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를 둘러싼 이 같은 식품업계의 공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년 미국의 칼젠이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잘 물러지지 않는 토마토를 출시한 이래 그 유해성 유무를 놓고 날 선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에만 미국 오리건주와 영국, 호주, 필리핀 등지에서 GMO를 둘러싼 폭동과 농작물 파괴 행위가 벌어졌으며 전 세계 50여개 국가에선 GMO가 들어간 제품에 해당 사실을 적시한 라벨을 부착토록 하는 법안을 시행 중이다. 지난 5월 버몬트 주지사도 미국 최초로 해당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당시 버몬트주 데이비드 주커먼 상원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는 실험용 기니피그와 다를 바 없어요. GMO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GMO는 매우 철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대상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확인된 실상은 세간에 알려진 것만큼 특별하지 않다. 예컨대 아크릭 사과는 그래니 스미스와 골든 딜리셔스 종(種)에서 추출한 유전자에 변형을 가해 갈변(褐變) 유발 효소의 생성을 억제시킨 뒤 잎 조직에 재이식한 산물이다. 우량종자 개발을 위해 수작업으로 가루받이를 하거나 가지를 접붙이는 것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생물학자들은 질병과 제초제에 대한 내성을 키우려고 작물에 유전자를 삽입한다. 지구촌 174만㎢ 면적에서 재배 중인 GMO 농작물의 핵심 특성도 질병, 가뭄, 홍수, 해충에 강한 내성을 부여한 것이다.
과연 소비자들이 진정 두려워해야하는 것은 뭘까? 이 답을 얻고자 파퓰러사이언스가 GMO의 대표적 논제 10개를 놓고 10여명의 과학자와 인터뷰를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논제 1] GMO는 급진적 기술이다.
인류는 이미 1,000년 전부터 육종을 위해 특정 작물을 선택교배하여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변형시켜왔다. 사과의 품종이 수천 종에 달하는 게 그 증거며, 사실상 현존 식용작물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 상태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
GMO는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먼저 유기체의 DNA 일부를 추출, 변형 또는 복제한다. 이를 동종 또는 이종의 유기체 게놈에 삽입하는데, 박테리아를 매개체로 새 유전자를 전달하거나 유전자 총을 통해 새 유전자로 코팅된 금속 펠릿을 유기체 세포에 쏘는 방식을 사용한다. 단. 과학자들은 새 유전자가 도착하는 자리까지는 제어할 수 없다. 원하는 곳에 도달해 원하는 효과가 발현될 때까지 이 작업을 무한 반복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의 식물생물학자 페기 G. 르모 박사는 이 기술에 의해 선택교배의 정밀성이 대폭 향상됐다고 말한다.
“GMO 기술을 사용하면 어떤 유전정보를 게놈의 어디로 보내야할지 정확히 알 수 있죠. 또 그 유전정보가 전달됐을 때 알레르기를 유발하거나 독성을 지니는지, 다른 유전자를 억제·발현시키지는 않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르모 박사는 GMO에 쓰인 기술이 선택교배와는 크게 다르지만 급진적 기술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통 육종법의 정확도를 높인 기술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논제 2] GMO의 유해성을 파악할 시간이 부족했다.
GMO 작물이 처음 실험실에 등장한 것은 30여년 전이며, 1994년에 최초의 상품이 출시됐다. 이후 미국가연구위원회(NRC)가 내놓은 장문의 보고서 5건을 포함, 지금껏 안전성에 대한 1,700건 이상의 동료평가(peer review)가 이뤄졌다. 그 결과에 기반한 학계의 공론은 GMO가 일반 작물보다 덜 위험하지도, 더 위험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논제 3] 유전자 변형(GM) 종자는 대를 이어 심을 수 없다.
2000년대이후 GM 작물을 대를 이어 심을 수 없도록 하는 일명 ‘터미네이터 유전자’들이 개발됐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종자기업들은 농부들에게 구입한 종자를 대를 이어 심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토록 했다. 그래야 매년 종자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의 식물학자 켄트 브래드포드 박사는 이런 제약이 아니더라도 대규모 영농업자들은 굳이 대를 이어 종자를 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례로 옥수수는 두 아종의 잡종이기 때문에 그 씨앗은 다음 대에서 원하는 특성이 발현되지 못한다. 목화나 콩의 경우 대를 이어 심을 수도 있지만 대다수 농부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작물의 품질이 떨어지고, 병충해에도 취약해지는 탓이다.
