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INTERVIEW] 알비에라 안티노리 부사장

26대 이어온 이탈리아 와인 명가 <br>우린 전통 · 혁신을 함께 숙성한다

안티노리 Antinori 는 이탈리아 와인의 역사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로 26대째 가족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안티노리 부사장인 알비에라 안티노리 Albiera Antinori 가 한국을 찾았다. 꾸준히 성장하는 한국 시장에 힘을 싣기 위해서다. 그는 안티노리 가문의 26대손이다. 안티노리가 오랜 역사를 이어 올 수 있었던 비결은 전통을 지키는 동시에 혁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고객들을 만나 안티노리 와인을 소개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어요.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 가운데 한 곳이거든요. 젊은 층의 와인 수요가 늘어나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알비에라 안티노리의 말이다. 그는 이탈리아 와인을 대표하는 안티노리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며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안티노리는 이탈리아 와인을 전 세계에 알린 와인 명가다.안티노리 가문은 1180년부터 와인을 만들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문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지오반니 디 피에로 안티노리’가 피렌체 와인 길드(동업자 조합)에 가입한 1385년을 와인 생산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를 근거로 안티노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자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안티노리는 처음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뒤 지금까지 한 대도 끊이지 않고 가족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알비에라 안티노리는 26대손으로 현재 안티노리 회장인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의 큰딸이다.

지난해 안티노리가 올린 매출액은 1억 6,000만 유로다. 가족경영을 하는 와인 회사치곤 작은 매출이 아니다. 현재 안티노리는 생산 와인 중 34%를 이탈리아에서 판매하고 있다. 나머지 물량은 모두 수출한다. 가장 큰 수출 시장은 미국이다. 독일,스위스, 러시아, 영국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아시아 지역 수출 비중은 6%다. 이 가운데 일본이 40%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있다. 그 다음이 한국과 홍콩으로 각각 15% 정도로 비슷한 수준이다. 안티노리는 2002년부터 한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알비에라 안티노리가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은 중요한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5년간 안티노리는 한국 시장에서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수백 년간 와인 명가로 살아남았지만, 안티노리도 2008년글로벌 경제위기에선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시 꽤 힘든 상황을겪었다.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건 수출 덕분이었다. 알비에라 안티노리가 말한다. “1990년대 초 포도밭에 투자를 많이 했어요. 자본이 매우 많이 투입되는 일이었죠. 그런데 이렇게 투자한 포도밭에서 수익을 내려면 15~20년이 걸립니다. 2008년 경제위기가 오면서 재무적으로 매우 힘들었어요. 다행히 수출이 잘 돼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당시 투자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안티노리 가문은 가족회사 기준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고급 포도밭을 가지고 있다. 가문의 근거지인 이탈리아 중부토스카나 지역을 비롯해 북부 피에몬테와 롬바르디아, 중부 움브리아, 남부 풀리아 등 이탈리아 주요 와인 산지에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포도밭 규모가 1,700만㎡(514만 평)에 이른다. 세계 여러 지역에도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 나파밸리와 워싱턴 주, 헝가리, 칠레, 몰타 등지에 보유한 포도밭까지 모두 합치면 2,500만㎡(750만 평)가 넘는다.

안티노리는 좋은 포도밭을 일구는 일에도 심혈을 기울이고있다. 알비에라 안티노리는 말한다. “새로 포도밭을 조성할 땐 과학적인 분석을 합니다. 토양과 지층 구조, 기후조건을 조사하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본능이에요. 좋은 포도밭을 알아보는 감각이죠. 우린 지속 가능한 농법을위해 인공위성도 이용하고 있어요. 인공위성에서 찍은 여러 종류의 사진을 보면서 포도밭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냅니다. 필요한 만큼만 적재적소에 손을 대기 위해서입니다.”

안티노리는 2013년 2월 피렌체 교외 바르지노 언덕에 현대적인 와인 셀러 wine cellar(포도주 저장실) ‘안티노리 키안티클라시코 Antinorinel Chianti Classico’를 만들었다. 안티노리가 일반인에게 공개한 최초의 와인 셀러로 7년간 5,000억 원이상이 투자됐다. 포도밭을 이루고 있는 언덕과 구릉을 자연스럽게 깎아내고 대부분 시설은 지하에 설치했다. 얼핏 보면 건물이 있는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알비에라 안티노리는 말한다.“이곳은 안티노리의 전통과 현대를 모두 볼 수 있는 곳입니다.와인 양조장과 저장실, 안티노리 가문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레스토랑, 와인 소개를 위한 강의실 등을 갖추고 있죠. 방문객들이 안티노리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게만든 공간입니다.”

