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처치 교수는 책상 앞에 앉아 단 몇 분 만에 자신이 작성한 동료 평가 문서의 문자들을 0과 1의 숫자로만 표시되는 이진법 코드로 변환한 뒤 다시 유전자 코드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유전자 코드로 변환시킨 동료평가서를 사이언스지 편집자에게 보냈다.
당연히 편집자는 내용을 전혀 해석할 수 없었다. 그 문서는 오직 DNA의 기본 구성단위인 뉴클레오티드들을 상징하는 A(아데닌), T(티민), C(시토신), G(구아닌)로만 이뤄져 있었기 때문이다.
답답했던 편집자는 논문 저자들에게 평가 내용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들 역시 처음에는 그게 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고 한다.
어쨌든 논문은 정상적으로 발표됐고, 이 일은 처치 교수가 행한 수많은 기행((奇行) 중 하나로 남았다. 그는 과거에 연구자재 판매업체에서 구입한 영양액(nutrient broth)만 먹고 1년을 버티기도, 터널 시야에 대한 강의를 위해 연구실 주변에 직접 만든 거대한 블라인드를 쳐놓은 적도 있다.
하지만 처치 교수는 한 번의 암호화로 끝내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의 한계를 알고 싶어서 동료평가보다 훨씬 많은 분량의 글을 암호화했다. 출간을 앞두고 있던 저서 '리제네시스(Regenesis)'가 그 대상이었다.
결국 그는 며칠을 매달려 350페이지에 달하는 책 전문과 사진까지 A, T, G, C의 문자열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실험실에서 이 암호와 일치하는 DNA 가닥을 합성했고, 합성 DNA를 종이조각 위에 떨어뜨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 위의 점 하나에 리제네시스 700억권이 들어 있었다. 불과 며칠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수개월 후 처치 교수는 유명 TV프로그램인 '콜베어 르포'에서 자신의 실험 내용을 공개했다. 이후 여러 기업 대표들이 다양한 기록물들을 들고 처치 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그 사람들은 '저희는 큰 데이터 스토리지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답했죠. '그건 지극히 학문적인 실험이었습니다. 기업이나 다른 어떤 것의 개입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요. 그러자 그 사람들은 제 뜻을 알겠다면서도 데이터 저장이 정말 큰 문제라고 한탄해 마지않았습니다."
바로 이 일을 계기로 장난스런 실험은 사업으로 발전하게 됐다. 현재 처치 교수 연구실의 팀원들은 어떤 저장매체에 기록된 내용이라도 DNA로 암호화할 수 있도록 암호화 프로세스를 확대 개편하고 있다. 성공한다면 데이터 저장의 혁명은 물론 생물학의 르네상스가 열릴 것이다.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코드를 제어하는 능력 앞에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컴퓨터조차 형편없이 초라해지는 시대 말이다.
처치 교수가 말하는 태도는 조용했고 사려 깊었다. 그의 사무실은 넓은 연구실의 한편에 마련돼 있었는데 2m에 가까운 거대한 몸집에 비해 턱없이 작아 보이는 사무용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즐거운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시시때때로 다윈을 연상케 하는 턱수염을 잡아당기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런 엄청난 기술 혁신에 필요한 열정과 재능이 충분히 느껴지는 외모였다.
사실 처치 교수는 예전에도 생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대학원 시절 그가 고안한 DNA 염기서열 분석 기술 때문이다. 그의 기술은 게놈 전체의 서열분석에 필요한 비용을 수십억 달러에서 수천 달러 수준으로 낮추는데 큰 기여를 했다. 지금도 많은 과학자들이 이 기술을 이용해 암과 정신분열증 같은 난치병을 연구 중이다. 의사들도 희귀병의 진단을 위해 희귀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를 파악하는데 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처치 교수의 연구실에는 암호화 외에도 다양한 혁신기술들을 연구한다. 한 팀에서는 매머드의 게놈을 코끼리의 게놈에 이식해 매머드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으며, 다른 팀에서는 모기에게 말라리아 예방주사를 놓는 방법을 찾고 있다. 물리학자들을 위한 암흑 물질 발견 도구, 신경과학자들을 위한 인간 두뇌 매핑 도구를 설계하는 팀도 있다.
