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크리스티가 선택한 강형구의 예술세계

서진수의 ‘미술과 경영’

소더비와 함께 아시아 경매시장의 양대 축을 이루는 크리스티 홍콩은 왜 한국작가 강형구에게 매료되었을까.
글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 겸 미술시장연구소소장


국내 미술시장에서 각광 받는 작가들은 몇 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계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백남준이나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같은 곳에 의해 선발된 국가대표급 작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 후보와 수상자 혹은 각종 국공립 미술관 초대작가, 리움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 선정작가와 최종 수상자, 주요 톱 10 화랑이 전속작가 개념으로 우대하여 전시를 여는 작가, 국내 현대미술품 전문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에서 상위 낙찰총액을 기록하는 작고 작가와 생존 작가, 미술의 아시안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회사에 의해 선택되어 아시아와 세계 컬렉터들에게 계속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 해외 주요 미술관과 상업화랑의 전시에 초대받은 작가 등 많은 영역의 작가를 우리의 대표 작가로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크리스티 홍콩이 최근 가장 사랑하는 한국 컨템퍼러리 아티스트, 즉 1945년 이후 출생자로 동시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선택한 이가 강형구이다. 크리스티 홍콩은 2004년 가을 경매에 한국 작가 8명을 소개한 이후 10년 넘게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최근에는 30~40명 정도를 선보이고 있는데, 그 전면에 강형구 작가를 내세우고 있다.

강형구의 작품이 처음으로 크리스티 홍콩에 출품된 건 국내, 아시아, 세계 미술시장이 초호황을 누리던 2007년 11월의 가을경매 때였다. 눈빛이 강렬한 고흐 초상을 푸른빛 바탕에 그린 작품이 추정가 50만~60만 홍콩달러(5,600만~7,900만 원)에 출품되어, 낮은 추정가의 9배, 높은 추정가의 7.5배인 456만 7,500 홍콩달러(약 6억 원)에 낙찰되며 선풍을 일으켰다. 세계 미술시장이 초호황을 누리던 터라 큰손 컬렉터들 사이에서 걸작 사냥이 한창이던 때였다. 이 시기에 고가에 낙찰된 작품은 인물화, 극사실화, 세계의 스타 아이콘을 임팩트 있게 재현하는 작품 등이어서 작가 강형구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을 수 있었다.

그는 고흐를 그린 작품과 함께 자신의 자화상도 출품했는데, 이 작품 또한 추정가 50만~60만 홍콩달러를 훨씬 넘어서는 240만 7,500홍콩달러(3억 2,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그는 자화상이 가장 잘 그려진다고 말하곤 했다. 삶이 비참할 때 자화상을 그리면 위로가 되었고, 자화상이 팔릴 때 작가로서 보람을 느꼈다고도 했다. 렘브란트와 고흐보다 자화상을 더 많이 그렸고, 더 많이 팔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는 자화상 덕분에 싱가포르 시내에서 사인 요청을 받기도 했다. 첫 출품 이후 워홀, 링컨, 달리, 고흐, 루이 암스트롱, 베토벤, 오드리, 마릴린, 로뎅, 처칠 같은 인물 아이콘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 출품해 전량을 낙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작가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는 1년에 200~300호짜리 대작을 20점가량이나 그리는 열정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도 도와주는 어시스턴트 하나 없이 모든 작업을 직접 진행하고 있다. 그는 조력자에게 시키는 작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24K 순금과 함량이 떨어지는 18K는 가격 차이가 나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기 복제적인 작업행위도 거부한다. 어떤 작가의 작품이 전시에서 인기를 끌거나 경매에서 고가에 팔리면 화랑으로부터 유사한 작품을 몇 개 더 하도록 요청을 받게 되는데, 이 같은 유혹과 요구를 떨치지 못해 무너진 작가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의 치열한 창작활동과 자신을 지키는 건 예술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기본에 해당하는 일이다. 하지만 감정과 상상을 매개로 생산을 하는 감성근로자의 성공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는 53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작품을 팔았다. 200~300호짜리 대작을 주로 하다 보니 아파트에 걸기가 쉽지 않아 작품이 팔리질 않았다. 그의 논리는 작품이 안 팔릴 때 고급화되고 팔리기 시작하면 저급화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팔리는 작가보다 안 팔리는 작가가 되겠다는 부러운 오기를 부리고 있다. 물론 이는 저급화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는 말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40~50호 크기의 작품 문의가 계속 오는데도 이를 모두 거절하고 대작을 구상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다. 알루미늄 작품이 더 잘 팔리는데도 굳이 캔버스를 택한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올곧게 가다 보면 누구나 죽기 전에 돈이란 걸 한번 만져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소위 대기만성이란 단어가 분명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팔리는 길을 늦게나마 터득해서일까? 그는 판매용 작가보다 발표용 작가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 작품의 90%는 안 팔리는 게 정상이라고 말한다. 총알이 팔려도 사람 죽이는 데 쓰는 총알은 몇 퍼센트 안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다. 때문에 그의 뇌는 늘 끝없이 멋진 퍼포먼스와 서비스를 준비한다. 전시가 열리는 도시의 호텔 제일 비싼 방에 묵으며, 한국 국기와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컬렉터 국가의 국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대화를 나눈다.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애국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 비결이 40대까지의 삶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 말한다. 미대를 나온 이후 미술교사의 길을 가지 않고 (오히려 미술 쪽과의 인간관계를 모두 끊고) 직장생활을 하며 자립을 이룬 독특한 체험도 가지고 있다. 뒤샹을 좋아해 퍼포먼스, 설치미술도 많이 해본 그는 화랑을 직접 운영하다가 망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한국 제도 미술권이 하지 않는 소재를 선택해 운영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니 실패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가 자기 모습처럼 보였다는 작가는 그때 뭔가 대단한 결심을 했던 것 같다.

그는 하나의 작품을 해도 대충 하지 않는다.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강형구와 그의 뮤즈 마릴린!’전(5월 13일~7월 20일)은 그가 수십 년 동안 모아 온 마릴린 먼로 관련 자료와 먼로를 다양하게 해석한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 그의 작품이 나오는 소스를 보여주는 수 백 권의 잡지와 책, 자료, 신문, 비디오 등의 아카이브와 아름다운 먼로와 늙은 모습의 먼로, 3미터짜리 먼로의 뒷모습 등 생전의 먼로를 보는 듯한 작품이 융합된 전시회다.

50세가 될 때까지 인생의 담금질을 통해 자신을 단련한 그의 인생 역정이 지금의 포스 있는 작품을 하게 된 원동력과 출발점이 되지는 않았을까? 인생과 현실이 힘들수록 삶과 예술은 더 강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건 아닐까? 작가 강형구는 그의 예술에 대해 물으면 현대미술론과 예술경영에 관한 철학으로 답한다. 모던을 모셔다 놓는 미술로 정의하고, 생활하는 미술을 현대미술이라고 정의한다. 자기 노선과 가격 설정에 대해 겸손한 것, 품위와 처신에서 겸손한 것, 그리고 예술정신에 혼을 담는 것을 예술경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감상자를 멈춰 서게 할 수 있는 작품이 진정한 작품이라는 그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서진수 교수는 …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2002년부터 미술시장연구소를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미술시장연구연맹(AAMRU)의 공동창설자이자 한국 대표로 아시아 미술시장의 공동발전과 체계적 연구에도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문화경제의 이해’ 등이 있다.



관련기사



FORTUNE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