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30대그룹은 지금] 현대백화점그룹

내실에서 성장으로 전략 선회<br>유통시장 뜨거운 감자 급부상

신중한 의사결정으로 유명한 현대백화점그룹이 최근 몇 년 동안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7년 동안 추가 출점을 하지 않더니 이후 연이어 3개 점포를 오픈했고, 현대LED, 리바트, 한섬 등 제조사들을 잇달아 인수하며 타 업종으로 외형도 크게 확장했다. 최근에는 아울렛시장에도 뛰어들면서 신사업 부문에서 롯데, 신세계와 치열한 난타전을 예고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급격한 방향 전환 배경과 그 성공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마흔이 되면 활발히 외부활동을 하겠습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003년 그룹 총괄부회장으로 승진했을 때 했던 말이다. 1972년생인 정 회장은 마흔을 한 살 남겨둔 2010년, 본격적인 외부활동에 나서기에 앞서 창립 39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야심 찬 출사표를 던졌다. 정 회장은 이날 부대행사로 진행된 ‘Passion Vision - 2020’ 선포식에서 2020년에 그룹 매출 20조 원, 영업이익 2조 원을 달성하겠다고 천명했다. 당시 6조 원 규모였던 그룹 매출을 10년 후 3배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공격적인 발언이었다. 이는 그동안 내실 위주의 경영활동을 펼쳐왔던 현대백화점그룹이 성장 위주로 경영전략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했다.

불혹을 기다려온 회장님

현대백화점그룹은 보수적인 의사결정으로 유명하다. 평소 정 회장의 신중한 성격이 이 같은 그룹 전략의 배경이 됐다는 게 시장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동안 정회장은 ‘선 안정 후 성장’을 강조해왔다. 때문에 현대백화점그룹은 2003년 정 회장이 서른둘의 나이로 그룹 총괄부회장이 된 이후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안정 일변도의 전략을 고수해왔다. 주요 경쟁사로 꼽히는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공격적인 외형확장으로 시장 곳곳에서 맞부딪치고 있을 때도 현대백화점그룹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2007년 입사 11년 차인 정 회장이 서른여섯 나이에 회장직에 올랐을 때도 현대백화점 그룹은 요지부동이었다.

당시 시장에는 묘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다. 정 회장이 부회장이었을 때만 해도 ‘초고속 승진을 한 정 회장이 조직을 장악할 시간이 부족해 그룹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하지만 그가 부회장이었던 4년 동안 그룹이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였고, 또 전무와 부사장으로 재직 시 흡수하거나 론칭했던 현대홈쇼핑과 현대HCN이 성장 본궤도에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회장 승진 이후에는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도전을 좋아했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피를 물려받은 데다가 젊기까지 한 정 회장이 시장의 판을 뒤흔들 뭔가를 내놓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여전히 ‘불혹(마흔 살)이 되면’을 고수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을 바라보는 이들은 애가 탔다. 백화점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 2003년 중동점 이후 추가 출점을 하지 않았다. 시장점유율 하락은 당연지사였다. 더 뼈아픈 건 업계 내 위상 추락이었다. 이전만 해도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을 묶어 유통업계 빅3라 부르며 이들을 함께 기사화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언젠가부터 롯데·신세계 투톱으로 표현하는 언론사가 많아졌다. 현대백화점은 투톱 기사에 딸림으로 들어가는 +1이 되고 있었다. 빅3에서 3등으로 현대백화점그룹의 위상이 격하된 것이었다.

동시다발적인 사업 확장

하지만 2011년 들어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이 약속한 것처럼 정 회장 스스로 본격적인 외부활동에 나섰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서른 아홉 살이던 2010년 6월부터였다. 공식 석상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었던 정 회장이 창립 39주년 기념행사에서는 토끼 인형 퍼포먼스까지 선보이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날 행사에서 정 회장은 양손에 하나씩 두 마리 토끼 인형을 들어 올리는 상징적인 행동을 했다. 내실에 이어 성장까지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후 현대백화점그룹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연혁만 봐도 알 수 있다. 2008년까지 한산하기만 했던 연도별 특이사항란이 2009년부터 굵직굵직한 내용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2010년 킨텍스점을 오픈하면서 7년 만에 백화점 추가 출점에 성공했고, 2011년, 2012년에는 대구점과 충청점을 연이어 개점하며 총 13곳으로 점포 수를 확대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현대푸드시스템, 현대홈쇼핑, 현대HCN 3개 계열사가 IPO를 통해 잇달아 주식시장에 입성했고, 2011년부터 올해까지 현대LED, 리바트, 한섬 등을 인수하며 제조업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이 시기 현대백화점그룹의 사업 확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받았다. 외형 확대에 극히 보수적이었던 현대백화점그룹이 한 번에 많은 사업을 진행했다는 점과 예전과 달리 타 업종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는 점이 시장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이전에도 홈쇼핑 등 다른 사업에 진출한 예가 있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본업인 유통업 내의 사업이었다. 채널이 다르다고는 해도 계통은 같았다는 얘기다. 양지혜 KB투자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현대LED(조명), 현대리바트(가구), 한섬(의류) 등은 제조사이긴 하지만 유통 기업과 결합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크게 낼 수 있는 곳들입니다. 저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콘텐츠 확보 차원에서 이들 기업을 인수한 것이라고 봐요. 유통업 특성상 양질의 콘텐츠는 여러 사업장에서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거든요. 백화점에 입점해도 되고 마트나 홈쇼핑, 온라인 쇼핑몰에 넣어도 되고요. 피인수 기업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많은 재고를 해결해 줄 채널이 생기기 때문에 서로 이득이 되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당장은 좀 더딜지라도 조만간 시너지 효과가 크게 나타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잡음

현대백화점그룹이 추진 중인 새로운 사업 내용이 모두 성공 가도만 달리고 있는 건 아니다. 워낙 다양한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탓에 잡음도 연이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인수 기업들의 실적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인수 기업 중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섬은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역성장을 기록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한섬을 의류 업황이 한창 고점을 찍을 때 매입해 고가 인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때문에 현대백화점그룹 내에서도 한섬의 성장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지만, 업황 악화의 화살을 피해가진 못했다.