덕분에 지난 10년간 처치 교수 연구실에서 배출한 생명공학 관련 신생기업이 15개사에 이른다. 이외에 그는 다수의 기업에 자문을 해주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개념의 생물학, 즉 DNA 자체보다는 DNA를 인간의 필요에 맞춰 이용하는데 주력하는 생물학의 태동과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처치 교수는 저서 리제네시스에서 이 같은 새로운 생물학이 열어갈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박테리아를 사용해 자동차와 제트기를 움직이고, 암을 치료하는 세상이다. 공상과학이나 백일몽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의 꿈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을 향해 착실하게 나아가고 있다.
잦은 기행에 따른 선입견과 달리 처치 교수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범인들은 범접키 힘든 지적 능력에 대한 평판 때문에 그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든다. 그래서 기자들도,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도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이라는 식으로 질문의 운을 떼곤 한다. 당연히 필자도 그랬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의 연구실을 처음 방문한 날 저지른 실수 때문에 누구보다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날은 이른 오후였다. 마침 처치 교수가 라디오 방송과 전화 인터뷰 중이었기에 필자는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아 인터뷰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테이블 위에는 3D 프린터로 만든 분자모형들이 뒹굴고 있었는데, 처치 교수는 전화 인터뷰 내내 그중 하나를 조몰락거리면서 떼었다가 붙이는 것을 반복했다.
무료했던 필자는 처치 교수가 갖고 있는 것과 유사한 분자 모형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정 20면체의 주사위들로 이뤄진 정12면체의 모형이었다. 그리고 처치 교수를 따라 주사위 하나를 떼어냈다. 그 순간 모형 전체가 분리되며 테이블과 연구실 바닥으로 떨어졌고, 몇 개는 처치 교수의 책상아래까지 굴러 들어갔다. 당황한 필자는 재빨리 부품들을 주워서 재조립하려고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어수선한 와중에도 차분한 어조로 인터뷰를 마친 처치 교수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미소를 지으며 필자를 바라봤다. 필자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분자 모형을 넘겨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이 주사위들을 발견했습니다. 바이러스의 핵과 비슷하게 생겨서 냉큼 구입했죠."
그러더니 갑자기 기하학 강의가 시작됐다. 그에 따르면 정20면체는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대칭적인 구조다. 바이러스가 가진 대칭성의 기반도 이것이다. 필자는 그의 말을 이해하는 척했지만 실제로 이해한 것은 그가 말한 내용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파퓰러사이언스를 비롯해 워싱턴 포스트의 웹진 '슬레이트', PBS 방송의 온라인 과학사이트 '노바 넥스트(NOVA Next)' 등에 오랜 기간 과학 칼럼을 쓰고 있는 필자로선 살짝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길에서 발견한 주사위를 보고 바이러스의 구조를 떠올리는 사람과 똑같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처치 교수는 거의 평생 동안 이런 식으로 연구를 해왔다. 주변의 사물을 가지고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일례로 그는 10살 때 뒷마당에 있던 과일나무의 가지를 다른 과일나무에 접붙이며 놀았다. 매사추세츠주 앤도버에서 사립학교를 다녔던 10대 때는 프로그래밍 언어 '베이직(BASIC)'을 독학으로 깨우친 뒤 친구들에게 컴퓨터 선형대수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듀크 대학 시절엔 엄청난 속도로 학점을 이수해서 2년 만에 화학과 동물학 학사를 취득하고는 대학원에 진학해 운반RNA(tRNA)의 구조 해석 연구를 했다.
하지만 그는 박사 과정을 이수하던 중 퇴학을 당했다. 연구실에서의 연구에 매진한 나머지 수업을 너무 많이 빼먹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하버드대학에서 그의 재능을 알아봤고, 박사 과장에 편입해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하버드대학의 유전학자이자 처치 교수 친구인 게리 루브쿤 박사는 처치 박사를 이렇게 표현했다.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죠? 그 친구한테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저는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곤 했어요. 새벽 2시쯤 연구실을 나섰는데, 처치 교수는 그때 모터사이클을 타고 나와서 하루를 시작했답니다."
처치 교수는 하버드대학에서 평생의 반려자도 만났다. 대학원 친구였던 팅 우 박사다. 두 사람은 결혼 후 보스턴에 정착했고, 하버드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처치 교수는 아내를 자신보다 뛰어난 유전학자라고 치켜세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상시에도 그는 자신이 과학자가 아니며, 이따금씩 과학을 건드리는 공학자라고 강조한다.