[논제 4] GMO의 유해성을 파악할 시간이 부족했다.
물론 GMO만으로 세계 식량난을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GMO 기술은 기후변화와 인구성장에 의해 식량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작물 산출량을 크게 늘려줄 수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농업식량안보센터의 페드로 산체스 소장도 이에 동의한다.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가 지금보다 최소 20억명 늘어날 겁니다. GMO 외에도 식량 안보를 지킬 방법이 있고, GMO가 가장 근본적 대책도 아니지만 식량난 해소를 위한 좋은 무기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논제 5] GMO는 암, 알레르기 등의 질병을 유발한다.
많은 사람들은 유전자 재조합에 의해 알레르겐, 독소 등의 유해 단백질이 새로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나름 합리적 걱정이다. 이론상 새 유전자에 의해 새 단백질이 발현되면 면역 반응이 촉발될 수 있다. 하지만 생물학 기업들은 GMO 후보들에 대해 미 식품의약국(FDA)의 면밀한 컨설팅을 받고 있으며, 고강도 알레르기 및 독성 검사도 수행한다. 강제사항은 아니어도 이미 업계의 필수적 절차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실험을 거치지 않은 GMO의 경우 FDA가 판매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다.
이 논제와 관련 다국적 농업 생물공학 기업인 몬산토의 GMO 옥수수가 쥐 실험에서 암을 유발했다는 2012년 프랑스 캉대학의 연구결과가 자주 인용되지만 연구팀이 잘못된 실험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후 이탈리아 페루자대학 연구팀이 1,783건의 GMO 안전성 실험을 재검토했는데, GMO가 위험하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논제 6] GMO 작물이 살충제와 제초제 사용량을 늘린다.
현재 GMO 시장은 2개의 GMO가 지배하고 있다. 하나는 특정 해충들에게 유독한 Bt 세균의 단백질이 발현되도록 유전자 변형된 작물로, 이 단백질은 유기농 경작에 쓰이는 살충제의 유효성분이기도 하다. 미국 애리조나대학 곤충학자 브루스 타바시닉 박사는 Bt형 GMO 작물들이 몇몇 지역의 화학 살충제 의존도를 대폭 낮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른 하나는 제초제인 글리포세이트에 내성을 가진 작물로, 이 작물을 심으면 잡초를 제거할 때 자유롭게 제초제를 살포할 수 있다. 때문에 이 같은 GMO 작물이 등장한 1996년 이래 글리포세이트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글리포세이트는 독성이 카페인의 25분의 1에 불과한 가장 순한 제초제며, 아트라진 등 훨씬 유독한 제초제의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논제 7] GMO 때문에 슈퍼 해충·잡초가 등장할 것이다.
타바시닉 박사는 농부들이 Bt형 또는 글리포세이트 내성 작물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이들에 대한 해충과 잡초들의 내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도한 항생제 사용이 다수의 다제 내성균을 만들어 냈듯이 말이다. 그때는 더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로 만든 방충·제초제를 써야 한다. 대책은 뭘까. 타바시닉 박사는 윤작을 포함한 통합형 병충해 관리를 해법으로 꼽는다.
“이는 GMO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농사에서 마찬가지입니다.”
[논제 8] 모든 GMO 연구는 거대 농업기업들의 자금으로 이뤄진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수백 명의 연구자가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은 채 GMO의 안전성에 대한 동료평가를 수행, 현재 시판 중인 GMO들은 안전하다고 결론 내렸다. 여기에는 세계보건기구(WHO),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등 국제적 의학·과학단체 10여곳도 포함돼 있다.
[논제 9] GMO는 생태계에 이로운 곤충에게도 해를 끼친다.
