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나이는 지난 2월 할리우드 영화배우 로버트 피카도가 알려준 레시피 대로 피자를 만들면서 슈퍼볼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믹서와 밀가루를 꺼내든 그는 종교와 과학,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설령 제가 지옥에 가더라도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 되지는 않아요. 진실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 순간 그의 표정에 살짝 짜증이 묻어났다. 이틀 뒤인 2월 4일 켄터키주 피터스버그의 창조박물관에서 창조론 옹호 단체인 AiG의 켄 햄 대표와 벌이게 될 토론회가 떠오른 듯 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일어날 최악의 상황은 제가 이성을 잃는 거예요. 만일 켄 햄 대표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면 모두 제 잘못이죠.”
켄 햄은 미국의 대표적 창조론자로서 토론회가 열릴 창조박물관도 그의 소유다. 1990년 대 미국 공영방송 PBS의 과학프로그램 ‘빌 아저씨의 과학교실’로 유명인사가 된 빌 나이와 켄 햄의 공개 토론회는 이른바 창조론자와 진화론자의 진검승부였다. 900석의 입장권이 온라인 판매 2분 만에 매진됐을 만큼 대중적 관심도 집중되고 있었다.
도우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와 설탕, 소금, 이스트를 믹서에 넣고 스위치를 누른 빌 나이는 필자를 바라보며 창조론이라는 극단적 신념에 맞서 과학적 합리성을 변호해야한다는 책임감에 부담이 적지 않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새 그는 대중들에게 모든 것들을 과학적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빌 아저씨로 돌아왔다.
“피자의 도우가 부푸는 원리는 이스트가 설탕을 먹고,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배설하기 때문입니다.”
믹서에서 도우를 꺼낸 그는 밀가루를 살짝 뿌린 뒤 접시에 담아 서재로 가져갔다. 그리고 접시를 케이블TV 셋톱박스에 올려놓았다.
“전자기기의 열기가 이스트의 반응속도를 증진시켜 도우가 더 빨리 부풀어 오른답니다.”
셋톱박스 옆의 책장에는 빌 아저씨의 과학교실 100회분의 DVD가 꽂혀 있었고, 그 위에 종이를 넣은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액자 속 종이엔 ‘목표: 세상을 바꾸자!’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방송을 처음 시작할 당시 그의 다짐이었다.
빌 나이는 미국의 과학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처음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와 이공계 박사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과학문맹국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얼마 전 퓨 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약 45%가 인간이 진화가 아닌 다른 과정을 거쳐 나타났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미국인 2명 중 1명이 기후변화를 인간이 일으켰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전체 과학자의 약 98%가 인간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라 믿고 있음에도 말이죠. 98%는 흡연과 폐암 발병이 유관하다고 믿는 과학자 비율보다도 높은 수치예요.”
빌 나이는 현재의 미국 과학이 포위를 당한 채 전방위 공격을 받고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고, 인생을 건 과학이 지금처럼 공격 받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생각이다. 다시 한번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싸움을 앞둔 그는 액자의 글귀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는 듯했다.
켄 햄 대표와의 토론회는 수년전 뉴욕에서 벌어진 한 인터뷰가 발단이 됐다. 당시 홍보담당자가 여러 건의 인터뷰 약속을 잡아 놓은 탓에 빌 나이는 새벽 2시에 일어나 항공기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와 쉴 틈 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늦은 아침 지식정보 사이트 ‘빅싱크(bigthink.com)’와의 마지막 인터뷰가 시작됐을 때 그는 시차 부적응으로 인해 비몽사몽 상태였다.
인터뷰 영상을 보면 그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잠을 깨려고 애를 썼지만 대화 중간 마다 그의 고개는 꾸벅꾸벅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사회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명왕성과 암흑물질, 그리고 창조론에 대한 질문이었다.
