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면세점의 성장세가 무섭다. 지난해에는 국내 면세점 시장점유율이 53%까지 치솟기도 했다. 현재 세계 4위를 수성하고 있는 롯데면세점은 2018년까지 글로벌 톱2 면세점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선 롯데면세점의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쉽게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지난해 국내 판매액 1위 유통 점포가 바뀌었다. 줄곧 1위 자리를 수성해왔던 롯데백화점 본점이 밀려나고 롯데면세점 본점이 대신 왕좌에 올랐다. 롯데 백화점 본점은 1979년 12월 개장 이후 1980년부터 2013년까지 34년간이나 국내 판매액 1위 유통 점포 타이틀을 지켜왔지만, 최근 백화점 시장의 부진과 면세점 시장의 눈부신 성장이 맞물리면서 왕좌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롯데백화점 본점의 판매액은 1조 8,000억 원으로 전년도인 2013년에서 제자리걸음을 했으나, 롯데면세점 본점의 판매액은 전년보다 4,000억 원 늘어난 1조 9,000억 원을 기록해 대조를 이뤘다.
두 점포의 위치와 크기를 비교해보면 여러 가지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과 롯데면세점 본점은 서울 중구 소공동에 함께 위치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롯데면세점 본점이 소공동 롯데백화점 건물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롯데면세점 본점은 소공동 롯데백화점의 9, 10, 11 세 개 층을 사용 중이다. 전체 점포 면적이 백화점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상품 구성 면에서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품목이 적다. 하지만 롯데면세점 본점은 ‘듀티 프리 Duty Free’라는 가격 메리트 덕분에 중국인 관광객들을 대거 흡수, 골리앗 롯데백화점 본점을 끌어내리고 판매액 1위 유통점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면세점 시장 5년 새 2배 이상 커져
지난 몇 년간 국내 면세점 시장은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 한국면세점협회 자료에 따르면, 2009년 3조 8,523억 원이었던 국내 면세점 시장 규모는 지난해 8조 3,077억 원까지 늘어났다. 5년 만에 2.2배 이상 시장 규모가 커진 셈이다. 2012년 국내 면세점 시장 규모가 6조 원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영국과 중국을 제치고 세계 면세점 시장 1위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그 격차를 더욱 벌려 면세점 시장 부동의 1위로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이렇듯 국내 면세점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큰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 관광객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2%씩 늘어 지난해에는 1,4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국내 면세점 외국인 매출도 꾸준히 늘어났다.
2009년 15억 9,270만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54억 5,140만 달러로 3.4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면세점 시장의 성장이 2.2배인 것을 고려하면 외국인 매출 증가가 국내 면세점 시장 성장에 큰 원동력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전체 면세점 매출에서 외국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52.5%에서 2014년 69.0%까지 늘어났다.
시장 성장치 웃돈 롯데면세점
같은 기간 롯데면세점 역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2009년 1조 3,955억 원이던 롯데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4조 원까지 성장했다. 5년 동안 2.9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국내 면세점 시장 성장률인 2.2배 보다 훨씬 빨리 매출을 키운 셈이다.
그 결과 롯데면세점의 시장점유율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9년 43%를 기록했던 국내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3분기에는 53%까지 치솟았다. 국내 면세점 업계 2위인 신라면세점의 시장점유율이 30%대 초반임을 고려하면 롯데면세점은 사실상 시장 지배적인 위치에 올라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롯데면세점은 세계 면세점 순위에서도 DFS, 듀프리 Dufry, 하이네만 Heinemann에 이어 글로벌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물론 롯데면세점의 성장 역시 외국인 관광객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중에서 도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의 영향력이 컸다. 롯데면세점 중국인 매출은 2013년까지만 해도 45%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지난해부터는 50% 이상으로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업계에선 올해 이 같은 중국인 매출 비중이 60%에 이를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면세점 업계에서는 중국인 관광객 한 명의 평균 쇼핑 금액이 전체 외국인 관광객 평균의 4배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면세점들이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외 시내면세점 출점에 주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 면세점 기업들은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에 해외 점포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롯데면세점 역시 마찬가지다. 롯데면세점은 현재 해외 면세점 3곳을 추가로 더 확보할 예정인데, 일본과 싱가포르, 괌 등을 물망에 올려놓고 있다. 일본은 이미 TF 팀을 꾸려 운용 중이고 싱가포르는 부지 확보를 끝마친 상태다.
롯데면세점이 계획하고 있는 이들 점포에겐 특징적인 면이 하나 있다. 모두 시내면세점으로 기획됐다는 점이다. 롯데면세점은 공항면세점으론 이미 이들 세 지역에 출점을 마친 상태다. 하지만 공항면세점이 시내면세점보다 수익 면에서 훨씬 열악한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롯데면세점은 오래전부터 이들 지역의 시내면세점 확보에 공을 들여왔다.
