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다시 가동된 부시 양조장

A BUSCH BREWS AGAIN

by Deth Kowitt


앤호이저-부시 Anheuser-Busch는 초대형 벨기에 맥주회사에 매각된 상태다. 이에 부시 가문의 후손 빌리 부시 Billy Bush가 가업을 잇기 위해 맥주사업에 뛰어들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새롭게 거듭난 빌리를 만났다.

빌리 부시(54)는 맥주에 취해서가 아니라 맥주-정확히 말하면 집안의 맥주사업-를 생각하며 울고 있었다. 앤호이저 부시(이하 AB)의 창업자 아돌프 부시 Adolphus Busch의 증손자인 빌리는 맥주사업에 참여한 적이 전혀 없었다. 어린 시절 양조장을 몇 번 방문한 게 전부였다. 거의 30년간 이복형제인 어거스트 부시 3세 August Busch III가 맥주사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2008년 AB가 벨기에 양조업체 인베브 InBev에 매각된 후 빌리는 150년 만에 처음으로 부시 일가의 맥주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정말 마지막이 될 것만 같았다. 절대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빌리는 ‘부시’ 가문의 후손다운 결정을 내렸다. 바로 직접 양조업체를 설립한 것이다. 그렇게 2009년 윌리엄 K 부시 양조회사(William K. Busch Brewing Co.)가 탄생했다. 얄궂게도 빌리는 AB의 매각 대금 일부를 이용해 사업을 시작했다(빌리는 구시 Gussie라는 별칭으로 더 친숙한 선친 어거스트 주니어 August Jr.로부터 물려받은 AB주식 40만 주를 인베브와 합병 전까지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빌리는 AB (혹은 그의 말을 빌리면 ‘그의 가족과 밀접히 연관된 기업’)에서 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앤호이저-부시 인베브 Anheuser-Busch InBev(줄여서 AB 인베브로 불린다)로부터 ‘비경쟁협약(a noncompete agreement)’에 서명하도록 요구 받지 않았다. 덕분에 빌리는 기업명에 자신의 성이 들어가 있는 AB 인베브와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다. 2011년 빌리는 버드와이저나 버드라이트 같은 제품들과 경쟁하기 위해 프리미엄 라거 크래프티히 라거 Kraftig Lager와 라이트 맥주 크래프티히 라이트 Kraftig Light를 출시했다.

크래프티히 시리즈는 마케팅 효과를 높이기 위해 명문가의 이름만 빌린 알맹이 없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빌리는 1세기 전 아돌프와 그의 후견인들이 소규모 지역 양조업체를 미국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었던 신화를 재현하고자 한다. 그는 “이 회사(윌리엄 K 양조회사)와 함께 부시 가문 양조업 역사의 제 2장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의 목표 중 하나는 부시 가문의 신세대가 양조업 1세대 시절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다. 빌리는 윌리엄 K에 대한 투자규모 공개를 거절했다. 윌리엄 K의 본사는 세인트루이스에 있으며 AB 본사와 10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처음부터 빌리는 화려한 혈통만으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빌리는 양조업체를 운영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분야의 문외한도 아니었다. 그는 형제들(아돌프 Adolphus와 앤드루 Andrew)과 함께 맥주 도매업체 두 곳을 운영한 경력이 있다. 빌리는 차별화를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량생산과 독특한 맛으로 상징되는 크래프트 맥주의 성장에 힘입어 미국 내 양조업체 수는 2012년부터 2013년 사이 15%나 증가했다. 하지만 대단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맥주업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크래프트 맥주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 판매량 기준으로 전체 맥주시장의 7.8%에 불과한 지분을 놓고 2,800여 개 크래프트 양조업체와 경쟁을 해선 세계적인 브랜드 버드와이저 시리즈에 범접할 수 없다. 빌리는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주류맥주인 에일을 양조하는 대신 부시 일가의 전통에 따라 프리미엄 라거와 라이트 맥주를 제조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연구소(International Research Institute, 이하 IRI)에 따르면, 시장 점유율이 다소 감소하긴 했지만 프리미엄 라거와 라이트 맥주류는 여전히 전체 맥주시장(소매 판매량 기준)의 5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오랫동안 AB 이사를 역임한 윌리엄 K의 이사 마이크 브룩스 Mike Brooks는 “매출 잠재력의 극대화를 원한다면 매출이 가장 큰 부문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버드와이저의 소매 매출은 크래프트 시장 전체를 합친 것보다 크다. 브룩스는 사람들이 라거에 등을 돌리는 이유는 독특한 맛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마시기 좋고 도수와 칼로리도 낮은 라거의 장점을 모두 살리면서도 강렬한 맛을 내는 맥주를 개발하려고 했다(크래프티히는 독일어로 ‘강렬함’을 의미한다).