“전체 인류 중 일부만 창조론을 믿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화면 속 빌 나이는 결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재미있고 온화한 빌 아저씨가 아니었다. 지금껏 700만명이 이 인터뷰 동영상을 봤을 정도로 그의 분노 섞인 목소리는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켄 햄 대표가 토론을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빌 나이가 진화론, 아니 과학계의 대변자 이미지를 갖추게 된 계기는 지역방송에서 시‘애틀 투나잇 투나잇’이라는 쇼의 무대감독이었던 스티브 윌슨을 만난 197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졸업 후 보잉의 엔지니어로 일하며 야간에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했었던 빌 나이는 윌슨이 지역방송국의 토크쇼 ‘올모스트 라이브’를 맡게 되면서 그를 도왔다.
“당시 빌 나이는 과학을 이용해 시청자를 즐겁게 해줄 아이디어들을 내놓았죠. 마시멜로를 초저온 액체질소가 담갔다가 입에 넣고, 코로 연기를 뿜어내는 것 같은 식이었어요.”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진행자 로스 셰이퍼는 어느 날 게스트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자 빌 나이에게 과학을 소재로 7분짜리 코너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1992년 올모스트 라이브가 전국 방송으로 거듭났을 때 빌 나이는 보잉에서 퇴사해 본격적으로 작가 겸 배우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듬해 빌 아저씨의 과학교실이 인기를 끌면서 PBS는 이를 단독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엉뚱하지만 유익한 과학지식을 전달해준 이 프로그램은 무려 5시즌이 방송됐고,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시청했다. 에미상도 18번이나 수상했다. 지금도 PBS 지역방송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으며, 디즈니는 모든 회를 담은 DVD 세트를 과학수업용 교보재로서 미 전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판매했다. 그렇게 빌 나이는 아이들에게 인기 높은 유명과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윽고 2004년 그는 방송인으로서 더 많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 시애틀을 떠나 LA로 갔고, 특집 과학프로그램들을 진행했다.
많은 유명인들은 공인으로서의 자아와 진짜 자신의 자아를 분리하기 어려워하는데 빌 나이의 경우 과학은 항상 무대 소도구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어린 시절 성공회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 둔 이유도 과학적·합리적 사고 때문이었다.
“어느 날 성경책을 두 번이나 통독하면서 주석을 참조해 성경 내용과 지도를 비교해봤어요. 그렇게 내린 제 결론은 성경책의 모든 내용이 사람에 의해 지어졌다는 것이었죠.”
코넬대학에 진학해 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세계적 천문학자 칼 세이건 박사의 천문학 수업을 듣고는 그가 설립한 천문우주단체 ‘행성협회(The Planetary Society)’의 창립회원이 됐다. 현재 세계 최대 비영리 천문우주 연구단체로 성장한 행성협회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빌 나이는 최근 들어 칼 세이건 박사가 자주 떠오른다고 말했다. 올해 동료 천문학자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칼 세이건 박사의 역작인 ‘코스모스’ 프로그램을 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해 방송한 때문이었다.
“타이슨 박사와 매주 한 번씩은 대화를 나눠요. 주제의 대부분은 와인과 여자, 과학, 방송이랍니다.”
필자가 타이슨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빌 나이와 켄 햄 대표의 토론회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행성협회의 대표로서 빌 나이가 해야 할일 중의 하나에요. 그는 그 혼자만이 아니라 그가 대표하는 모든 과학자들이 믿는 진리를 위해 움직여야 합니다.”
그 주 일요일, 슈퍼볼 파티를 위해 시애틀에서 스티브 윌슨과 그의 아내 줄리 린이 찾아왔다. 세 사람의 고향인 시애틀을 연고지로 둔 시호크스팀의 경기였기에 흥분한 모습들이 역력했다. 일주일전 빌 나이가 대형 TV를 새로 구입한 이유도 오직 이 게임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웃들까지 합세해 거실이 북적이면서 빌 나이와 필자는 현관 밖으로 나와 거리를 바라보며 얘기를 나눴다. 그는 손으로 뭔가를 쓸어내는 동작을 하면서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했다.