공학자답게 그는 우주를 수많은 수수께끼의 덩어리로 보지 않는다. 대신 엄청나게 많은 버튼과 레버를 갖춘 기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버튼과 레버들은 자신을 조작해달라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루브쿤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과학에 대한 처치 교수의 접근방식은 지하실이나 차고에서 컴퓨터 혁명을 일으킨 IT 1세대들의 접근 방식과 유사하다. "한 번은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자신은 미 국립공학한림원과 미 국립과학한림원 회원이지만 공학한림원 회원 자격이 더 자랑스럽다고요."
대다수 대학 연구소의 연구 방식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특정분야의 연구에 필요한 기술들을 능숙하게 연마한 연구자가 있다고 치자. 이 연구자는 자신의 기술을 활용해 해결할 수 있는 연구를 하게 된다. 그러면 연구소에서는 해당 연구에 관심과 전문성을 가진 학생 및 연구자를 모아서 지원한다.
다시 말해 모든 시스템이 전문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분자 생물학자들은 대개 면역학에 관심이 많으며, 쥐 실험에 익숙하다. 신경과 학자들은 시각계에 관심이 많고, 파리 실험에 능하다. 이렇게 수많은 전문가가 양성된다. 그러나 이런 전문가들은 전시에 배급되는 전투식량만큼 개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처치 교수의 연구실은 반대다. 동질성이 아닌 다양한 개성의 소유자를 모은다. 물리학자와 신경과학자, 유전학자, 공학자, 사업가가 함께 일한다. 때문의 그의 연구실은 에이스들이 인 하버드대학 최고의 연구실 가운데 한 곳인 동시에 학계의 부적응자들을 잘 받아주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심지어 퇴직한 보험업계 종사자도 받아들였다. "수개월간 무보수로 일하면서 생화학을 독학하더군요. 현재 저희 연구실의 부소장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처치 교수의 제자이자 유전병 예방을 위한 유전자 선별 전문기업 굿스타트 제네틱스의 공동설립자인 유리 라저슨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연구실에 찾아와 교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누구든 연구원이 된다는 농담을 했을 정도였죠. 또 저희 연구실에는 조직이란 없었어요. 뭐든 그냥 내버려 두는 게 교수님의 스타일이었으니까요. 그곳에서 살아 남느냐 죽느냐는 오직 자신의 책임이었습니다."
라저슨 박사는 그런 연구 환경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강조한다. "정말 흥미로운 일들이 끊임 없이 일어났었어요. 연구원 가운데 그걸 느끼지 못했다면 온전히 자기 자신 탓이에요."
이처럼 통제된 혼돈 상태에서 도출되는 프로젝트들은 스펙트럼이 지극히 넓을 수밖에 없다. 그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생물학을 지극히 구체적인 비생물학적 문제에 적용하는 프로젝트들도 포함돼 있다. 데이터 저장이나 암흑 물질 추적에 DNA를 활용하는 연구가 그 실례다. 또 반대쪽 끝에서는 연구자들이 다른 과학의 도구들을 이용해 생물학의 문제를 풀고 있다.
예를 들어 '형광 동소 염기서열분석(FISSEQ)'이라는 신기술은 몇몇 물리학적 방식을 활용해 살아있는 세포에서 유전자가 발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기술이 개발되기 이전의 유전학자들은 한 번에 3~4개의 유전자만 관측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동시에 수천 개의 관측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학계에선 이런 스펙트럼의 중간에 위치한, 즉 생물학적 문제에 대해 생물학적 기반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연구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부류의 연구는 대개 '크리스퍼(CRISPR)'라는 효소를 사용한다. 이 효소를 쓰면 게놈에서 특정 염기서열을 잘라낼 수 있어 유전자 교정이 가능해진다. 특히 한 번에 여러 개의 유전자를 바꿀 수 있어 유전자를 추출, 분리, 복제하고 형질전환 동물을 이종교배하는 복잡다단한 작업을 생략할 수 있다.
처치 박사에 따르면 이런 역할을 하는 유전자 가위 중 크리스퍼가 속도면에서 월등히 앞선다. "마치 자동차 보닛 속에 피스톤을 던져 넣기만 해도 알아서 제 자리를 찾아가 기존의 피스톤과 교체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엔진이 작동 중인 상황에서 말이에요."