안티노리가 26대째 가족경영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무엇일까? 알비에라 안티노리는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운을 떼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안티노리 가문은 세대를거듭할 때마다 다음 세대에 우리의 가치를 전달하는 걸 중요하게 여겨왔어요. 땅과 그 땅에서 나오는 포도와 와인에 대한 존중이지요.”

와인을 얻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를 수확하는 데에만 4년이 걸린다.와인을 만들고 숙성까지 하려면 최소 7년이 소요된다. 제대로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세대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알비에라 안티노리는 말한다. “저는 자랄 때 회사와 포도밭은 현재의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윗세대에서 물려받은 토대 위에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가치를보태서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것이었죠. 저는 제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안티노리는 전통을 이어 나가지만 혁신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탈리아는 일찍이 다른 모든 유럽 국가에 와인을 전파한나라였다. 하지만 이탈리아 와인은 가장 오래된 생산 역사와 생산량 세계 1위라는 실적을 지녔음에도 ‘싸구려’ 와인으로 인식되어왔다. 안티노리는 2등 취급받던 이탈리아 와인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탈리아 와인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은 알비에라 안티노리의 아버지인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이다. 피에로안티노리는 세계 유명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탈리아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1970년대 초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포도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을 들여왔다. 토종 품종인 산지오베제에 카베르네 소비뇽을 섞어 새로운 양조법으로 와인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와인이 ‘티냐넬로 Tignanello’다.

1978년에는 티냐넬로 포도원에서도 가장 좋은 포도를 골라 ‘솔라이아
Solaia’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 티냐넬로와 솔라이아는 ‘대량생산된 저가 와인’이라는 이탈리아 와인에대한 선입견을 뒤엎었다. 그리고 지난 2000년 결정적으로 이탈리아 와인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저명한 와인 전문잡지 ‘와인 스펙테이터 Wine Spectator’가 세계 100대 와인가운데 ‘솔라이아 1997’ 빈티지를 ‘올해의 와인’으로 선정한 것이었다. 이는 이탈리아 와인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와인 스펙테이터는 당시 ‘솔라이아야말로 오늘날 이탈리아 와인이 지닌 모든 장점을 집약한 와인’이라고 평가했다. 끝없는 도전과실험정신이 결실을 본 것이었다. 이 와인이 생산되는 곳은 토스카나 주에 위치한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이다. 이후 와인 애호가들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고급 와인에 ‘슈퍼 토스카나’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다.

한동안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은 강한 맛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알비에라 안티노리는 말한다. “20년 전에는 분명 그런 경향이 있었죠.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듯한 강한 와인을 좋아했어요. 생산자들은 소비자 입맛에 따라 와인을 만들었죠. 이런와인은 그 자체로는 매우 깊은 인상을 주지만, 음식에 곁들이기엔 조금 힘들어요. 음식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거죠.”

안티노리는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안티노리 와인에 주로사용하는 포도 품종인 산지오베제와 네비올로는 타닌 성분에서 비롯한 떫은맛과 시큼한 산미가 강하다. 두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숙성하면 음식과 잘 맞는 부드럽고 우아한 와인이 탄생한다. 안티노리 스타일의 와인인 셈이다. 이경희 와인나라 아카데미 원장은 설명한다. “마셔보면 싱겁다는 느낌이 들어요. 와인을 잘 모를 땐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계속 마셔보면 프랑스와인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편하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향을좀 더 즐길 수 있고, 음식과의 궁합도 좋죠.”

안티노리는 마케팅 포인트도 여기에 맞추고 있다. 고객들이 다양한 와인을 직접 맛볼 수 있도록 식사를 곁들인 시음회와 세미나를 준비해 소개하고 있다. 알비에라 안티노리는 말한다. “요즘엔 음식과 잘 맞는 부드러운 와인을 좋아하는 고객이점차 늘고 있습니다. 안티노리 와인이 지닌 특징이 바로 여기에있어요. 안티노리 와인이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우아하죠. 마셔보면 제 말뜻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안티노리는 어떤 시장에서든 최고급 와인을 전면에 내세운다. 최고급 와인이 잘 알려지고 나면 나머지 와인들도 자연스럽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안티노리는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좋은 품질의중저가 제품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고급 와인 메이커라는 이미지를 각인하되, 쉽게 접할 수 있는 중저가 와인도훌륭하게 만들어 승부를 내겠다는 얘기다. 알비에라 안티노리는 말한다. “안티노리는 한국 소비자들이 아직 접하지 못한 다양한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어요. 저가에서 고가까지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한국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선보일 겁니다. 여느 나라 와인에선 찾을 수 없는 매력을 느껴보세요.”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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