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신창타이’와 ‘이다이이루’에 담긴 의미

[FORTUNE'S EXPERT] 윤창현의 경제전망대

중국이 중속 성장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고속 성장이 끝나고 있음을 인정한 중국이 새로운 중속 성장 시대를 위해 내세운 게 ‘신창타이’와 ‘이다이이루’다. ‘신창타이’은 중국판 뉴노멀(new normal)에 해당하는 단어다. ‘이다이이루’는 ‘하나의 벨트(帶)와 하나의 길(路)’이라는 뜻으로 과거 실크로드를 재현해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실크로드 부흥을 빌미로 아시아를 공략하는 동시에 그 영역을 유럽에까지 넓히겠다는 계산이다.


최근 중국 경제 상황이 급격한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선 지적 가능한 것은 상당기간에 걸친 고속성장 시대가 마감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10%대를 기록하던 연간성장률이 8%대를 지나 7%대 초반으로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20년에는 3%대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도 나오고 있다. 중국도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창타이’라는 어휘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신상태(新狀態)의 중국어 발음이다. 중국판 뉴노멀(new normal)에 해당하는 단어다. 고속성장 시대 마감과 중속성장을 인정하는 의미로 뉴노멀 대신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그동안은 제조업을 통해 고속성장을 이뤄냈지만 이제는 서비스업으로 산업구조가 변해가고 있다. 중국 정부는 고속성장이 어려워지고 중속성장 시대로 이행하고 있음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준비를 촉구하는 의미로 이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다이이루’는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의 중국어 발음을 옮겨놓은 용어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작년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 중앙아시아를 대상으로 제시한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작년 10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동남아시아 및 서남아시아 국가들을 향해 내놓은 ‘21세기 해양 실크로드’를 결합해 새롭게 제시한 개념이다. 실크로드 경제벨트는 교통망 등을 통해 중앙아시아까지 긴밀하게 길을 엮은 뒤 유럽까지 연장하는 전략을 담고 있다. 21세기 해양 실크로드는 중국-동남아-인도양-유럽 국가를 잇는 해상 교역로를 건설하는 구상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하나의 벨트(帶)와 하나의 길(路)’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역사적 배경까지 제시했다. 바로 당나라와 명나라다. 당나라는 육상을 통해 실크로드를 개척했고, 명나라는 해상을 통한 벨트를 만들었다. ‘이다이이루’는 옛 영광을 재현해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이러한 개념을 통해 관련 국을 자국에 우호적으로 만들면서 미국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밝힌 셈이다.

최근에는 이에 대한 후속 조치도 나왔다. 중국이 ‘실크로드 기금’에 400억 달러(43조 8,000억 원)를 먼저 출자하겠다며, 다른 나라들도 참여해 줄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11월 초 북경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비회원 국가 정상들과 함께 ‘연결과 소통, 동반자 관계 강화를 위한 대화’라는 모임을 개최했다. 시 주석이 이 모임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힌 것이다. 중국은 이 기금을 통해 실크로드 주변 국가들의 인프라, 자원개발, 산업협력, 금융협력 등 사업에 대한 투자와 융자를 지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지역이나 업종·사업별 베이비펀드를 조성하는 계획을 밝히며 아시아 역내외 투자자들의 적극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최근 남유럽 국가 기업들에 대한 공격적 인수합병도 시도하고 있다. 재정 위기를 거친 후 회복 중인 이들 국가로 차이나머니가 유입되고 있다. 이 돈이 이들 국가에 도움을 주고 있다 보니 시장에선 중국판 마셜플랜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과거 미국이 무상으로 유럽을 지원한 마셜플랜에 버금가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 유럽 직접투자 규모는 2010년 61억 유로 정도였는데, 2012년에는 270억 유로까지 증가해 4배 이상 늘었다.

예를 들어보자. 중국 국영 전력회사인 국가전력망공사는 지난 7월 21억 유로를 투자해 이탈리아 국영 에너지 수송망 기업인 CDP 레티Reti의 지분 35%를 인수했다. 중국 기업 화웨이 Huawei는 과거 이탈리아 밀라노 외곽에 건립한 연구개발센터 규모를 2017년까지 2배로 늘리고 고용 인력을 1,700명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이 밖에도 지난 3년간 포르투갈 기업들이 매각한 총자산 규모 92억 유로 중 무려 절반에 육박하는 45% 정도가 중국으로 흡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푸싱 Fosun그룹은 올해 초 포르투갈 최대 보험사인 카이사 세구로스 Caixa Seguros의 지분 80%를 10억 유로에 매입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시진핑 주석은 네덜란드와 프랑스, 독일, 벨기에 4개국을 국빈 방문한 바 있다. 중국 국가주석의 독일 방문은 8년 만이었다. 벨기에 방문은 27년 만이었으며 유럽연합(EU) 본부를 방문한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아프리카의 자원과 농업에 투자를 하던 중국이 실크로드 부흥을 빌미로 아시아를 공략하는 동시에, 유럽 재정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그 영역을 유럽으로까지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다양한 해외진출 구상과 계획이 고속성장을 마감하고 중속성장 시대로 이행하는 시점에 나오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여기엔 성장속도 저하에 따라 생길 수 있는 국내소득 정체현상을 해외소득 확보를 통해 일부 상쇄하려는 의도가 있다. 풍부한 외환보유고를 이용해 해외자산을 취득함으로써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미국과 함께 세계 2대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국들에 친중국 정서를 제고시키겠다는 의도, ‘중화’의 영광을 부활시키는 이미지를 통해 중국 국민들의 자긍심을 불러일으켜 지지를 얻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중국이 국가주도의 단순한 해외진출 정책에 문화와 역사 그리고 외교까지 잘 버무려 넣어 일석삼조 혹은 일석 사조의 효과를 내려고 시도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도 좁은 땅덩이 안에서 아옹다옹 하지 말고 밖으로 시원하게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국내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윤창현 원장은…
▲1960년 충북 청주▲1979년 대전고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1993년 미 시카고대 경제학박사 ▲1993~1994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1995~2005년 명지대 경영무역학부 교수 ▲2005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2012년~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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