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함이 필요했습니다. 과거의 실패를 단순히 교훈으로만 삼아선 성공을 이룰 수 없죠. 또다시 실패하지 않겠다는 절실함과 죽을 각오로 도전하는 것만이 벤처의 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수많은 벤처회사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한 번 실패해 좌절하면 두 번째 도전은 자연히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모바일 기반 웹소설 콘텐츠 서비스 북팔의 김형석 대표는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절실함과 죽을 각오로 또다시 도전했다. 그리고 북팔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던 국내 모바일 웹소설 시장에서 당당히 1등 스타트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웹소설 신진작가들의 등용문으로 떠오르고 있는 북팔의 김형석 대표를 만나 그가 펼쳐온 사업 스토리를 들어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김태환 marunee0@gmail.com
지난 11월 초, 서울 마포구에 있는 북팔 사무실을 방문했다. 기자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로 가득 찬 사무실은 마치 감수성 가득한 10대 소녀의 방을 연상시켰다. 김형석 북팔 대표는 말한다. “북팔에서 서비스되는 웹소설의 상당수는 로맨스 장르입니다. 자연스레 20대 이상 여성들이 많이 찾고 있죠. 특히 로맨스 소설에 푹 빠져 학창시절을 보낸 40대 여성들이 북팔을 통해 잠시 잊고 살았던 감수성을 찾게 된다고들 합니다.”
북팔(Bookpal)은 이처럼 웹소설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책(book) + 친구(pal)라는 의미인 북팔을 통해 누구나 다양한 콘텐츠의 소비자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창작자도 될 수 있다.
북팔은 현재 작가 발굴부터 육성, 에이전시 역할까지 창작자 매니지먼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비스 시작 2년여 만에 2,500명이 넘는 작가들이 북팔을 통해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웹소설 ‘사상 최고의 그놈’의 작가 ‘꿈꾸는 이’, ‘연애의 은밀한 법칙’의 작가 ‘oz’ 등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작가들은 월 최대 2,000만 원가량의 수익을 거둬들이기도 했다.
북팔의 이 같은 성공에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웹소설 사업을 이끌어 간 김형석 대표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사실 김 대표는 대다수 스타트업 창업자와는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왔다. 원래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그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발전소를 비롯한 공장의 설계를 담당하는 회사였다. 그리고 이후 17년 동안 ‘월급쟁이’로 살았다. 대다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IT 쪽에 조예가 깊었던 것과는 달리, 그는 IT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말한다. “17년 동안 월급쟁이로 살다 보니 회사에서 저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알겠더라고요. 그저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적 업무뿐이었죠. 뭔가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창업이라는 기회가 찾아오게 된 거죠.” 김 대표는 블로거들의 포스팅을 활용한 새로운 콘텐츠에 주목했다. 그리고 2007년 유용한 정보가 담긴 블로그 포스팅을 모아 유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야심차게 시작한 첫 사업이 그에게 안겨다 준 건 ‘성공’이 아닌 ‘빈 지갑’뿐이었다.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다. 블로그 포스팅을 유통하고 거기에 광고를 붙여 수익을 내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계산은 계산일 뿐. 수익모델 부재에 허덕이며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말한다. “사업을 끝낸 건 돈 때문이었습니다. 수익이 없으니 더 이상 사업을 꾸려나갈 여력이 없어졌던 거였죠. 결국 다시 평범한 직장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보대행사로 자리를 옮겨 다시 월급쟁이로 돌아갔지만 김 대표의 마음은 여전히 뜨거웠다. 어떻게든 창업을 통해 성공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2010년, 국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스마트폰이 창업에 대한 김 대표의 도전 의지를 다시금 끓어오르게 했다. “스마트폰은 콘텐츠 플랫폼을 활용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전자책 시장에 주목했어요. 당시 종이책은 사양산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죠. 블로그 포스팅이 아닌 웹소설을 통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고, 그 시장을 선점하면 분명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우선 자금이 필요했다. 카드대출로 1,000만 원을 마련했다. 그리고 무작정 현재의 ‘북팔’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해 줄 개발자를 만났다. 그는 말을 이었다. “당시 개발자가 요구한 금액은 1,200만 원이었습니다. 1,000만 원을 다 써도 200만 원이 부족했죠. 