이와 관련 지난 2013년 1월 처치 교수팀은 크리스퍼를 가지고 인간 세포 속 DNA를 이어 맞출 수 있음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이후 과학자들은 이 기술로 간질환과 항생제 내성 등 여러 유전적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처치 교수는 크리스퍼로 생태계 단위의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게놈을 편집, 자연계의 성 선택(sexual selection) 법칙을 우회함으로써 특정 유전자가 후손에게 유전될 확률을 대폭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 결과물을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라 칭한다. "모기 한 마리에 말라리아 내성 유전자를 이식한 뒤 야생에 풀어놓았다고 상상해보세요. 어쩌면 그 한 마리로 인해 말라리아가 박멸될지도 모릅니다. 또 생태계를 파괴 또는 교란하는 외래종에 불임 유전자를 이식하면 어떨까요. 몇 세대만 지나도 야생에서 자취를 감출 수 있습니다."
크리스퍼는 처치 교수팀의 연구과제 중 가장 획기적인 '멸종 생물 부활 프로젝트'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유명 기술매거진 '홀 어스 카탈로그'를 창간한 스튜어트 브랜드에 의해 시작됐다. 매머드 같은 멸종 생물의 복원을 꿈꾼 그는 처치 교수에게 관련기술의 개발을 요청했다. 그렇게 개발된 기술이 일명 '진화 기계'라 불리는 '자동화 게놈 공학 프로세스'다. 이종 생물의 게놈을 하나로 합치는 기술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현재 처치 교수팀은 이 공정을 적용해 추위에 강한 내한성(耐寒性) 코끼리를 연구하고 있다. 매머드 특유의 긴 털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를 코끼리 게놈에 이식, 추운환경에서도 번성하는 코끼리를 만드는 게 목표다. "이 방식으로 다른 종들도 부활시킬 수 있어요. 가능성은 우리의 상상력만큼 무한합니다. 이것이 인류에게 기회가 될지, 위기가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처치 교수가 콜베어 르포에 출연했을 때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스티븐 콜베어는 처치 교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혹시 교수님의 연구 때문에 인류가 멸망하지는 않을까요? 혹시 절대로 죽지 않는 킬러 바이러스가 탄생할 가능성은 없나요?" 관객들은 미친 듯이 웃어댔고, 콜베어의 질문은 이어졌다. "아니면 교수님의 기술 때문에 태평양 한가운데서 거대한 돌연변이 오징어 괴물이 튀어나와 인간들을 잡아먹지는 않을까요?"
농담이기는 했지만 이 질문들은 처치 교수가 연구 과정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아이러니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세상에는 처치 교수의 비전을 ㅁㅣㅈ지 않는 사람, 너무 믿는 나머지 잘못된 곳에 쓰일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처치 교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도 자신이 세상을 대하는 관점, 즉 공학적 도전의 문제로 바라본다. 예컨대 유전자 드라이브가 야기할 예기치 못한 환경적 피해를 우려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들은 모기에게 말라리아 내성 유전자를 주입할 경우 모기 개체수가 급격히 낮아져 생태계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여긴다. 이에 대해 처치 교수는 '역 유전자 드라이브(reverse gene drive)'로 파괴된 생태계를 복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부 과학계의 회의론자들은 좀더 구체적인 지적을 한다. 생명체 본연의 자연선택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유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거되기 때문에 유전자 드라이브를 위해 기울인 노력이나 유전자 드라이브가 가진 위험성을 감내할만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처치 교수는 이 지적에 대해 동일한 유전자 드라이브를 주기적으로 실시, 유전자 변이를 다발적으로 일으킴으로써 대응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기술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우려도 있다. 동물 보호론자들의 경우 크리스퍼에 의해 어느 때보다도 동물실험이 용이해졌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처치 교수가 셰브런, 머크, 프록터 앤드 갬블 등의 기업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간 게놈의 제어권을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에 맡기는 데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처치 교수는 자신의 기업가 정신을 변명하지 않는다. 강의를 할 때마다 슬라이드에는 스폰서 기업들의 로고가 적시돼 있다. 그 또한 자신의 연구에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반기업 정서는 답이 아니라고 본다. "기업은 저희 일에 매우 중요합니다. 훌륭한 발상을 상아탑 안에 가둬서는 안 됩니다. 세상으로 끌고 나와야합니다."
