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족경영 재벌 그룹 중 한 곳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최근 일정은 너무 빈틈 없이 빡빡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Jamie Dimon CEO와 서울에서 조찬을 한 6월 초 어느 목요일의 일이 좋은 예이다. 그날 오후 이 부회장은 뉴욕에 소재한 260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Elliott Management가 삼성에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엘리엇의 목표는 경영권 강화 차원에서 삼성그룹의 자회사 중 상장기업 두 곳을 합병하려는 이 부회장의 계획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몇 주 후 자신의 47세 생일에 이 부회장은 한국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는 상징적인 제스처와 함께) 생애 첫 대국민 사과 방송을 했다. 서울 삼성의료원이 치명적인 호흡기 질환인 중동호흡기증후군 (MERS) 확산 저지에 실패한 것이 그 이유였다. 한국 최대 재벌가를 이끄는 명문가 후계자인 그는 임원들을 이끌고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는 현장조사도 실시했다. 골프 애호가인 이 부회장은 캘리포니아 주 페블비치 Pebble Beach의 사이프러스 포인트 골프코스 Cypress Point Golf Course에서 열린 골프 대회에도 참석했다. 회원과 초대손님만 참가한 이 대회는 야후 공동창업자이자 이 부회장과 절친한 사이인 제리 양 Jerry Yang이 주최한 것이었다. 곧바로 귀국한 이 부회장은 며칠 후 다시 미국으로 떠나 아이다호 주 선 밸리 Sun Valley에서 매년 열리는 앨런 앤드 컴퍼니 선 밸리 콘퍼런스 Allen & Co. Sun Valley Conference에 참석해 세계 IT업계 다른 거물들과 우의를 다졌다. 7월 중순에는 주주들이 합병에 찬성표를 던져 6주간 이어졌던 엘리엇과의 대결이 이 부회장의 승리로 끝났다.
‘삼성그룹’의 진정한 후계자인 이 부회장은 세계의 거물 기업인들과 놀라울 정도로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의 순자산이 80억 달러 정도라는 사실은 한국 밖에선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에선 이 부회장의 ’싱글대디‘ 생활이나 삼성 차기 총수로서의 삶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본국에서조차도 이 부회장의 정확한 활동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삼성그룹의 전설적 지도자인 부친 이건희 회장의 그림자에 오랫동안 가려져 왔기 때문이다.
그런 이 부회장의 인지도가 앞으론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최근 몇 달간 이 부회장은 삼성가와 삼성그룹의 지도자에 올랐음을 인정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며 외부 노출 빈도를 한층 높여왔다. 약 30년간 삼성을 이끌었던 이건희 회장(73)은 14개월 전 심장발작을 일으킨 이후 계속 입원 중이다(메르스 사태가 시작된 바로 그 병원이다). 이 회장은 현재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회복이 힘들 것이라 전망될 정도로 상태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을 반도체, TV, 스마트폰 등 수많은 분야에서 세계 1등으로 이끈 리더가 경영 일선을 사실상 떠난 것이다. 그의 외아들이자 (공식적으론 아니지만 실질적인) 후계자인 이 부회장은 아직까진 부친에 비해 비교적 검증이 덜 된 상태다.
서양인 친구들 사이에서 제이 Y. 리 Jay Y. Lee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이 부회장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한 마디로 이 부회장은 삼성이 지향하고 있지만 아직 도달하지 못한 모든 것의 집합체다. 그는 그룹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부회장 3인 중 한 사람이며, 어느 계열사도 단독으로 이끌고 있진 않지만 모든 계열사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그의 두 여동생은 각각 계열사를 맡아 이끌고 있다. 막내 여동생은 2005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영어와 일본어가 유창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한 바 있는 이 부회장은 삼성 임원들 중에서 가장 글로벌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와 문화가 전적으로 빚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아시아와 서구를 자유로이 오가는 이 부회장의 목표는 지금까지 삼성을 성공으로 이끈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국적인 뿌리를 넘어서는 것이다.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현재는 삼성에게 매우 중대한 시기다. 삼성의 스마트폰 사업은 엄청난 현금을 벌어들이며 시장점유율 기준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하이엔드 제품 시장에선 삼성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애플, 저가 시장에선 가격 공세를 벌이는 여러 중국 업체들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된 형국이다. 그 동안 한국 사회 내에서 재벌들이 누리던 특권적 위치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다. 기득권층에 대한 일반 대중의 깊은 반감과 주주 행동주의의 부상을 이 같은 변화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언론 인터뷰 때 녹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유교의 전통에 따라, 그를 비롯한 삼성의 최고위 임원진은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의 권한승계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동시에 삼성은 이미지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삼성은 공식 취임만을 남겨 둔차기 수장에 대한 외부검증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이를 의식했는지, 삼성은 포춘에 자사의 다양한 면모를 깊이 있게 조망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룹 주요 계열사 2곳의 CEO들과 인터뷰도 허락했다. 두 CEO는 이 부회장의 리더십과 그가 직면한 과제에 대해 솔직한 입장을 전해 주었다.