“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절대로 가질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과학을 억누르고, 무시하려 해요. 이들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방패막이로 사용하죠. 이는 켄터키주나 미국에 국한되지 않아요. 전 세계에서 이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빌 나이는 갑자기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경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피자도 완성해야 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면서 윌슨 부부와 이웃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시호크스 팀은 초반부터 상대 팀을 압도했고, 43대 8로 압승을 거두며 1976년 창단 이래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빌 나이의 거실은 그야말로 축제 그 자체였다.
뜨거운 밤이 지나가고 빌 나이는 다음날 아침일찍 눈을 떴다. 윗몸일으키기 250회, 팔굽혀펴기 150회를 마친 그는 옷장 안에 있던 수백개의 나비넥타이 중 몇 개를 골라 여행가방에 넣고는 공항으로 달려가 격전지인 켄터키주 피터스버그로 향하는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하늘길을 날아가는 동안 그는 미국 과학교육에 있어 가장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 장소들을 지나쳤다. 텍사스주, 아칸소주, 인디애나주였다. 지난 수년간 이곳에 설립된 차터 스쿨 가운데 일부가 진화론을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라 소개하면서 ‘최초의 세포가 초자연적 힘의 개입에 의해 탄생했다’는 내용을 담은 교과서를 채택한 것.
“지금껏 이런 학교에서 1만7,000명의 졸업생이 배출됐고, 세금도 8,260만 달러나 지원됐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초등학생들의 과학지식은 2003년 이후 나아진 것이 없다. 3년마다 한 번씩 발표되는 이 조사에서 미국 초등생의 과학지식은 15년 동안 65개국 중 중간 수준을 유지하면서 이제는 중국에까지 추월당한 상태다.
이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게 빌 나이의 판단이다. 그는 미국 이민 정책이 까다로워지면서 미국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외국인 대학생들이 졸업 후 미국에 잔류키 어려워진 것도 이 문제를 심화시킨 요인이라 여긴다. 기후변화의 원인이 인간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부인하려는 시도 역시 이 연장선장에 있다는 설명이다.
그중에서도 빌 나이는 조기 과학교육의 부실화를 가장 심각하게 바라본다. 아이들이 기초적 과학지식 없이 자라나 성인이 되면 각종 사회적 문제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없는 ‘무식한 유권자’가 될 것이고, 직업 선택의 폭도 좁아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과학계는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킬 힘이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의 공공프로그램 책임자인 진저 핀홀스터 박사는 불확실한 학설에 대한 과학계의 안이한 대처를 주요인으로 꼽는다.
“과학자들은 가급적 모든 정보를 모아 엄청난 양의 논문과 정보를 검토한 뒤 자신의 주장을 타당하고 논리적으로 조심스럽게 전개하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반면 대중들은 언론의 헤드라인과 화제성 기사, 자신과 관련 있는 것들을 알고 싶어 하죠. 과학적 의사소통 절차에는 관심이 없어요.”
창조론자들이 과학자들에게 토론을 제의할 때 그 결과는 대개 불만족스럽다. 과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일말의 진실도 입증하기 힘든, 검증 안 된 학설과 자료들을 잔뜩 들고 나와 막무가내식 주장을 펼치는 탓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검증·반박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창조론자들의 논리 자체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는 오류를 범한다. 그래서인지 과학자들은 창조론자와의 논쟁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빌 나이는 그렇지 않다. 캘리포니아에서 그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를 박살내버리고 싶습니다. 저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독특한 위치에 있어요.”
토론회가 열릴 켄터키주 피터스버그는 오하이오강에 인접해 있다. 그곳에 위치한 창조박물관에는 저녁 7시에 펼쳐질 토론회를 앞두고 오후 2시부터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박물관 안의 분위기는 엄숙하기까지 했다. 직원들은 딱딱한 미소로 관람객들을 안내했고,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에 공룡의 모형이 있는 등 독특한 전시물도 많았다. 관람객들을 붙들고 기독교 전도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도 곳곳에 보였다.
