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선구적인 IT 창업자의 귀환

A Visionary Tech Founder Returns<br>GLOBAL POWER PROFILE<br>CHER WANG, CHAIRWOMAN, HTC

HTC 설립 당시 셰어 왕 Cher Wang의 목표는 소비자에게 고성능 컴퓨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때 잘 나갔던 이 회사는 지금 난항을 겪고 있다. 그녀는 과연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올 수 있을까?
BY MICHAL LEV-RAM

존폐 위기에 몰린 회사의 구원 투수로 돌아간 창업주들을 살펴보면 대개 성패가 엇갈린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 복귀는 전대미문의 성공을 낳았지만, 제리 양 Jerry Yang의 야후 복귀는 명백한 실패로 기록됐다. 마이클 델 Michael Dell의 노력이 델 컴퓨터의 회생으로 이어질지도 아직 미지수이다.

현재 대만의 스마트폰 제조업체 HTC는 공동창립자인 셰어 왕 회장에게 재기의 희망을 걸고 있다. 지난해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왕(55)은 업무 일선에 복귀했다. 왕 회장은 공식적인 새 직함을 갖지 않은 채 피터 추 Peter Chou 현 CEO의 조력자에 머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마케팅과 HTC 제품을 취급하는 통신업체와의 관계 구축 부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적자와 중역들의 대거 퇴사로 크게 위축된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돕고 있다.

1997년 HTC를 공동 창업한 왕이 막후 지원 역할을 선호한 건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대만플라스틱그룹(Formosa Plastics Group)의 창립자인 석유화학 재벌 왕융칭 Wang Yung-Ching의 딸로 엄청난 부(순자산이 16억 달러로 추정된다)를 소유했음에도, 왕은 저가항공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애용하고 수수한 검은색 정장을 애용하는 등 겸손을 유지하며 부의 과시를 자제해왔다. 왕은 첨단기술에 조예가 깊어 HTC 이전에도 반도체 제조사인 비아 테크놀로지스 Via Technologies를 설립한 바 있다. 그녀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HTC 창업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나는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컴퓨터 사업에 꼭 뛰어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업명인 HTC도 ‘하이테크 컴퓨터 high-tech computer’의 앞 글자에서 따왔다. 명예롭지 못한 몰락의 기로에서 재기하기 위해 HTC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왕의 겸손함과 기술에 대한 전문성일지도 모른다. 휼렛-패커드(500대 기업 50위)를 비롯한 세계 500대 기업을 상대로 휴대전화를 제조ㆍ납품하며 혜성처럼 나타났던 HTC는 그후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구글(162위)이 자사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첫 스마트폰 제조사로 HTC를 선택하며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HTC는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경영진은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에 맞설 고가 제품 개발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매출이 96억 달러에 이르렀다. 하지만 2011년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HTC는 경영상의 실수를 범하기 시작했다. 경영진은 판매 예상치를 잘못 예상했다. 언론의 호평을 받았던 HTC 원엑스 OneX 스마트폰의 하락세도 막을 수 없었다. 마케팅의 초점을 잘못 맞췄을 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에 공급상의 문제가 만연했다. 2013년 페이스북과 공동으로 출시한 제품 또한 페이스북의 인터페이스인 페이스북 홈 Facebook Home을 탑재했음에도 싸늘한 시장 반응이 나왔다. 결국 이 제품을 독점 판매했던 AT&T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할인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HTC가 헤매는 사이 애플과 삼성은 모바일 산업 생태계의 정점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한때 안드로이드 탑재 스마트폰 판매 1위를 기록했던 HTC는 이제 세계 10대 스마트폰 제조업체에서도 밀려난 처량한 신세다. 왕은 “초반에는 경쟁이 그리 거세지 않았다”며 “마케팅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케팅보다 제품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또 우리는 고객과 소통하는 법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왕의 복귀가 아직 HTC의 재무 상황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2013년 매출은 30% 감소해 6억 8,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손실은 4,460만 달러에 달했다. 지난 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23% 하락했다. 애플, 삼성, 그리고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중국 저가 업체와의 경쟁은 앞으로도 만만치 않게 전개될 전망이다.

직원들은 왕의 존재가 이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전 세계를 오가며 직원과 주요 협력업체 및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그중에는 고객 수 기준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인 차이나 모바일 China Mobile의 회장도 있다). HTC의 북미담당 사장 제이슨 매켄지 Jason Mackenzie는 “(자신들이) 주목은 덜 받아도 스마트폰 업계의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라는 사실이 전체 조직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했다.

왕의 집안에는 성공한 기업인들이 즐비하다. 사업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아버지는 92세에 타계하기 전까지 자신의 플라스틱 재벌 그룹을 경영했고, 언니 샬린 Charlene은 1980년 마더보드 제조사인 퍼스트 인터내셔널 컴퓨터 First International Computer를 공동 창업했다. 또 오빠 윈스턴 Winston은 중국에서 반도체 회사를 세웠다. AMD *역주: 미국의 반도체 회사의 최고마케팅책임자를 역임한 스티브 젤렌시크 Steve Zelencik는 이 가문을 “매력적”이라고까지 평했다. 1980년대 언니의 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왕은 AMD에서 부품을 구매하는 업무을 맡았다. 현재 IT업계에서 은퇴한 젤렌시크는 “왕은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애송이였지만, 금방 업무에 적응했다”고 회고했다.

사실 왕은 적응력을 기르며 10대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녀는 15세 때 대만 타이페이를 떠나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Berkeley의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이후 UC버클리에 진학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왕은 당시 유대인 가족의 집에 머무르면서 새로운 음식과 관습 및 의무를 처음으로 접했다. 왕은 “수요일에는 내가 직접 요리를 해야 했다. 나는 요리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결국 수요일에는 중국 음식점을 가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왕융칭의 세 아내 중 두 번째 배우자였던 왕의 어머니도 결국 대만을 떠나 베이 에어리어 Bay Area *역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지역에 정착했다. 왕은 “어머니는 무일푼으로 대만을 떠났다”며 “60세의 나이에 영어를 배우고 운전면허를 땄다”고 말했다.

부모에 대해 말하면서 왕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인 아버지는 자신의 사업 경험을 담은 10장짜리 편지를 써 보냈다. 캘리포니아 주 멘로 파크 Menlo Park에 위치한 로즈우드 호텔 Rosewood Hotel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왕은 “답장을 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화를 내셨다”고 말했다(현재 그녀는 HTC 본사 근처인 타이페이와 베이 에어리어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언니의 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후, 왕은 80년대 후반 비아 테크놀로지스 창업에 참여했다. 이후 왕과 경영진은 인수 및 투자 활동을 통해 휴대전화 업계에 진출했다. 왕은 HTC 창립 초기에 대해 “당시 나는 수없이 많은 면담을 통해 우리 비전을 설명했다. 그 비전을 처음으로 믿어준 이가 피터 [추]였다”고 회고했다. 왕은 공동 창업자이기도 한 추에게 HTC를 부활시킬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추가 현 스마트폰 제품군이 실패할 경우 사임하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그는 왕의 복귀에 대해 “신제품과 제품군 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그녀는 나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라고 말했다. HTC의 최대 주주인 왕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2011년 이후 90% 폭락했다. 왕이 겸손한 인물일지는 모르지만, HTC의 몰락이 계속된다면 스티브 잡스처럼 전면적인 복귀를 단행한다고 해도 놀랄 이는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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