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아마존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성공하기

[VENTURE] HOW I GOT STARTED 나는 이렇게 시작했다<br>Thriving in an Amazon World

샤론 앤더슨 라이트 Sharon Anderson Wright가 반값 도서로 업계 트렌드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Interview by Dinah Eng


누가 샤론 앤더슨 라이트에게 도서판매가 사양산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하프 프라이스 북스 Half Price Books의 CEO 샤론(56)은 어머니가 공동 설립자로 참여한 중고책 서점사업-빨래방이었던 칙칙한 공간에서 중고 페이퍼백과 하드카피를 판매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을 알짜 프랜차이즈 서점으로 키워내며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은 트렌드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전국에서 서점들이 문을 닫고 있고, 지난 3년간 도서업계 매출이 연 평균 3.2%씩 줄었지만 하프 프라이스 북스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매년 5개의 신규매장이 문을 열고 있으며, 1995년부터 2013년까지 매출도 5,000만 달러에서 2억 4,000만 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판매 상품을 다양화하고, 매장 내 다양한 고객 경험을 제공하면서 아마존닷컴이라는 쓰나미를 견디고 있다. 동시에 부동산 비용을 최소화하고, 16개 주에서 12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면서도 무차입(debt-free) 경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신문을 제외하고 모든 출판물(혹은 녹음물)을 구입하겠다’는 설립 초기의 약속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이 같은 정책 덕분에 고객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하프 프라이스 북스를 다시 찾고 있다.

나는 털사 Tulsa 카운티에서 태어났고, 세 딸 중 막내였다. 다섯 살 때 텍사스로 이주했고, 아버지는 뻐꾸기시계 외판일을 시작했다. 1968년 어머니(팻 앤더슨 Pat Anderson)는 심리학 학위를 받기로 결심했다. 우리 가족은 켄 짐리 Ken Gjemere(아버지가 거래하던 보석업체 제일스 Zales의 바이어)의 가족과 자주 어울리곤 했다.

켄은 용맹 군인에게 수여되는 ‘은성 훈장(Silver Star)’을 받은 2차대전 참전 용사였다. 베트남전쟁 중에는 환경 운동가 및 평화 운동가로 활동했다. 나는 늘 그를 용맹한 우리의 리더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반항적 히피 같은 분이셨다. 켄과 어머니는 모두 책과 재활용품을 사랑했다. 켄과 어머니가 각자의 배우자와 별거하게 된 후 둘은 거의 커플처럼 지냈다. 1972년 둘은 함께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서점을 차렸다. 재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와 켄은 매주 화요일에 만나 한 주의 며칠을 함께 보냈다. 그들은 댈러스 러버스 레인 Lovers Lane에서 2,000평방 피트(50여 평) 크기의 상가를 찾아냈다. 낡은 빨래방으로 사용됐던 그곳의 월세는 174달러였다. 우리는 깨끗이 청소를 하고, 책장을 넣고, 페인트칠도 했다. 화장실 변기도 고치고, 트럭에 짐을 싣는 등 모든 준비를 마쳤다.

10대 소녀였던 나는 커트 보네거트 Kurt Vonnegut, 로버트 하인라인 Robert Heinlein 등이 쓴 공상과학 소설을 즐겨 읽었다. 당시 13세였던 내 임무는 책들을 정리해 책장에 꽂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고 팔고사는지 관찰하며 나름의 인류학 공부도 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서점이 많지 않았다. 우리 서점은 독창적인 콘셉트를 갖고 있었다. 어머니와 켄은 편안하고 쇼핑하기 좋은 공간에서 다양한 책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싶어했다. 손님들이 가져 온 책은 뭐든 매입했다. 검열절차 따위는 없었다. 어제 나온 신문을 제외하곤 모든 출판물과 녹음물을 매입했다. 때문에 최신 서적도 판매할 수 있었다. 우리는 헌책을 다른 헌책으로 바꿔주는 기존 헌책방과 달랐고, 위화감이 드는 고급 고서전문 서점과도 달랐다. 사업은 무척 잘 됐다. 8개월 만에 정육 창고였던 상가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헌 책값을 지불할 현금을 수중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현금이 없네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와 켄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검소한 생활 덕분에 어려움을 겪진 않았던 것 같다. 식사도 통조림 라비올리나 햄버거 캐서롤 등으로 저렴하게 해결했다. 1976년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텍사스 리처드슨 Richardson 지점 매니저가 되었다. 대부분 서점 안에는 나와 애완견 딜런 Dylan 둘뿐이었다. 밥을 먹으러 나갈 때면 책장 뒤 커피 캔 안에 현금을 숨겨두곤 했다. 우린 음악 섹션을 채우기 위해 축음기 음반, 8트랙 카세트 테이프, 비틀즈 LP 음반 등을 매입했다. 지금은 고급 LP부터 아이패드 iPad 등도 취급하고 있다. 현재 이사회 회장은 큰언니 엘런 Ellen이고, 그녀의 두 자녀들도 하프 프라이스 북스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일주일에 네 번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리치랜드 전문대학교(Richland Junior College)를 다녔다. 사실 그만한 조건도 없었기에 결국 하프 프라이스 북스에 남게 됐다. 댈러스 지역 매니저로 시작해 1990년에는 총지배인으로 승진했고, 그 후에도 그림자처럼 어머니를 보좌했다. 우리 모녀는 거의 매일을 함께 보냈다. 흡연자였던 어머니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는 정말 많이 힘들어하셨다. 모두 머지않아 어머니와 작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켄은 일선에서 물러났고, 내가 사장 겸 CEO자리를 물려 받았다. 1995년 당시 37세였던 나는 앞으로 나에게 닥칠 일이 너무 두려웠다. 어머니는 1972년 40세에 첫 서점을 오픈했었다.