국내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공항면세점은 정기적으로 입찰해 매번 사업자 선정을 새로 합니다. 이를 통해 기존 사업자의 사업권이 갱신되든가 바뀌든가 하죠. 이런 시스템은 면세점 업체에겐 참 고역입니다. 사업기간 동안 열심히 잘 닦아놓은 매장이라도 다음번 입찰에서 떨어지면 무용지물이 되고 말거든요. 공항면세점은 수익성도 극히 낮습니다. 입찰에 성공하기 위해선 운용사인 공항사의 입맛에 맞게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최대한 많이 퍼주는 수밖에 없어요. 면세점 기업들이 전부 시내면세점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상징성 때문에 공항면세점에는 홍보 정도만 의미를 두고 있어요.”
간사이공항점은 전략적 선택
롯데면세점은 현재 6개 해외 점포를 운영 중이다. 2012년 인도네시아 수카르노하타공항점을 개점하면서 해외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같은 해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두 개 점포를 추가로 출점시켰고, 2013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면세점과 미국 괌 공항점을 잇달아 열며 해외사업 확장에 잰걸음을 보였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9월에는 일본 간사이공항점을 개점하며 진입 장벽이 큰 일본시장에 진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하지만 일본 간사이공항점 개점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장 의견도 많았다. 안 그래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공항면세점인데다 간사이공항은 중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적은 오사카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공항면세점 특유의 박리다매도 안 되는 점포라는 평가도 있었다.
롯데면세점 측은 간사이공항점 출점이 일본 시내면세점 진출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항변한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말한다. “대부분 국가에선 해외 사업자들한테 시내면세점 운영권을 잘 내주지 않습니다. 이들 국가에 시내면세점을 출점시키려려면 해당 국가 기업의 지원을 받거나 공동 운영 등의 방법을 써야 하는데, 때마침 필요한 시기에 간사이공항 운영사인 KIXX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롯데면세점은 그 손을 잡은 거고요. 간사이공항점은 KIXX와의 유대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는 이유
일본은 우리나라와 면세점 사업 환경이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유통사업자가 면세점 사업을 하지만 일본에서는 공항사업자가 한다. 하네다공항을 운영하는 JAT Co.나 나리타공항을 운영하는 NAA가 일찌감치 DFS 등 세계 유명 면세점 업체들과 제휴해 면세점 사업에 전략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면세점 사업에 진출한 KIXX는 이 같은 경험이 없어 글로벌 4위이자 일본에서도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롯데면세점에 파트너 요청을 보낸 것이다.
롯데면세점은 KIXX의 지원을 받아 이른 시일 내에 일본 도쿄에 시내면세점을 열 계획이다. 이미 긴자거리에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픽업 데스크 역할을 할 도쿄 하네다공항 및 나리타공항과 면세물 수취 인도 수수료 협상도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다.
롯데면세점이 유독 일본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까닭은 일본을 관광하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최근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 이전 개장을 목표로 도쿄 오다이바 지구에 마이스 복합리조트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복합리조트에는 카지노, 호텔, 컨벤션센터 등이 들어서 향후 중국 관광객이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롯데면세점이 도쿄 긴자거리에 시내면세점 출점 계획을 세운 것도 이 지역이 오다이바 지구와 가까워 향후 중국인 관광객 증가의 혜택을 크게 볼 수 있으리란 전망 때문이다.
지나친 중국 의존도는 독?
유통업계에선 중국인 관광객 매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롯데면세점 사업구조를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실제로도 롯데면세점 사업의 대부분은 중국인 소비자를 잡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롯데면세점의 가장 큰 리스크는 중국 기업이나 정부의 태도 변화입니다. 중국 공항도 엄청나게 크고 좋잖아요. 중국이 거기에 우리 면세점만큼 상품을 소싱해 가져다 놓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있죠. 중국이 자국에 면세점 형태의 인프라를 갖춰 놓고 출국 때 돈을 다 써버리게 유도하면 롯데면세점을 비롯한 우리나라 면세점들은 사실상 답이 없어요.”
시장에선 이 같은 시선이 과도한 우려라는 인식도 강하다. 지인혜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해 시장을 많이 손보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쇼핑 목적의 관광객 수가 줄어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짝퉁 같은 것들 때문에 자국 유통 상품에 대한 중국인들의 신뢰도가 낮은 데다가 ‘쇼핑은 한국’이라는 인식이 강하거든요. 중국에서 규제 일부가 시행된 후에도 국내 면세점 시장이 충격을 받았다거나 위축됐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한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재밌는 일화 한 가지를 소개했다. “중국에는 왕푸징이라는 매우 유명한 백화점 기업이 있습니다. 중국 최초의 백화점을 세운 곳이죠. 그 왕푸징이 몇 년 전에 쩐지앙(鎭江)시에 기획 백화점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 매장을 그대로 옮겨 놓는 콘셉트였습니다. 한국에 가지 않고도 똑같이 쇼핑할 수 있도록 한 거였죠. 근데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1년을 못 채우고 문을 닫았죠. 관광지 소비와 내수 소비가 같을 것이라고 착각한 게 문제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롯데면세점이 현재에 안주하고 있다는 건 아닙니다. 중국 쪽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죠. 해외 시내면세점 확대도 그런 위험을 분산하고자 하는 거예요. 롯데면세점은 리스크 관리를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