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인에겐 연말에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매출이나 영업이익으로 성과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치를 세우는 일입니다.
어느덧 12월이 되었습니다. 12월에 연상되는 것들을 나열해 볼까요? 크리스마스, 눈, 구세군 남비, 겨울방학, 군고구마 등 춥지만 따뜻하고 그리운 것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경영을 맡고 있는 분들에겐 회기의 끝, 임원인사, 매출 손익 확인, 내년 경영 목표 같은 어렵고도 딱딱한 것들이 먼저 떠오르시겠죠. 무엇인가 정리하고 가는 시기라는 건 송구영신(送舊迎新)이나 세모(歲暮) 같은 표현과 잘 어울리는 듯싶습니다.
올해 여러분께서는 어떠셨는지요?
우리나라 많은 기업들이 재무제표 회기말을 한해의 끝으로 여기고 있으니 2014년도 성과를 측정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시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때 맞춰 12월에는 대부분 기업들의 임원인사 이동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성과에 비례한 평가가 이동의 기준이 되겠지요. 올해 한국 경제는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서 요동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적이 그리 좋지 않은 큰 상장사 임원들이 올해 말 대거 물러나야 하는 우울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인력이 시장에 나오면 재취업의 확률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역시 인생에서 운이라는 걸 무시하긴 어려운 것인가요?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매출 목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으로 정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표를 제시하는 측에서 더 높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전력을 다하게 만들기 위해 성취가 불가능한 것을 처음부터 준다는 것이겠지요.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110미터를 목표로 해야 끝까지 전력을 다해 뛸 수 있다는 이야기도 이와 비슷한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목표를 받는 사람에겐 전혀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겠지만요.
올해 주식시장의 두 가지 화두는 ‘삼성’과 ‘중국’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 부문의 실적이 예전만 못해진 삼성전자와 중국의 기술약진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국내 산업에 대한 우려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중 FTA까지 발효되는 터라 이제 중국이라는 강력한 변수의 영향을 받는 분야가 한두 군데가 아닐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내년도 계획을 잡을 땐 올해의 성과를 기반으로 성장률을 더하고, 거기에 성장 의지까지 붙여 목표를 잡게 되는데, 문제는 지금 한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어려운 환경이 매우 여러 가지라는 점입니다. 내수가 침체 되고, 인구가 하락하면서 노령화 되고 있고, 자금까지 돌지 않아 체감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1차 베이비 붐 세대가 퇴직을 시작해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돌아서고, 낮은 금리와 정체된 집값 때문에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면서 하우스푸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날이 심화되는 경쟁 사다리는 누구나 올라갈 수 없음에도 내 자식은 포기할 수 없어 에듀푸어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가구당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외부 경쟁력까지 약화되고 있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선진국들의 환율 전쟁에 미국발 금리 인상까지 예측되는 상황이니 미래 예측은커녕 오늘의 대응조차도 너무나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러한 혼란기에 다시 연말을 맞이하는 여러분들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계신가요? 혹시 아직까지도 숫자로만 된 우리 회사의 매출과 이익 목표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계신가요? 만약 여러분의 회사에 성과를 매출과 이익으로만 측정하는 관행이 있다면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매출은 목표가 아니라 ‘가치’를 주면 얻게 되는 트로피와 같습니다. 만약 매출만이 목표라면 고객에게 좋지 않은 물건을 강제로 떠맡기거나 속여서 팔아도 됩니다. 그렇게 하면 순간적인 매출은 오를 수 있지만 두 번 속지 않는 소비자에게 외면당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상태로 빠질 수 있습니다. 올해 매출이 모자란다고 가격할인과 프로모션을 통해 부족분을 채운다면, 그 다음부터 고객들은 학습효과 때문에 정가에 물건을 사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연말 세일을 기다리며 구매를 미루게 될 테지요. 그려면 내년도 실적은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빠진 실적보다 더욱 무서운 건 우리 회사의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가 낮아져 가장 큰 자산인 브랜드의 힘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신용을 팔아 순간적인 매출을 얻는다는 건 아랫돌을 빼내어 윗돌을 괴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가업으로 이어온 비즈니스라면 신용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재산을 잃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돈은 때로 잃고 때로 얻을 수도 있지만, 세월과 평판은 한 번 잃으면 다시 얻을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단순한 이치입니다.
이젠 매출과 손익만이 아닌, 비즈니스가 바라보는 ‘사람’과 그들에게 전달하는 ‘가치’를 평가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할 때입니다. 지속 가능하다는 건 무리하지 않는 것, 무리하지 않는다는 건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는 것입니다. 한 가구당 1.2명 이하의 아이를 낳고 있는 우리 한국은 이제 전체 인구와 GDP 모두를 순식간에 늘리기 어렵습니다. 수십 년 동안 안정화된 경제 시스템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한다는 건 기존 이해당사자들의 균형을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바늘 구멍 하나 꽂을 데가 없는 곳이 이미 개발된 국가’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환경에 중국이라는 큰 변수가 더해집니다. 여태껏 우리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큰 흑자를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축적한 기술과 상품 디자인의 비교우위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인건비 경쟁력을 무기로 하는 산업은 중국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어려운 한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교훈은 이미 근대화와 산업화를 몇 번 거친 유럽의 나라들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최저 근로시간에 가장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는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는 근본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들을 없애거나 고급화해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일을 찾았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전환에 기업가정신(Entrepreneur)과 자본의 선행적 투자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저임금 산업구조를 무리하게 끌고 간다면, 우리는 미래의 먹거리를 준비할 기회를 그 만큼 잃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경쟁력을 얻을 기회가 사라진 국민들이 훗날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계층으로 전락하는 ‘기술 실업’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이엔드 산업과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로우엔드 산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 문제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하이엔드 산업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합니다. 그리고 빨리 적응하는 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고 오히려 선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21세기에 적응하는 워밍업 시간을 충분히 가진 듯합니다. 새해에는 매출과 손익 같은 익숙한 것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기준인 ‘가치’를 중심으로 다시 시작해 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물론 그 ‘가치’의 지향점에는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송길영 부사장은 사람의 마음을 캐는 Mind Miner이다. 소셜 빅데이터에서 인간의 마음을 읽고 해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나아가 여기에서 얻은 다양한 이해를 여러 영역에 전달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활자를 끊임없이 읽는 잡식성 독자이며, 이종(異種)의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저서로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빅데이터에서 찾아낸 70억 욕망의 지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