맥주 마니아들은 라거를 세련되지 못한 맥주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라거의 양조방식은 무척 까다롭다. 발효과정 내내 차가운 온도가 유지되어야 하며 생산비용도 만만치 않다. 같은 값으로 4배 더 많은 양의 에일을 만들 수 있다. 부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만한 브루마스터 *역주: 소규모 맥주 양조장에서 맥주제조 전 공정을 관리하는 양조 기술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라거에 특화된 지역 양조업체 모건 스트리트 브루어리 Morgan Street Brewery에서 마르크 고트프리트 Marc Gottfried를 스카우트했다. 크래프티히는 물, 보리, 호프, 효모 등 4가지 재료만 사용해서 맥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독일 순수령(purity law)을 준수하고 있다.

현재 고트프리트는 위스콘신 주 라 크로스 La Crosse 카운티에 위치한 임대 시설에서 크래프티히를 양조하고 있다. 그는 이를 남의 집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것에 비유한다. 물론 빌리는 수요만 충분하다면 그의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향으로 여겼던 세인트 루이스에 양조시설을 지을 생각이다. 뛰어난 폴로 실력을 자랑하는 빌리는 그랜츠 팜 Grant’s Farm(부시 일가가 소유한 세인트루이스 남쪽 12마일에 위치한 281 에이커 넓이의 농장)에서 말을 타며 자랐다. 빌리의 선친은 1954년 농장을 대중들에게 개방했다. 방문객들의 접근이 금지된 방 12개짜리 대저택은 부시 일가의 화려했던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티파니 유리창, 동물 머리 박제와 프랭크 시나트라, 존 웨인, 율 브린너 같은 단골 손님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 총기실 등이 특히 인상적이다). 부모의 이혼 전까지만 해도 빌리는 매일 이 집 식탁에 앉아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 하는 동안 아버지는 양조장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곤 했다. 그랜츠 팜은 빌리가 부인 크리스티 Christi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부인은 당시 원숭이 조련사였고, 빌리는 코끼리 담당 부서에 있었다. 현재 부부는 슬하에 일곱 자녀를 두고 있다. 맏이가 22세, 막내가 8세이다.

세인트루이스 주민들은 AB가 인베브에 매각되는 것을 가장 큰 목소리로 반대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표 브랜드가 외국 기업에 인수되는 것이 우려된다며 고상한 말을 했지만, 사실 주민 대부분은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큰 기업을 잃게 될까 봐 걱정했다. AB에서 29년간 근무했던 윌리엄 K의 현 마케팅 책임자 빌 시어만 Bill Schierman은 “AB는 세인트루이스를 떠받치는 대단히 중요한 기업이었다. 그런 ‘우리 기업’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철저한 비용절감으로 유명한 인베브는 AB 인수 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런 정책은 주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AB가 인수된 후 (크래프티히를 포함해) AB 제품을 취급하지 않는 지역 공급업체 존 험멜 John Hummel의 매출이 소폭 증가하기도 했다. 물론 AB에 대한 향수와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AB 매각이 전혀 실속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베브가 520억 달러에 인수제안을 했을 때 AB는 주요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 감소, 주가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AB 측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세인트루이스를 사랑하고 이곳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세인트루이스의 맥주시장은 AB 인베브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맥주업체들이 경쟁하기에 대단히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세인트루이스는 윌리엄 K의 시험무대가 될 최적의 장소이기도 했다. IRI에 따르면, 현재 세인트루이스에서 크래프티히의 시장 점유율은 소매 판매량에선 1%, 프리미엄 시장에선 2.3%에 불과하다. 그러나 브룩스는 크래프티히가 버드와이저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하며 성장 중이라고 믿고 있다. 윌리엄 K 측은 연 매출 공개를 거절했지만, 빌리와 그의 팀은 세인트루이스 시장에서 점유율 3%를 돌파하면 전국 시장점유율도 1%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빌리는 주목 받는 것을 싫어하는 내향적인 성격이다. 그는 양조업체 대표가 되면 이 점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빌리는 “솔직히 내게는 꽤나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부시 가문의 가업을 되살리기 위해 기꺼이 대중 앞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빌리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를 비롯한 선조들은 내가 세운 회사와 추진 중인 일들을 매우 자랑스러워 하실 것이다. 그분들은 AB가 매각 되던 날 아마 지하에서 통곡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포춘 홈페이지를 방문해 어떻게 대형 맥주업체들이 신규 고객을 사로잡는지 확인해 보자.



관련기사



FORTUNE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