일단 선수금으로 600만 원을 준 뒤, 향후 수익이 발생하면 그때 나머지 잔금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렇게 개발을 완료해 약 6개월간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수익은 발생하지 않았다. 직원들 월급은 둘째 치고, 개발자에게 약속한 잔금 600만 원을 갚을 방법조차 없었다. 머릿속에 ‘실패’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였다. 김 대표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투자를 하고 싶다며 만나자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정신 나간 사람’ 아닌가 싶었습니다. 생면부지인 사람이 투자를 하겠다니 사기꾼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죠.(웃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만난 그 낯선 사람은 놀랍게도 3,000만 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김 대표가 블로그 포스팅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콘텐츠 유통시장의 가능성을 봤다고 말한 그 투자자는 ‘잃는 셈 치고 투자하겠다’며 선뜻 3,000만 원을 내밀었다. 김 대표는 말한다. “투자자랑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설사 돈을 못 갚아도 집에 찾아오는 일은 없도록 해달라는 거였죠. 그랬더니 그 분도 조건 하나를 내걸더군요. 앞으로 북팔이 성공해서 또 다른 투자를 받아도 자신보다 나은 보상안을 약속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당연히 오케이를 외치고 투자금을 받았습니다.”
김 대표는 3,000만원으로 아이폰에 이어 안드로이드 앱 개발에도 나섰다. 그리고 안드로이드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앱 다운로드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초기 시장 선점에 성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자금’ 문제가 계속 애를 먹였다. 수차례 벤처캐피탈(VC)을 찾아 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불확실한 웹소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투자의 발목을 잡기 일쑤였다. 문제는 ‘성과의 부재’였다.
“VC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과연 ‘웹소설을 돈 주고 볼까’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웹소설의 유료화는 성공 가능성 0%에 가깝다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었죠. 그래서 저희는 우선 눈에 띌 만큼의 성과를 낸 다음, 다시 투자유치를 의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선 김 대표는 유능한 작가를 모으는 데 주력했다. 당시만 해도 수많은 웹소설 작가들은 주요 포털 사이트의 웹소설 서비스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하다 보니 신진작가들의 웹소설은 작품의 홍수 속에서 큰 빛을 보지 못했다. 북팔은 신진작가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방식의 지원과 관리방침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가들이 오로지 ‘소설 집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했다. 홍보, 마케팅 등 신진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은 북팔에서 담당하겠다고 약속했다.
북팔을 통해 ‘창작의 공간’을 마련한 작가들은 거침없이 양질의 콘텐츠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유의미한 매출 실적도 그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3년 상반기 1억8,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북팔은 올해 상반기에만 매출 10억 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5배 이상 증가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하반기 들어 월 매출 4억 원대를 기록하고 있는 북팔은 올해 총 35억 원 상당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료 아니면 실패’라는 평가를 받아온 웹소설 시장에서 극적인 반전에 성공한 것이었다.
북팔은 이러한 성장세에 힘입어 해외시장 진출도 목전에 두고 있다. 현재 동남아 시장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웹소설 시장에까지 접목시키겠다는 것이다. 북팔은 ‘한류소설’이라는 테마로 중화권과 동남아 시장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김형석 대표에게 북팔 창업은 실패와 도전, 그리고 성공이라는 값진 열매를 안겨다 주었다. 그에게 북팔, 그리고 스타트업 창업은 어떤 의미일까? 김 대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빨리 끝내고 싶은 인생의 숙제”라고 말했다. “대다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20대의 팔팔한 청년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곧 50대에 접어드는 아저씨예요. 가끔은 이런 역동적인 일이 조금은 버겁고 힘들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젠 북팔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거나 성장 동력을 만드는 일이 제가 이곳에서 해야 할 마지막 남은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숙제를 다 하면, 누군가에게 이 일을 넘겨주고 뒤에서 후배들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저도 이제 좀 쉬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