이와 함께 그는 안전문제를 매우 중시한다. 작년 여름 유전자 드라이드를 설명하는 포스팅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이 기술의 안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공개 토론과 법적 검토, 지침의 확립이 꼭 필요하다면서 관계기관의 노력을 촉구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걱정을 귀담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중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진실을 알려주기 위한 대응방안을 찾아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는 새로운 '생화학적 봉쇄(biocontainment)' 방안을 찾고 있다. 지리적 격리 등 물리적 봉쇄에 의존하는 대신 게놈 자체에 안전 장치를 구축하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올 1월 처치 박사팀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합성 아미노산을 섭취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박테리아에 대한 연구결과를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이것이 바로 공학자로서 처치 교수가 일하는 방식이다. 그에게 극복 못할 장애물이란 없다. 기술은 효율과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하며, 그 반대로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기술의 능력을 의심하던 사람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기술 속에 포섭된다고 믿는다. "월드 와이드 웹(WWW)은 불과 수년 만에 수백만 개의 웹 페이지를 만들어냈습니다. 많은 혁신들은 실제로 모든 것을 바꿔놓기 전까지 혁신과는 무관해 보였습니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처치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휴대폰을 통해서였다. 필자와의 만남 이후에 진전된 사항을 알려달라고 하자 그는 이런저런 내용들을 줄줄이 읊어댔다. "데이터 저장(DNA 암호화)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기업이 금명간 저희 연구팀의 최근 성과를 크게 발표할 겁니다. 미 국립과학한림원의 연구 성과지에 DNA와 암흑물질에 대한 저희 연구팀의 논문도 실릴 예정이구요."
특히 처치 교수팀은 최초로 유전자 드라이브의 실현에도 성공했다. 소규모 선행연구에서 세포 내에 외래 유전자를 이식한 효모균이 야생 효모균 사이로 급속히 퍼져나간 것이다. 그중 어떤 연구에 가장 관심이 가는지를 묻자 그는 주저 없이 크리스퍼라고 답했다. "저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분야를 좋아합니다. 현재로서는 크리스퍼만한 게 없어요."
처치 교수는 현재 에디타스(Editas Medicine)라는 바이오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이 회사는 크리스퍼에 기반한 신약을 개발 중이다. "이런 유형의 혁신적 연구는 자칫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세상이 준비될 때까지 묵혀 놓아야 했던 프로젝트들이 있었죠. 사람들은 시대를 앞서가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행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멈추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게놈 편집 6단계]
크리스퍼라는 도구는 유전 공학 혁명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왜냐고? 유전자 조작은 매우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세포를 죽이고, DNA를 추출하고, 추출한 DNA를 조작한 다음, 다시 세포에 이식해야 한다. 이 복잡한 과정을 쉽고 빠르게 해주는 도구들 중 크리스퍼만한 것은 없다. 크리스퍼를 이용하면 살아있는 세포 속의 DNA를 전례 없는 속도로 조작할 수 있다. 덕분에 과학자들은 유전자를 조작해 질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지연시키며, 멸종된 동물을 부활시키고, 새로운 연료를 만들 수 있다. 그 가능성은 무한에 가깝다.
1. 크리스퍼 DNA를 숙주 세포에 주입
→ 2. 세포 조직이 주입된 DNA를 뉴클레아제(단백질과 RNA)에 전사(轉寫)한다.
→ 3. 뉴클레아제가 잘라낼 염기서열을 찾기 위해 숙주 DNA를 스캔한다.
→ 4. 뉴클레아제가 숙주 DNA에서 타깃 염기서열을 잘라낸다.
→ 5A. 타깃이 하나면 크리스퍼가 잘라낸 곳에 새 유전자 염기서열을 삽입한다. / 5B. 두 개의 크리스퍼를 이용하면 두 부분을 동시에 잘라낼 수 있다.
→ 6. 숙주 세포가 새로 이식된 DNA를 가진 채 분열한다.
암흑물질(dark matter) 우주의 약 27%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원자 입자. 오직 중력에 의해서만 존재가 인식될 뿐 실제 관측되지는 않았다.
FISSEQ Fluorescent in situ sequencing.
뉴클레아제(nuclease) 핵산가수분해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