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벤처인 Talk! Talk!] 이정수 플리토 대표

[VENTURE] “집단 지성 소셜 번역으로 구글 번역기 뛰어넘는다”

“ 구글 캠퍼스 런던에 머물렀던 3개월 동안 매일 샌드위치만 먹으며 고시생활 하듯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꿈만 좇기에는 현실이 너무 냉혹했죠. 하지만 당시의 경험은 지금의 플리토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집단 지성 소셜 번역 플랫폼을 표방하는 ‘플리토(flitto)’의 이정수(32) 대표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젊은 창업가다. 그의 열정은 이미 글로벌시장에서도 인정 받은 바 있다. 한국인으론 유일하게 전 세계 벤처 창업가들의 꿈인 구글 캠퍼스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포춘코리아가 소셜과 번역의 만남이라는 독창적 아이디어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정수 플리토 대표를 만나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김태환 marunee0@gmail.com


‘소통의 장벽을 무너뜨리자’

전 세계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양한 네트워킹 플랫폼을 통해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하지만 정보의 공유를 가로막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언어다.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다. 아무리 유용한 정보라 해도 그것을 모국어 정도로 해석할 수 없다면 그 쓰임새가 작아진다. 소셜 번역 플랫폼 ‘플리토’는 이 같은 ‘언어의 장벽’을 해결하려는 시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정수 대표는 말한다. “해외 주재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냈습니다. 미국, 영국, 중동지역 등 체류 국가도 다양했어요. 각기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보니 소통의 어려움은 항상 저를 따라다녔죠.” 하지만 이 대표는 해외 생활을 통해 아랍어, 영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를 습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언어 실력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더욱 빛을 발했다. 이정수 대표는 그 때부터 친구들의 영어 관련 과제와 프리젠테이션을 도왔다. 해외 생활에서 얻게 된 유창한 영어 실력이 지인들 사이에서 입소문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가 번역과 관련된 사업 아이템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다.

“당시 주변에 번역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련 과제는 전부 저에게 맡기더라고요. 보상이라고 해봤자 저녁 한 끼 사주는 것이 전부였지만요.(웃음) 그 때부터 번역 의뢰 과정을 단순화 시킬 수 있는 서비스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후 이 대표는 학교 내에 번역의뢰를 할 수 있는 서버를 만들었다. 국가별 언어를 잘하는 친구들을 리스트로 만든 뒤, 번역 대상 언어에 맞춰 서로를 매칭시켰다. 이 서비스는 학생회 게시판을 타고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 때 이 대표는 처음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기획했다. 바로 여행 번역 서비스 ‘플라잉케인’이었다. 플라잉케인은 여행과 관련된 콘텐츠를 번역해주는 서비스였다. 해외여행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언어 차이에 따른 소통이기 때문에 여행과 언어의 조합이라는 아이디어는 꽤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 대표는 플라잉케인을 통해 사업을 하려는 마음은 없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창업 자체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플라잉케인과 같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희열을 느낄 뿐이었다.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제 아이디어에 누군가 관심 가져주고 이를 사업화 해준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은 했죠. 사실 지금도 제가 사업을 하고 있는 게 옳은 일인지 생각을 하게 돼요.(웃음)”

실제로 이 대표는 대학 졸업 후, SK텔레콤에 입사해 낮에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업무를 보고, 저녁에는 사내 벤처 ‘두드림’에서 활동하며 매일같이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소셜 기반 맛집 추천 플랫폼, 소셜네트워킹게임(SNG)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이 아이디어는 지금도 그의 개인 블로그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심지어 플리토에 대한 기획서도 거기에 있다. 누구든 필요하면 가져다 써도 된다는 말도 함께 쓰여 있다. “제가 낸 아이디어라고 해서 꼭 제가 사업을 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누군가 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만 봐도 만족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아무도 제 아이디어에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아이디어가 문제인지, 사람들이 모르는 건지 궁금했죠. 그래서 늦기 전에 직접 사업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플리토를 세상에 알린 한류스타

플리토(flitto)는 ‘훨훨 날다’란 뜻을 가진 영어 단어 ‘플리터’(flitter)에서 따온 이름이다.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오르겠다는 이정수 대표의 의지가 담겨 있다.

플리토는 ‘집단 지성’을 기반으로 한 번역 플랫폼이다. 플리토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실행하면 누구나 번역 의뢰를 할 수 있고, 누구나 번역가가 될 수 있다. 집단 지성이라는 수식어도 이 같은 플리토의 서비스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 벤처 창업가들이 그렇듯, 플리토와 이 대표 역시 사업 초기 어려움을 겪었다. 어떻게 플리토를 홍보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일단 다양한 언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글로벌 사용자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이때 이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강남스타일’로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오른 싸이였다. 이 대표는 무작정 싸이의 트윗을 다른 언어로 번역해 태깅(콘텐츠 내용을 대표하는 검색용 키워드나 태그를 다는 것)하기 시작했다. 사실 큰 반응은 없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슈퍼주니어, 샤이니, 빅뱅, 에프엑스 등 한류스타들의 트위터를 번역해 올리고 또 올렸다.