토론회를 앞두고 켄 햄은 언론으로부터 그가 제안한 ‘방주 공원(Ark Park)’에 대해 질문을 받았지만 정중히 코멘트를 거절했다. 이는 창조박물관에서 남쪽으로 64㎞ 떨어진 곳에 324만㎡의 부지를 마련, 실물 크기 노아의 방주를 건설하는 7,300만 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반면 빌 나이에 의해 지금까지 믿어온 신념이 흔들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강한 어조로 답했다.
“당신이 뭘 압니까? 저는 기독교인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가 뭐라고 하던 저는 그 점에 의심을 품지 않습니다.”
방청객들이 객석을 채우는 동안 대형 스크린에 빌 나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지질학에 대한 그의 과거 방송 영상이었다. 켄 햄 대표측에서 토론 전에 내보낼 방송영상을 요청하자 빌 나이는 창조론에 배치되는 내용이 담긴 영상들을 보냈었다.
정각 7시. 연사와 토론 내용의 소개에 이어 두 사람은 각각 30분의 기조발표를 한 뒤 본격 토론을 개시했다. 정장 차림에 나비넥타이를 맨 빌 나이는 힘이 넘쳐 보였다. 2시간이 지났을 때쯤 켄 햄은 언론인들이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을 빌 나이에게 던졌다.
“어떤 증거가 당신의 신념을 바꿀 수 있을까요?”
빌 나이는 이렇게 답했다.
“단 하나의 증거만 있으면 됩니다. 화석이 원래 있던 지층에서 다른 지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게 곤란하다면 우주가 팽창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도 좋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항성들이 사실 가깝게 위치해 있다는 증거도 괜찮습니다. 이것도 어려우면 암석층이 단 4,000년만에 형성될 수 있음을 입증해도 됩니다. 이중 하나의 증거만 가져오시면 저는 즉시 마음을 바꾸겠습니다.”
토론회 막바지에 방청객들이 두 사람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빌 나이에 대한 질문 대부분은 마치 그의 실수를 유도하기 위한 것 같아보였다.
“빅뱅을 일으킨 원자들은 어디서 생겨난 건가요?”
빌 나이는 두 손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거야 말로 엄청난 미스터리에요. 핵심을 정확히 찔러 주셨네요.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저희가 알고자 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저희에게 그 의문은 경이롭고, 매력적이며, 강렬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일어나 연구를 합니다. 우주의 신비를 풀기 위해서요.”
켄 햄이 조용히 미소 짓더니 말을 받았다.
“빌! 모든 물질이 어디서 왔는지를 가르쳐 주는 책이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군요.”
상당수의 방청객이 동의의 웃음을 웃었지만 빌 나이는 켄 햄을 강렬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그의 대답이었다. 토론회를 끝까지 지켜본 필자는 켄 햄의 힘은 자신의 신념과 동조자들로부터, 빌 나이의 힘은 우주의 신비로움에 대한 경외감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토론회 다음 날, 기독교방송(CBN) 설립자이자 기독교 목사인 팻 로버트슨이 TV에 등장해 켄 햄 대표를 비난했다.
“이제 농담은 그만하고 솔직해 집시다. 이미 우리는 6,500만년 전의 공룡 뼈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그 뼈가 6,000년도 안 지난 거라고 우기는 건 넌센스예요.”
하지만 수주일 뒤 켄 햄은 빌 나이와의 토론회 덕분에 자신의 단체에 수천만 달러의 후 원금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방주 공원에 필요한 예산 중 6,200만 달러를 확보했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이에 빌 나이는 한 과학전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글을 기고했다.