어머니는 모든 장부를 수기로 작성했다. 봉투와 작은 노트에 모든 것을 기록했다. 내게 회계장부 작성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1995년 당시 55개 지점은 총 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정식으로 회계를 배우진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친절히 알려주었다. 오랫동안 하프 프라이스 북스에서 일해 온 직원들도 내게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업본부장과 최고재무책임자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분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나는 언제나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움직였다. 사람들은 필요한 일을 했고, 나는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을 배워나갔다. 우리 회사는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만 했다. 보유현금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사업을 운영했다.

나는 40세에 첫 아이를 낳았고, 43세에 둘째를 가졌다. 아이들이 최우선 순위였기 때문에 새벽 1~2시가 돼서야 업무 관련 이메일 답장을 보낸 경우도 허다했다. 지금 우린 회사 자체 출판부를 가지고 있 있다.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문구, 달력, CD 케이스 등을 제작·판매한다. 도매부서는 박물관, 개별 서점, 그리고 반스 앤드 노블 Barnes & Noble 같은 체인서점에 우리 물건을 판매한다. 전국을 순회하는 바이어도 5~6명 정도 된다. 그들은 반값에 판매할 재고품을 매입한다. 매입한 책이 너무 많을 경우에는 여분을 반스 앤드 노블이나 다른 서점에 다시 판매한다. 도서업계의 모든 주체는 서로서로 의지한다. 경쟁은 있지만 늘 좋은 사람들과의 경쟁이다.

아마존 Amazon과 전자책 리더기, 태블릿 때문에 도서업계에선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오프라인 서점들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제 잠옷 차림으로도 읽고 싶은 책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점은 사람들의 독서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서점을 둘러보며 직접 책을 찾는 것을 즐거워하고, 종이 책을 선호한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우리 회사가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우리 고객들은 1년에 37권의 책을 산다. 경기 침체 동안 3개 지점이 문을 닫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보험료 및 부동산 비용의 가파른 증가는 심각한 문제다. 우린 새로운 지점을 열고 사업을 확장하면서 전반적인 최저 임금도 10달러로 높였고, 양질의 복지혜택 제공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때문에 우리 매장의 넓이는 대부분 8,000~1만 평방피트 정도에 머물고 있다. 대형 서점에 비해 공간이 협소하지만, 임대료 지출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우리 회사는 비공개 기업이기 때문에 주주들의 질문에 답할 필요 없이 우리만의 속도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또 기존 서점들과 차별화된 재고관리 방식으로 저렴한 재고관리 비용을 자랑하고 있다. 단순한 서점을 넘어 음반매장, 고서점, 만화 서점의 역할도 하고 있다.

투자를 약속하며 프렌차이즈나 파트너십을 제안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어떤 이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체인 서점 보더스 Borders는 높은 임대료, 신간도서 매출부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반스 앤드 노블도 전자책 리더 누크 Nook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우리는 느리지만 꾸준한 거북이처럼 사업을 운영했다. 얼마 전 세인트 루이스 지점을 열었고, 애틀랜타, 덴버, 내슈빌 등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자금사정이 허락한다면 이들 지역에 신규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나에게도 비전에 대해 불안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14년 전 댈러스 중심가에 12에이커 부지를 매입해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와 사옥을 짓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비용 부담이 큰 대형계획이었지만 매장과 연결된 사옥을 지어야 한다는 내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야만 경영진이 다른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매일같이 직원들이 책을 묶고 옮기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고객과 소통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사옥은 물류센터 외에도 ‘우드쇼페’ Woodshoppe라는 책장 및 설비 제작 시설도 갖추고 있다. 우리 매장은 모두 기존 건물에 입점한다. 어떤 구조의 건물에 입점하게 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유연하게 인테리어를 하고 관련 비용을 절감하는 데 우드쇼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플래그십 매장과 사옥, 그리고 주변 부지가 우리가 소유한 유일한 부동산이다. 그곳이 우리가 주변시설에 대한 선택권을 가진 유일한 장소다. 사옥 주변을 발전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반대편 부지도 매입했다. 현재 하프 프라이스 북스 옆에는 유기농 식품매장 홀푸드 Whole Foods가 위치해 있다. 길 건너편에 아웃도어 브랜드 REI처럼 뜻이 같은 기업 매장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REI 시애틀 지점을 찾아가 매장을 우리 사옥 반대편으로 옮기도록 설득했다. 단순히 선착순으로 임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장들을 세심하게 고르고 있다.

회사를 팔았다면 몇 배는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생한 직원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추진한다. 내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한다.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직장을 제공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수백만 권의 책을 기부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이 일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리더들에게 추천하는 필독서 3권
(그리고 그 책에서 얻는 교훈들)

샤론 앤더슨 라이트
하프 프라이스 북스 사장 겸 CEO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저
▶ 직감을 믿어라
▶ 직원들의 자질과 역량을 기대하라
▶ 잡스처럼 못되고 까다롭게 굴지 마라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저
▶ 반대가 있어도 신념을 지켜라
▶ 겉모습이나 세간의 평판으로 타인을 판단하지 마라
▶ 미친개가 집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라

괴물들이 사는 나라 모리스 센닥 저
▶ 모험을 즐겨라
▶ 새로운 생명체를 만나면 눈을 바라보라
▶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마라

“어머니는 모든 장부를 수기로 작성했다. 봉투와 작은 노트에 모든 것을 기록했다. 회계는 무척 어려웠다.”
-샤론 앤더슨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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