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치매를 이해하는 사회 만들기

100세 시대 스마트라이프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유명 연예인의 아버지가 치매를 앓는 부모를 죽이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큰 충격을 던진 바 있다. 이 사건은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이 가족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글 류재광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치매는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고령사회의 최대 걸림돌’이라 불린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오늘날, 치매 고령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우리사회의 큰 숙제가 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 만연한 치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치매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일본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고령자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일 정도로 치매가 보편화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못지않게 치매에 대한 편견이 깊었던 나라 일본은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가고 있을까.

치매 고령자와 공존하는 사회

일본의 치매 고령자는 2012년 기준으로 305만 명에 달한다. 이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치매 고령자는 2020년에 410만 명, 2025년에는 470만 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치매 고령자가 어디서 누구와 거주하고 있는가이다. 현재 일본의 치매 고령자는 요양시설(89만 명), 의료기관(38만 명), 기타 시설(29만 명) 등 각종 ‘시설’에 절반이 거주하고, 나머지 절반인 149만 명은 자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상당수의 치매 고령자가 가족과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자택에서 거주하는 치매 고령자 수가 늘어나면서 가족과 지역사회가 치매 고령자와 공존할 방법을 찾는 일이 큰 숙제로 떠올랐다. 가족들의 간병 부담이 증가한 것은 물론, 치매에 대한 지역주민의 오해와 편견으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이 고립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일본의 어느 지방에선 치매 고령자가 다른 사람 소유의 논밭에 들어가 농작물을 훼손하자 그 가족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면서 지역주민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기도 했다. 치매에 대한 지역주민의 이해 부족이 치매를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을 증폭시킨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일본의 ‘인지증 서포터’ 활동

일본 정부는 급증하는 치매 고령자와 지역사회가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2005년부터 ‘치매를 이해하는 지역사회 만들기 10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치매에 대한 일반 대중의 편견을 없애기 위해 ‘치매’를 ‘인지증(認知症)’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어리석다’는 의미가 있는 치매를 인지증이란 말로 바꿔 치매를 ‘노망’이나 ‘망령’이 아닌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이 밖에도 일본은 치매 계몽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다. 치매 고령자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지역주민의 인식전환이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몽활동의 중심에 ‘인지증 서포터’ 양성사업이 있다. 인지증 서포터란 ‘치매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갖고 치매 고령자와 그 가족들을 응원하며, 함께 사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원활동을 사람’이란 뜻이다. 이들은 치매 고령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치매 고령자가 지역사회에서 길을 잃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는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인지증 서포터 양성강좌를 수료하면 누구나 인지증 서포터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강좌 수료자에게는 수료증으로 오렌지색의 손목 링을 증정하고 있다. 1회에 60~90분 진행되는 강좌에선 치매의 증상, 진단, 치료, 예방 및 치매 고령자와 가족들을 대하는 방법 등에 대해 알려준다. 일회성 강좌임에도 수강자들로부터 치매에 대한 그동안의 생각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인지증 서포터 100만 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실제로는 목표치를 초과해 166만 명의 서포터를 키워냈다. 이러한 호응해 힘입어 인지증 서포터 양성강좌를 지속적으로 개최한 결과, 2013년 말 기준으로 465만 명의 서포터가 탄생했다. 인지증 서포터는 현재 여성이 전체의 64%,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이 57.7%를 차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10~20대도 무려 70만 명 이상이 이 강좌를 수료해 치매에 관한 올바른 지식과 고령사회에 대한 이해를 쌓아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조기 진단과 조기 대응의 중요성

일본 정부는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치매 환자를 줄이기 위해 작년부터 치매 예방을 중심으로 한 ‘인지증 5개년 계획’을 추진해오고 있다. 5개년 계획의 핵심 정책 중 하나는 치매에 대한 조기 진단과 조기 대응이다. 이를 위해 치매 초기 진단이 가능한 병원을 일본 전역에 500개 설치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치매에 대한 의사들의 지식과 진단 능력을 높이기 위해 ‘치매대응력 향상 연수’를 크게 확대함으로써 2018년 3월까지 5만 명의 수료자를 배출할 계획이다. 치매질환 의료센터, 지역병원, 요양시설과 고령자 복지시설 등을 각 지역 실정에 맞게 조정하고 연결시켜주는 ‘인지증 지역지원 추진원’도 2016년까지 700명을 육성하기로 했다.

치매 환자와 가족, 지역 주민의 만남을 주선하는 ‘인지증 카페’에 대한 지원도 이루어질 예정이다. 인지증 카페에서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이 가볍게 만나 서로의 고민을 나눌 수 있고, 봉사활동을 하러 온 지역 주민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다. 그동안은 일부 지역의 비영리단체나 복지재단이 이를 설치하고 운영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정부가 나서 카페 설치에 필요한 사업비를 보조하는 등 인지증 카페를 지역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펼칠 방침이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들이 모여 일본이 치매를 이해하는 사회로 발전해나가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치매 고령자가 급증하고 있다. 2010년 47만 명이었던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수는 2015년에는 65만 명, 2020년에는 84만 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앞으로는 늘어나는 치매 환자에 대한 치료뿐만 아니라, 가족과 지역사회가 어떻게 치매 고령자와 더불어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치매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고 치매 고령자가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치매에 대한 정확한 지식 전달과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 정부 차원의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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