“우리는 이미 먼 길을 돌아왔다. 하지만 방주 공원 같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한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
자신의 글을 실천에 옮기기라도 하듯 빌 나이는 오래지 않아 LA를 떠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뉴욕의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미국 유수의 방송국들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였다. 그렇게 최근 그는 CNN에서 한 경제학자와 기후변화를 주제로 토론했다. 또한 HBO 방송의 토크쇼 ‘라스트 위크 투나잇’에 출연해 기후변화와 관련된 엉터리 보도관행을 꼬집었고, ‘부인할 수 없는: 진화와 창조의 과학’이라는 책도 탈고했다.
그러나 예전에도, 지금도 빌 나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활동은 따로 있다. 바로 학교에 찾아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다. 토론회 다음날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전 8시 학부모들이 몰고 온 미니밴을 타고 그는 신시내티의 실링 영재학교로 갔다. 연단에 올라 과학쇼를 펼친 그의 모습은 긴장이 풀린 듯 했고, 학생들을 상대로 다양한 개그를 선보였다. 객석 맨 뒤에 앉아 있는 그의 매니저 베스티 버그는 이미 100만번은 족히 들었을 개그임에도 여전히 웃음을 지었다.
퍼포먼스가 끝나고 학생들의 질문시간에 펭귄 모자를 눌러 쓴 7살짜리 소녀 벨 페이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의 말은 사실상 질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오리너구리를 정말 좋아하는 소녀일 뿐이었다. 빌 나이는 소녀와의 문답을 이어가기 위해 이렇게 물었다.
“왜 오리너구리가 포유류라고 생각하죠?”
“젖을 먹이잖아요.”
빌 나이가 부드러운 톤으로 설명했다.
“맞아요. 그리고 ‘왜’라는 의문이야 말로 사물의 본질을 알기 위해 매우 중요하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닌 두 가지 큰 의문이 있죠. ‘우리 인간만이 우주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일까?’와 ‘우리는 어디서 온 걸까?’가 그거예요. 오리너구리 같은 동물들은 특이한 특징을 갖고 있어요. 그 특징들을 탐구함으로써 이들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 수 있답니다.”
이어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소년이 마이크를 넘겨 받았다.
“선생님이 살면서 직접 본 가장 큰 폭발은 무엇이었나요?”
“훌륭한 질문이에요! 채석장에서 돌을 폭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가장 큰 폭발이자 가장 무서웠던 폭발로 기억되네요. 참고로 한 가지 알려줄게요. 소듐(Na)을 물에 떨어뜨리면 폭발적 반응이 일어난답니다. 소듐이 뭔지 알고 있나요?”
“아니요.”
“그럼 소금을 먹어 본 적은 있죠?”
“네.”
“그래요. 소금은 염화나트륨(NaCl)이에요. 소듐은 나트륨이라고도 합니다.”
그는 다음 말을 잇기 전에 뜸을 들였다.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 것이다.
“염화나트륨을 이루는 염소(Cl)와 나트륨은 순수한 상태에선 인간에게 유독한 물질이에요. 하지만 두 가지가 합쳐지면 인간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소금이 되죠.”
그는 말을 멈췄다가 그의 유행어를 꺼냈다.
“그건 마법 때문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그러자 미국 중서부 겨울의 밝은 햇살을 받던 작은 강당 안의 학생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과학 때문이지요!”
빌 나이의 취미
댄싱. 매주 수차례 스윙댄스 교실에 나간다. 대퇴사두근이 망가지기 전까지 인기 예능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의 단골 게스트였으며, 발레용 토우 슈즈의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빌 나이가 사랑하는 것
가족. 아버지는 평범한 세일즈맨이었지만 해시계에 대한 책을 냈을 만큼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스스로를 소년과학자라 부르기도 했다. 어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암호해독가로 활동했다.
AiG Answers in Genesis.
빌 아저씨의 과학교실 Bill Nye the Science Guy.
차터 스쿨 (charter school) 공적 자금을 지원받아 교사·부모·지역 단체 등이 설립한 공립 교육기관.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와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
부인할 수 없는: 진화와 창조의 과학 Undeniable: Evolution and the Science of Cre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