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그리스 사태의 본질과 전망

[FORTUNE'S EXPERT] 윤창현의 글로벌전망대

경상수지 적자에 허덕이다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가 유로존 탈퇴를 외치고 있다. 유로존에 묶여 스스로 돈을 찍어내지 못하는 그리스는 해외에서 돈을 빌려 쓰기 시작하면서 국가채무가 급격히 팽창했다. 그리스의 상황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기축통화를 발행하지 못하는 우리는 경상수지 흑자기조와 충분한 외환 보유고 축적을 기반으로 대외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가야 한다.


2000년대 초반 출범한 유로화는 일단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17개국이 같은 돈을 쓴다는 전략은 소위 최적통화지역 이론에서 출발해 유럽에서 결실을 맺었다.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교수가 1961년 발간한 논문이 계기가 되었다. 여러 나라가 같은 돈을 사용하면 환율이 필요 없어져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이 나타난다. 일단 국내 통화와 해외 통화가 같아지면서 엄청난 비용이 절약된다. 사실 환율 변동으로 인해 기업을 포함한 경제주체들은 상당한 잠재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기업활동 가운데 환율 움직임에 대비하는 헤징 전략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당연히 이 같은 비용이 감소하는 것은 경제 주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유로화 출범으로 많은 나라가 이익을 보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익을 본 국가는 독일이었다. 통일 후유증에 시달리며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은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유로화 출범과 함께 독일 경제에 일대 전환기가 찾아왔다. 당시 슈뢰더 총리가 이끌던 독일은 폭스바겐의 인사담당 임원이었던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한 위원회(하르츠 위원회)를 통해 노동 개혁을 실행했다. 노동개혁이 문제가 되어 슈뢰더 총리는 다음 선거에서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개혁을 통해 고용이 유연화되고 노동생산비가 낮아지면서 독일의 수출 경쟁력이 제고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질 좋은 제품을 값싸게 생산하게 되면서 독일제품의 인기가 맞이했다. 독일은 유로존에서 수출경쟁력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면서 경상수지 흑자국으로 돌아서게 되었고, 결국 2000년대 초반 GDP 대비 경상수지흑자 규모 비율의 평균치가 3%에 달하는 등 유로화 출범 최대수혜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문제는 남유럽국가들이었다. 특히 그리스의 경우 만성적인 경상수지적자를 기록하면서 GDP 대비 경상수지적자 비율의 평균값이 8%에 달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만일 그리스가 드라크마(그리스의 화폐 단위)를 사용했다면 이 같은 거대한 규모의 무역적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드라크마 환율이 평가절하되면서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같은 유로화를 사용하다 보니 해외에서 수입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자국이 사용하는 돈과 국제통화가 일치한다는 점을 즐기면서 이것이 가져오는 부작용에 대해선 무심했던 것이다.

그 결과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그리스의 유로화는 계속 해외로 빠져나갔다. 그리스는 독자적으로 유로화를 발행할 수 없었다. 유로화를 쓰는 건 가능했지만 유로화를 발행하는 건 유럽중앙은행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리스 내부에 유로화가 부족해져도 이를 발행할 방법이 없다. 그리스 정부는 이렇게 모자란 유로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에서 유로화를 빌려왔다. 당장은 돈이 풀리니 경기가 위축되지 않고 유지되었지만 결국 국가채무가 급격히 늘어나 버렸다. 글로벌 위기가 유럽 재정위기로 연결된 데에는 이처럼 다 이유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리스는 ‘내적 평가절하’를 단행했어야 했다. 경상수지 적자로 유로화가 그리스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국내통화량이 줄어들었을 때, 이를 그대로 두었다면 국내에서 물가와 임금이 하락하면서 디플레와 불황이 나타났을 것이다. 물론 이는 엄청난 고통이다. 그런데 물가와 임금이 하락하는 고통을 감내했다면 그리스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생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내적 평가절하다. 게다가 불황이 오면 소득이 늘어나지 않아 해외로부터의 수입도 줄어든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이 지속 되면 경상수지가 균형 혹은 흑자로 돌아서면서 해외로 나갔던 돈이 다시 국내로 유입되고 문제가 풀리기 시작할 수 있다. 때문에 내적 평가절하를 통한 조정이야말로 고통스럽지만 유일하고 분명한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국가부채에 의존하지 않게 되니 위기가 올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그리스는 쉬운 길을 택했다. 정부가 해외에서 유로화 부채를 끌어와서 국내에 살포했다. 결국 국가 부채가 쌓이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어찌 보면 위기를 자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는 위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2,400억 유로에 달하는 엄청난 금융 지원을 받았다. EU와 유럽중앙은행, 그리고 IMF가 트로이카로 나섰다(우리나라 외환위기 때 IMF가 보여준 저승사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최근 그리스에 대한 IMF의 접근 방식은 실로 천양지차가 아닐 수 없다. 같은 조직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런데 최근 그리스에서 흥미로운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다. 빚 탕감을 요구하는 ‘시리자’라는 정당(그리스 야당)이 인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정치 지형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시리자의 당수 치프라스가 존경하는 인물은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다. 또 그는 둘째 아들의 중간이름을 좌파 혁명가 체게바라의 본명인 에르네스토로 붙이기도 했다. 그의 성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선거를 통해 시리자가 집권을 하면 그리스가 어떠한 방향으로 갈지 대충 짐작이 간다. 물론 최근에 와서 그의 입장이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있지만 그리 큰 변화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는 자꾸만 쉬운 길로 가고 있다. 그리스가 현재 쥐고 있는 무기는 유로존에서 탈퇴하겠다는 ‘그렉시트(그리스(Greece)와 탈출(Exit)의 합성어)’ 으름장이다. 유로존의 중심국가인 독일을 압박하는 것이다. 독일이 유로화 출범을 통해 이익을 본 건 사실이지만, 이는 독일 국민들이 열심히 일해서 만든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다른 나라들이 사들인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흑자를 내고 돈을 번 것이지 다른 나라에서 약탈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물론 유럽합중국이 있었더라면 부드러운 조정이 가능했겠지만, 불행하게도 유럽합중국 없이 유로가 성급히 출범하면서 문제가 꼬인 측면도 있다.

국가 간 문제에 있어 민주주의 국가끼리 합의에 이르는 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다. 독일이 당분간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용인하지 않고 도움을 주는 쪽으로 갈 수 있겠지만 이런 위협이 반복된다면 결국 결단을 내리는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세계 금융시장은 등락을 반복하면서 춤을 춰야 할 것이다.

기축통화를 발행하지 못하는 우리 경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체력을 기르고 안전 벨트를 단단히 매는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기조와 충분한 외환 보유고의 축적을 기반으로 대외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면서 이러한 역할을 도맡아 하는 우리 기업들을 다독이고 힘을 북돋아 줄 필요가 있다. 기업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임을 명심해야 한다. 때문에 기업의 기를 살려 대외경쟁력을 유지하고 제고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조치를 강구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지금은 사고가 발생해도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안전 벨트를 단단히 매야 할 때이다.


윤창현 원장은…
▲1960년 충북 청주▲1979년 대전고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1993년 미시카고대 경제학박사 ▲1993~1994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1995~2005년 명지대 경영무역학부 교수 ▲2005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2012년~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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