰 틀에서는 추정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 이 공정의 목표는 잡다한 폐기물들 속에서 5대 플라스틱을 선별, 제조업체에 신제품의 원료로 판매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폐기물을 분쇄한 뒤 특정 순서에 따라 수십 가지 분류 공정이 진행된다. 활용 가능성이 높은 몇 가지 공정기술을 꼽아봤다.

철제 금속 제거
자석 컨베이어 벨트

강력한 자석이 내장된 천정 부착식 컨베이어 벨트. 폐기물이 이송되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장착하면 철 성분의 물질들이 달라붙어 별도의 장소로 분류된다.

비철금속 제거
와전류 분류기

회전식 드럼에 내장된 전자석이 컨베이어 벨트 끝에서 자기장을 생성한다. 이 자기장에 밀려서 알루미늄, 구리, 납 등의 비철금속들만 컨베이어 벨트에서 멀리 던져져 분류된다.

중량별 분류
중력 테이블

경사진 테이블에 폐기물들을 올려놓고 팬을 이용해 테이블 표면에 공기압을 가한다. 그러면 가벼운 것들이 위로 떠오른다. 이와 동시에 패널이 진동하며,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반대쪽으로 분리한다.

화학적 플라스틱 분류
포말 부유 선별기

특정 플라스틱에 작용하는 표면활성물질을 폐플라스틱에 첨가한 뒤 탄산가스가 주입된 액체에 담근다. 그러면 해당 플라스틱에만 공기방울이 달라붙어 물 위로 떠오른다.

색상별 플라스틱 분류
색상 입자 분류기

폐플라스틱 조각들을 광전자 감지기에 통과시킨다. 사전에 지정된 색상이 아닌 플라스틱이 감지되면 에어 건이 감지기 외부로 날려 보냄으로써 한 가지 색상의 플라스틱만 선별한다.

폐플라스틱의 행방
미국은 재활용을 위해 폐플라스틱을 수거하지 않는다. 재활용율은 대략 10%에 불과하다. 유리병처럼 쉽게 분류할 수 있는 것들만 재활용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90%는 인건비가 저렴해 수작업 분류가 가능한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다. 미국에서 수출되는 폐전자제품의 약 30%가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폐전자제품의 행방은 폐플라스틱의 추적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BAN Basel Action Network.
유해물질 수출:아시아의 첨단 쓰레기 Exporting Harm: The High-Tech Trashing of Asia.
ABS 아크릴로니트릴(Acrylonitrile), 부타디엔 (Butadiene), 스티렌(Styrene).
와전류 (eddy current) 전자유도에 의해 도체 내부에 생기는 소용돌이 모양의 전류. ‘맴돌이 전류’라고도 한다.
님비 (NIMBY) ‘Not In My Backyard’의 약자. 자신의 거주지 인근에 위험시설이나 혐오시설의 유입을 강력히 반대하는 지역이기주기를 뜻한다.

파퓰러사이언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