부분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Bt 살충제는 특정 해충의 장내 단백질에 들러붙어 그 해충을 죽인다. 모든 곤충에 치명적인 살충제가 뿌려진 곳에 비해 대다수 곤충들에게 안전하다. 단지 왕나비의 경우 Bt 살충제가 작용하는 단백질을 생성하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이와 관련 1999년 코넬대학 팀이 Bt형 GMO 옥수수의 꽃가루가 묻은 금관화를 왕나비 유충이 먹으면 죽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지만, 2001년 발표된 5건의 연구에서는 야생 왕나비가 치사량의 Bt GMO 식물 꽃가루에 노출될 일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이오와주립대 연구팀은 2012년 논문을 통해 글리포세이트 내성 GMO 작물이 왕나비 개체수 감소와 유관하다고 밝혔다. 글리포세이트가 살포된 곳에는 왕나비 유충의 유일한 먹이인 금관화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논제 10] 변형된 유전자가 다른 작물 및 야생 식물로 퍼져 생태계가 교란된다.
이 또한 일부 사실이다. 식물은 꽃가루를 통해 주변에 유전물질을 흩뿌리는데 여기에 변형된 유전정보도 들어 있다. 단, 미국 조지아대학 작물유전학자 웨인 패럿 교수에 따르면 GMO 작물 근처에서도 타가수분이 이뤄질 확률이 비교적 낮으며, 작물을 심는 시기에 차이를 두면 그 확률을 더 낮출 수 있다. 또한 일부 GMO 작물의 꽃가루가 유기농 작물로 전이되더라도 유기농 상태가 무력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설령 무(無)유전자변형식품 라벨이 붙은 식품이라도 건조중량의 0.5%는 GMO일 수 있습니다.”
야생 식물계로의 침입은 어떨까. 그 경우 야생 식물 후손들의 생존은 전이된 특성을 가지고도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지에 일정부분 달려 있다. 전이된 특성이 유지될 수도, 억제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 저녁밥상의 GMO
GMO 작물이 곧바로 식탁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판매되는 가공식품 중 약 3분의 2에 GMO 작물이 들어 있다.
옥수수
특징: 제초제 내성, 해충 저항성
미국 내 재배면적 비율: 제초제 내성 85%, 해충 내성 76%
용도: 크래커, 시리얼 등의 가공식품. 옥수수대에 붙어 있는 옥수수, 동물 사료
목화
특징: 제초제 내성, 해충 저항성
미국 내 재배면적 비율: 제초제 내성 82%, 해충 내성 75%
용도: 샐러드드레싱 등의 가공식품, 동물 사료
파파야
특징: 둥근무늬 바이러스 내성
미국 내 재배면적 비율: 50% 이상
용도: 파파야를 사용한 제품
유채씨
특징: 제초제 내성
미국 내 재배면적 비율: 50% 이상
용도: 카놀라유, 가공식품
콩
특징: 제초제 내성
미국 내 재배면적 비율: 93%
용도: 빵, 시리얼 등의 가공식품, 레시틴 등의 식품첨가물, 동물 사료
호박
특징: 다양한 바이러스 내성
미국 내 재배면적 비율: 12%
용도: 채소를 사용한 제품
사탕무*
특징: 제초제 내성
미국 내 재배면적 비율: 95%
용도: 정제 설탕
*사탕무의 경우 최종 생산품에는 변형 단백질이 남아있지 않다.
▶ GMO의 미래: 유전자 편집
오늘날 가장 흔한 GMO 기술은 박테리아나 유전자 총을 이용해 특정 유전자를 식물 세포 내에 주입하는 ‘DNA 재조합’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숱한 시행착오와 오류를 감내해야 한다. 반면 ‘유전자 편집(gene editing)’은 효소를 가지고 DNA의 일부를 잘라내 제거하거나 새 DNA로 대체하는 기술로, 작물 게놈의 정밀한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 연구팀이 이 방법으로 바이러스 내성 카사바를 개발 중이다. 그러나 유전자 편집은 새로운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기존 GMO 작물은 새 유전자를 전달한 박테리아의 DNA가 오랜 기간 남아 있지만 유전자 편집에 쓰인 효소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아 GMO 여부의 판별이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알레르겐 (allergen) 알레르기성 질환의 원인 항원(抗原).
Bt Bacillus thuringiensis.
다제(多劑) 내성균 한 종류 이상의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박테리아.
타가수분 (cross-pollination) 서로 다른 유전자를 지닌 두 식물 사이에 수분(가루받이)이 일어나는 것.
카사바 (cassava) 남미가 원산지인 뿌리작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