어느 순간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한류 스타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해외 사용자를 중심으로 이 대표의 번역 트윗이 리트윗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플리토에 유입 되는 사용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메인 화면에는 번역본의 70% 정도만 노출되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보려면 플리토에 접속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해외 사용자들의 활동은 단순히 플리토 접속에 그치지 않았다. 이 대표가 영어로 번역한 한류스타의 트윗을 각자의 언어로 번역해 또 다시 리트윗하기를 반복했다. 플리토가 글로벌 사용자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싸이의 트윗을 번역하기 시작하고 얼마 후였습니다. 싸이가 자신의 트위터에 ‘플리토를 통해 싸이의 트윗을 확인하세요’라는 글을 올려놓은 거예요. 무모한 도전인 줄 알았던 한류 스타 트윗 번역이 빛을 본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주요 연예기획사로부터 러브콜이 이어졌다. 연예인의 트윗을 번역해주고 번역에 대한 비용을 기획사에서 받기 시작했다. 현재 JYP, SM, YG 등 국내 3대 기획사의 트윗 번역 업무는 플리토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한류 스타들은 플리토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플리토는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플리토의 강점은 ‘실시간’과 ‘정확도’이다. 가장 많은 번역 요청이 접수되는 영어의 경우, 짧은 문장은 보통 1분 내에 번역본이 올라온다.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17개 언어를 지원하고 있는데 영어를 제외한 다른 언어도 평균 5분이면 번역본을 받아 볼 수 있다.

플리토는 정확도도 수준급 이상이다. 사실 가장 많이 통용되는 구글 번역기는 참담한 수준의 번역 정확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기계식 번역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미리 제작한 번역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으로 번역을 한다. 번역은 빠르지만, 문맥이 맞지 않는 이상한 번역이 나오기 십상이다. 번역 의뢰인의 의도를 반영한 번역은 기대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플리토는 사람이 직접 번역을 한다. 플리토 번역을 하는 사람들 역시 일반 사용자들이다. 그들은 문법, 발음, 번역 같은 몇 단계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다. 선발이 되면 각기 수준에 맞는 레벨을 부여받는다. 번역이 채택된 경우에만 번역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확도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 번역료는 50원부터 시작해 글자 수에 따라 달라진다. 모바일의 특성상 250자까지만 글을 올릴 수 있다. 번역 수수료는 번역자와 플리토가 50대 50으로 나누고 있다.

한국인 최초 구글캠퍼스 출신 벤처인

최근 이 대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로 국내 창업자 그 누구도 갖지 못한, 그만의 경험 때문이다.

지난 8월, 글로벌 인터넷 기업 구글은 서울 삼성동 인근에 창업지원공간 ‘구글 캠퍼스 서울’을 건립한다고 밝혔다. 이번 구글 캠퍼스 서울 건립은 영국 런던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이어 세계 세 번째, 아시아에선 최초로 이뤄진다. 구글 캠퍼스 서울 건립을 발표하는 현장에는 당연히 이 대표가 있었다. 그가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구글 캠퍼스를 경험한 벤처인이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지난 2012년 영국 런던에 위치한 구글 캠퍼스에 약 3개월 동안 머물며 창업 교육을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런던 구글 캠퍼스에서 인큐베이팅 대상 기업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원 신청은 했지만 합격 가능성은 0%였죠. 면접을 위해선 구성원 모두가 영국으로 가야 했는데, 그럴 여건이 안됐거든요. 당차게 화상면접을 요청했죠. 물론 그쪽에선 거부했고요. 그렇게 넘어가나 싶었는데 면접 이틀 전 화상면접을 허용하겠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렇다면 주최 측이 결정을 번복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대표는 바로 ‘열정’에서 그 해답을 구했다. “구글 캠퍼스 런던에 간 이후, 당시 담당자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소셜 번역이라는 사업 아이템의 자체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다만 정말 무언가 이뤄내고 싶어 하는 열정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걸 믿어보고 싶었다는 거죠. 그냥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운이 좋았다고요.(웃음)”

구글 캠퍼스는 플리토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플리토 사무실에 태극기를 꽂아주기도 했다. 흔치 않은 아시아 국가 젊은이에게, 그것도 지금껏 보지 못한 아이디어를 갖고 런던에 입성한 한국인 이정수에게 지원과 멘토링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스타트업들이 빠른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선 네트워킹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구글 캠퍼스 런던의 경우 동료 스타트업, 멘토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제품의 틀을 구성하고 개선하면서 지속적으로 검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에서의 3개월이 지금의 플리토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소셜 번역이라는 시장을 개척한 플리토의 당면 과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이정수 대표는 이를 통해 현재 300만 명 수준인 사용자 수를 올해 1,000만 명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정수 대표와 플리토의 궁극적 목표는 구글번역을 뛰어넘는 대표 번역 콘텐츠로 인정받는 것이다. “구글번역이라는 단어를 플리토가 대체할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전 세계 인이 하나의 정보를 정확하고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낼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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