다른 기업들 역시 사정이 좋지 못했다. 현대 LED의 실적은 인수 다음 해인 2012년 반짝 상승했지만, 지난해 하락 반전했다. 현대리바트는 2013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긴 했으나 가구업계 전체 업황이 좋았다는 점 때문에 평가절하됐다. 업계에선 외형성장에만 그쳤다는 야박한 의견을 내놓는 곳도 있었다. 실제 가구업계 1위 한샘은 지난해 매출성장률 28.6%, 영업이익률 7.9%를 달성해 시장에서 화제가 됐지만, 같은 기간 현대리바트는 매출성장률 9.8%, 영업이익률 2.3%를 기록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다만 2011년 89억 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인수한 2012년에 32억 원으로 줄어들었다가 지난해 128억 원까지 치솟은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가전사 인수가 늦어지고 있는 것도 현대백화점그룹에겐 부담이다. 가전사 인수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유통·제조 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 제고 전략의 핵심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최근 몇년 동안 ‘토탈 라이프 케어 종합 유통 서비스사’를 목표로 여러 건의 M&A를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유독 가전사 인수만 번번이 실패해 의류-가전-가구로 이어지는 주요 제조 라인 구축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올해만 벌써 두 번이나 가전사(동양매직, 만도위니아) 인수를 추진했지만 모두 실패해 아쉬움을 샀다.

신사업 본격화의 선봉을 맡은 아울렛 사업은 첫발부터 스텝이 꼬였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올해 5월 가산점을 시작으로 송파점(가든파이브), 김포점을 차례로 오픈할 예정이었다. 첫 아울렛 사업임에도 한 해에 무려 3개나 오픈하는 과감한 행보였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송파점 오픈이 기존 입주 상인들의 반발로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첫 아울렛인 가산점이 위탁운영 방식임을 고려하면, 현대백화점그룹 단독운영 첫 번째 아울렛으로 계획됐던 송파점의 무기한 개장 연기는 더욱 뼈아플 수밖에 없었다. 올해 하반기와 내년 하반기에 각각 개장되는 김포점과 송도점은 계획대로 오픈할 예정이다.

성공이냐 실패냐 그것이 문제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의 아울렛 사업 진출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많이 나오고 있다. 양지혜 연구원은 말한다. “전체 유통시장에서 백화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밖에 안 됩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성장하기 위해선 백화점 이외의 사업으로 확장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의 아울렛 사업 진출은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입점하기로 예정된 각각의 입지가 무척 좋아요. 사업 진출이 늦어진 걸 모두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입지 프리미엄이 탁월합니다. 아직 아울렛 시장이 계속 성장 중인 만큼 반전의 기회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시장에선 현대백화점그룹의 신사업 진출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익명을 요구한 시장관계자는 말한다. “그동안 투자 지연으로 현대백화점그룹의 성장이 경쟁 업체들보다 뒤처진 건 사실입니다. 좋게 얘기하자면 신중한 거지만, 다른 의미로는 대응이 늦다는 해석도 가능하죠. 특히 대형마트나 아울렛 같은 합리적 소비 트렌드에 대응이 늦은 점이 아쉽습니다. 경쟁사 아울렛 매출이 올해 2조 원을 넘느냐 마느냐 하는 이때에 이제 겨우 출점을 시작했으니 늦어도 많이 늦은 셈이죠. 롯데와 신세계에서 눈에 불을 켜고 추가 출점 장소를 물색 중인 만큼 현대백화점그룹도 예정된 장소 이외의 출점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 봅니다. 시작점이 벌어진 만큼 결과 차이를 줄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반박 의견도 나온다. 업계 주요 관계자는 말한다. “다른 두 경쟁사에서 외형 확장에 치중하는 동안 현대백화점그룹은 내실 다지기에 집중해 왔습니다. 굉장히 많은 구조조정과 비용절감 노력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덕분에 현대백화점그룹은 경쟁사 대비 굉장히 높은 이익률을 거두게 됐죠. 이 부분이 바로 현대백화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저는 현대백화점그룹이 탁월한 이익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외형성장이 조금 뒤처진 것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사들이 투자나 M&A를 꺼리는 지금, 현대백화점그룹이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할 수 있는 것도 이전에 내실을 충분히 다져놨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그렇다면 현대백화점그룹의 입장은 어떨까. 현대백화점그룹은 최근 이슈에 대해 다소 담담한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강명구 현대백화점그룹 홍보과장은 말한다. “저희는 무리한 투자를 하기보단 내실과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신중한 선택을 하는 편입니다. 최근 공격적인 확장을 하다 보니 그 내용에 대해서나 투자 시점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요. 저희는 원래 계획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언제 어느 시점에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중장기 계획에 따라 가고 있기 때문에 조금 차질이 생겼다고 해서 사업 다각화가 늦다거나 쫓긴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비전 2020을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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