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위안화 역외금융 허브와 한국의 역할

[GLOBAL FINANCE]

7월 초 시진핑 주석이 한국을 방문했다. 시 주석 방한 기간 동안 우리는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개설과 위안화 적격 외국인 투자자 지위를 얻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위안화 역외금융의 허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음을 뜻한다. 앞으로 우리는 세밀한 전략 수립을 통해 위안화 역외금융시장으로서의 역할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

지난 4월 초 런던에서 개최된 제1회 한-영 금융협력 포럼에선 매우 흥미로운 순간이 있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축사를 하다가 잠시 연단에서 내려왔다. 개회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있던 시티오브 런던의 피오나 울프 로드 메이어에게 우리나라 500원짜리 지폐가 들어있는 액자를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포럼 참석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신제윤 위원장은 과거 정주영 회장이 런던 금융시장에서 조선소 설립 자금을 조달할 당시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당시 정 회장이 우리나라 선박 제작 역사가 오래됐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거북선이 그려져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많은 관계자들에게 보여주었다는 일화를 전했다. 조선소 설계 회사였던 A&P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부정적이던 바텀 회장은 정 회장의 열의에 감동했고 바클레이 은행에 정 회장을 소개시켜주기까지 했다. 결국 그리스의 조지 리바노스 회장이 선박 2척을 정 회장에게 발주함으로써 현대중공업이 출범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바클레이 은행이 주간사가 된 신디케이션이 현대에게 5,000만 달러를 대출해주기도 했다. 우리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된 돈이었다.

달러는 미국 돈이다. 그런데 런던에서도 달러 자금을 구할 수 있다. 이처럼 해당 표시 통화 자금이 제3국에서 조달·운용 될 때 이를 역외시장(External Market)이라고 부른다. 역외시장에는 역사가 있다. 2차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 간 냉전 상황이 이어지면서 동구권 국가들은 달러 표시 자금을 미국이 아닌 유럽에 예치하기 시작했다. 유럽 금융기관들은 이를 제3국 기업들에게 대출해주었다. 이런 방법으로 자금을 운용하면서 달러로 표시된 자금이 유럽에서 조달되고 운용되는 유로달러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오일쇼크는 역외시장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1973년 석유 가격이 거의 4배 가까이 폭등하면서 석유를 생산·판매하는 중동지역에 엄청난 양의 달러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주로 이슬람 국가들로서, 기독교 국가인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석유생산국들은 이렇게 밀려드는 달러를 유로달러 시장에 예치했다. 그 후 유로달러 시장은 엄청난 규모로 커지면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유로달러 시장의 상징인 런던이 최근 위안화 역외금융 시장의 구축을 위해 중국정부와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3월 말에는 런던에 위안화 결제 청산은행이 지정되기도 했다. 이후 위안화 통화스왑이 체결되었고, 런던이 위안화 적격외국인투자자(RQFII) 지위를 획득하면서 홍콩·싱가포르·프랑크푸르트와 함께 위안화 역외금융 허브로서의 역할에 시동을 걸게 되었다. 물론 위안화의 자본자유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역할에 제한은 있지만, 점점 그 활동이 늘어나 향후 의미 있는 변화들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위안화는 세계 자금 결제의 1.4%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아직은 그 비중이 작은 편이다. 하지만 무역결제만을 보면 8.6% 정도로 그 비중이 부쩍 늘어난다. 중국은 일단 위안화 무역결제의 비중을 늘리겠다는 전략을 내보이고 있다. 무역결제 비중을 늘리면서 장기적으로 자본계정의 자유화를 통해 위안화를 달러에 이은 세계 기축통화 지위로 격상시키겠다는 것이 시진핑 정부의 중요한 정책 목표다. 시진핑 정부는 소위 리커노믹스를 통해 이미 소비와 내수 위주의 경제체제 구축을 천명한 상황이다. 그런데 소비와 내수 위주의 경제운용을 할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경상수지 악화다. 자국상품을 포함한 외국상품 소비도 늘게 되므로 수입이 활성화되면서 외화부문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여기서 중국정부의 전략이 나온다. 경상수지가 악화돼도 문제가 별로 안되는 방법 중 확실한 것이 자국통화를 기축통화로 만드는 것이다. 바로 돈을 수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30여 년 이상 무역적자를 내고 있는 미국이 바로 그 좋은 예이다. 달러를 발행하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적자가 늘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달러를 받아가면 된다. 적자를 보는 만큼 달러로 결제해주면 되는 식이다. 때문에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축통화국의 반열에 오르려는 중국의 전략도 같은 이유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기축통화발행국의 지위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외환위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다. 또한 제조원가가 12센트 정도에 불과한 100달러짜리 지폐를 100달러를 받고 수출할 수 있다. 세뇨리지*를 엄청나게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지위를 목표로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러한 과정을 주시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7월 초 시진핑 주석의 방문을 통해 우리는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개설과 위안화 적격 외국인 투자자 지위를 얻었다. 한도는 800억 위안이다. 또한 위안화 청산은행이 중국 교통은행 한국지점으로 지정되었다. 작은 시작이지만 큰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우리나라가 위안화 역외금융 허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고 있는 점이다. 중국에 흑자를 내는 우리 경제에서 위안화 결제가 늘어날 경우 무역흑자만큼 위안화가 쌓이게 된다. 이렇게 조성된 위안화 자금을 제 3자에게 대출해주거나 중국 본토에 넣어 운용할 경우, 우리 금융기관에게 좋은 비즈니스가 생기게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선 위안화의 위상이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분명해질 때 가서 시작하면 이미 기회를 놓치게 된다. 불확실성은 존재하지만, 투자를 하듯 위안화 역외금융시장으로서의 역할을 준비해 나가야 위안화 위상 제고와 함께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많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침체된 국내 금융산업이 재도약하는 기회도 모색할 수 있다. 혹여 위안화의 부상이 늦어지더라도, 위안화 자산은 중국에서 사용할 수 있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안화 역외금융센터는 하나의 화두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이 다른 가능성과 맞아 떨어지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은 좀 더 세밀한 전략 수립으로 위안화 허브 전략을 추진해 우리의 위상을 높일 기회로 삼아야 할 때이다.

* 세뇨리지 효과 (seigniorage effect)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이용해 화폐를 찍어내고 새로운 신용 창출을 통해 끝없이 대외적자를 메워 나가는 것을 말한다. 화폐를 발행하면 교환가치에서 발행비용을 뺀 만큼의 이익(화폐주조 이익)이 생기는데, 그중에서도 기축통화국 즉, 국제통화를 보유한 국가가 누리는 이익 효과를 지칭한다.


윤창현 원장은…
▲1960년 충북 청주 출생 ▲1979년 대전고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1993년 미 시카고대 경제학박사 ▲1993~1994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1995~2005년 명지대 경영무역학부 교수 ▲2005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2012년~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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