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은 글로벌 기업도 맥없이 쓰러지는 세상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재기(再起)’라는 말이 더 이상 회자(膾炙)되지 않는다. 그만큼 한번 쓰러지면 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패를 예방하는 것이 경영자의 절대적 사명이 되고 있다. 이토록 힘겨운 상황에서 경영자에게 간절히 요구되는 ‘최종병기’는 무엇일까? 바로‘의사결정력’이다.
많은 기업이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데 조직의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있다. 그런데 실패한 기업의 대부분이 이 과정에서 사라졌다. 경영자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왜 노련한 경영자들이 의사결정과정에서 실패하는 걸까?
경영자가 의사결정 전에 분석에 전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분석이 정확하고 구체적일수록 의사결정의 성공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그런데 ‘분석’과 ‘의사결정’ 사이에는 ‘해석의 함정’이 숨어 있다. 만약 경영자가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기 위한 정보만을 분석하거나 이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객관성을 상실한다면 분석은 더 이상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치명적인 위험으로 돌변하고 만다. 그렇다면 경영자가 언제 ‘해석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걸까? 간략히 세 가지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해석의 함정은 ‘인지적 구두쇠’ 현상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폴 너트 Paul Nutt 교수는 “경영자가 하나의 선택안만 고려할 때는 더 나은 대안은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이 선택 안이 어떻게 하면 성공할지에만 집착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적절치 않았던 대안이라면 당연히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즉 경영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양한 대안을 고려하지 못하고 최소한의 대안에만 의존하여 성급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것을 ‘인지적 구두쇠’현상이라고 한다.
미국 오프라인 서적시장에서 2위였던 보더스 Borders의 에드워드 회장은 90년대 중반에 인터넷이 매년 2,300%씩 성장하는 것을 보고 온라인 서적사업으로 전환할지를 고민했다. 에드워드 회장은 온라인 시장의 매력을 감지했지만 기존의 오프라인 시장에서의 성공 경험을 잊지 못하고 온라인 시장으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말았다. 오히려 오프라인 매장과 물류설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보더스의 재도약을 꿈꿨다. 그런데 보더스의 이러한 원대한 꿈은 정말 꿈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온라인 서적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고 오프라인 서적시장은 치명타를 입었다. 바쁜 고객들은 앉은 자리에서 보다 저렴한 책을 빨리 받아보고 싶어했던 것이다. 뒤늦게 온라인 시장에 뛰어든 보더스는 결국 지난 2011년 온라인 사업을 아마존에 매각하고 파산보호신청을 끝으로 서적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만약 에드워드 회장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장점을 다양하게, 그리고 동시에 고려했더라면 보더스의 운명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두 번째로 경영자가 빠지기 쉬운 해석의 함정은 바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심리적 불균형 상태를 말한다. 경영자의 이러한 심리적 불균형이 ‘해석의 함정’을 야기할 수 있다. 경영자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분석이나 의견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집’을 부리기보다는 ‘고민’을 해야 경영자로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웰빙시대가 도래하면서 건강을 생각하는 고객들은 탄산음료에 대한 거부감을 키웠고 탄산음료의 대명사인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는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같은 시장에서 같은 위기를 맞았지만 그들의 해석은 전혀 달랐다. 코카콜라는 단맛을 뺀 저칼로리 ‘제품’에 집중했다.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비만은 피하고 싶지만 맛없는 콜라를 즐길 생각은 없었던 것이 고객의 생각이었다. 반면 펩시는 ‘시장’에 집중했다. 콜라에 대한 미련과 영광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즉 콜라가 시장에서 고객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콜라가 아닌 새로운 제품을 제공하기로 했다. 제품의 변형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주도한 펩시의 인드라 누이 회장은 피자헛과 타코벨 그리고 KFC를 과감히 팔아 치웠다. 모두 웰빙과 거리가 있는 제품군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콜라의 향수를 뛰어넘는 발상이었다. 대신 생수와 오렌지 쥬스 그리고 게토레이라고 하는 스포츠 음료를 사들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콜라시장의 100년 전쟁은 펩시의 승리로 끝났다고들 한다. 같은 위기에 직면해도 어떠한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의사결정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결과도 확연히 달라진다는 좋은 교훈을 남겼다. 만약 인드라 누이 회장이 콜라시장에 대한 중독증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자기과신’이다. 성공경험이 많은 경영자일수록 새로운 위기에 대한 주의력이 떨어진다. 과거의 성공경험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이러한 추억은 지나친 자신감으로 변질되어 현재의 상황을 해석하는 자랑스러운 잣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을 곱게 볼 리 없다.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워렌 버핏은 투자의 귀재(鬼才)로 잘 알려져 있다. 성공확률이 높은 이유는 그가 실패의 가능성을 사전에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버핏은 ‘의심’이 많은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사람’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의심이 많은 경영자다. 그는 반대가 없는 의사결정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가 없는 의사결정은 경영자에게 실패 가능성에 대한 불감증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반대자의 도전은 참을 수 있지만 투자에 실패하는 것은 견딜 수 없다는 워렌 버핏의 신념이 아닐까?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반대자의 의견을 확인하고 그 의견이 타당할 경우에는 합리적인 보상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워렌 버핏이 지닌 너그러운 인격 이전에 실패하지 않겠다는 그만의 놀라운 신중함과 노련함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경영자도 모르면 물어야 한다. 그리고 많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해석의 함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래도 아랫사람이 침묵한다면 그것은 경영자의 의사결정에 감동을 받아서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기 보다는 자신을 먼저 걱정하기 때문일 수 있다. 따라서 실패하지 않는 리더는 자신의 집념과 생각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 반대를 포함해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체제를 조직 내부에 정착시켜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한번쯤 돌아볼 수 있는 냉철함이 간절히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함정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제구 교수는…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상무이사) 겸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주요 기업 등에서 리더십, 팀워크, 조직관리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한국리더십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크레듀 HR연구소장, KB국민은행 연수원 HRD컨설팅 팀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