두 CEO를 포함한 여러 인터뷰 대상자가 꼽은 이 부회장의 최우선 목표는 ●미로처럼 복잡한 기업구조의 단순화 ●삼성 리더십의 창의성과 끊임없는 발전의 추구 ●우연히 세계 시장을 개척한, 고집스럽게 한국 회사에 남으려 했던 과거를 벗어나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이다이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의 강력한 경영진은 이러한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저항이 뒤따를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삼성이 지난 수십 년간 구사해 온 ‘미투 me-too 전략’-새로운 업종에 뛰어들어 경쟁자를 따라잡은 뒤 1등으로 올라서는 방식-의 결과는성공적이었다. 그 결과, 삼성은 규모 및 자산 기준 세계최대 기업집단 반열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1,958억 달러로 올해 포춘 세계 500대 기업 순위에서 13위를 차지했다. 이 리스트 중 IT 기업으론 1위이며, 애플보단 2계단 높은 순위다. 무역 및 건설업체인 삼성물산(441위)과 삼성생명(456위)도 포춘 500에 이름을 올렸다. 수십 개에 달하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종매출은 현재 3,200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 임원들의 마음 속에는 현재의 성공이 (특히 IT업계에선) 일시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두려움이 존재한다.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의점유율 감소가 보여주듯, IT 업계의 1위는 계속 바뀌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는 적절한 우려라 할 수 있다.그 결과 삼성 내에선 ‘높은 생활가전 의존도와 배타주의적 태도가 기업의 미래에 과거만큼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있다. 삼성 임원들은 소니와 샤프 등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의 라이벌 전자기업들의 몰락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삼성은 요즘 기존 판도를 바꾸는 진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혁신에 몰입하고 있다. 삼성은 과거 반도체, 스마트폰, TV 등 여러 분야에서 한계에 도전한 바 있다. 인텔을 넘어섰다고 평가 받는 삼성의 스마트폰 반도체 칩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삼성은 애플처럼 새로운 산업분야를 창출해낸 적이 없다. 삼성전자는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해 총 140억 달러를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애플의 R&D 투자액 60억 달러를 두 배 이상 초과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하지만 돈만으론 이 부회장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성장세를 유지하고, 애플에 맞서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선 한국 밖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 이 부회장을 위시한 삼성 경영진의 생각이다. 삼성물산 CEO 최치훈 사장은 “고참 직원들 가운데 ‘글로벌’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부회장은 굉장히 글로벌한 분으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아는 것과 직원 수 50만 명에 육박하는 대기업을 변화시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힘과 영광
올해 초 이 부회장은 점유율 20% 이상으로 세계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 TV사업 부문 담당 임원들을 소집했다. 이 부회장( 삼성 임원들이 그를 일컬을 때 주로 쓰는 호칭이다)은 그 자리에서 TV사업부 마케팅 현황에 대해 가볍게 비판했다고 전해졌는데, 그 결과 고위 임원들은 여러 차례 회의를 가져야했다. 30년 경력의 삼성맨이자 TV사업 부문 전략마케팅팀장인 박광기 부사장은 이 부회장의 발언에 난처해진 나머지 즉각 사임을 발표하기도 했다(*편집자주: 삼성 측은 포춘코리아에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알려왔다).
이 일화는 복잡한 소유 및 지배구조를 가진 삼성그룹 내에서 창업주 일가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간단히 말하면, 삼성그룹 계열사의 경영권은 본사가 아닌 각 사업부가 갖고 있다. 더욱이 창업주 일가가 소유한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의 지분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다른 계열사의 경우는 더 미미하다. 삼성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아닌지를 정의하는 건 그 자체가 난제이기에 수수께끼는 더욱 커진다. 삼성그룹 웹사이트는 ’각 계열사가 독립적인 법인이며, 삼성그룹은 각 기업의 역사를 통해 연관을 맺는 기업 집단을 일컫는 편의상의 표현“이라는 문구로 법적인 실체를 부인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삼성의 역사란 약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할아버지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38년 설립한 식료품 상회에서 출발했다. 오늘날에는 의류에서 놀이공원, 조선, 세탁기, 금융서비스까지 다양한 상품군을 망라하는 총 67개의 계열사로 구성돼 있다. 그룹 내 핵심 계열사는 스마트폰, 반도체, TV 3개 대형 업계에서 1위를 달리는 삼성전자다. 이 기업은 그룹 전체 매출의 3분의 2, 이익 측면에선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 측은 자사가 평범한 한국 재벌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떠오른 건 현재 총수인 이건희 회장의 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회장은 경영진에게 기업의 성장과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단기 수익률에 연연하지 말고 공격적 투자를 감행하라고 끊임없이 채근해왔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부를 이끄는 권오현 부회장은 “회장님은 기업환경과 상관없이 꾸준한 투자를 단행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딴 후 1985년 삼성에 입사한 권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투자할 당시만 해도 ‘ 미쳤다, 회사를 파산시킬 작정’이라는 평가가 만연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성공했고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삼성은 다른 주요 사업 부문에서도 이 같은 몸집 키우기 전략을 그대로 적용했다. 그 결과 TV 시장에선 소니, 휴대전화 시장에선 노키아를 왕좌에서 밀어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삼성은 경쟁자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태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에 불타는 만성 과로 상태의 직원들로 유명해졌다. 오늘날 삼성전자는 직원 수 30만 7,000명에 달하는 공룡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 거대한 규모를 감당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작은 도시를 건설했을 정도다. 서울 외곽 수원에 위치한 삼성 디지털 시티의 외관과 분위기는 실리콘밸리의 기업 캠퍼스와 유사하다.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통근하는 직원 3만 4,000명을 위해 500개의 버스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구석구석 정교하게 계획된 본사 건물은 제품 생산 전 단계를 통제하는 삼성의 성향을 반영한다. 삼성물산 최치훈 사장은 “자체 공장 건설은 속도 면에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은 원래 갤럭시6 시리즈를 올 가을 출시할 예정이었지만, 그 시기를 6개월 당기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와의 만남은 서울 시내고급 번화가인 강남의 삼성 본사 건물에서 이뤄졌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삼성물산의 건설부문이 “바로 그 갤럭시6의 생산 기지를 건설했다”며 “아무도 따라 하지 못할 삼성 휴대폰 생산 방식의 비결을 생산과정의 협력을 통해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의 ‘ 추격자( fast fol lower)’ 모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최대 사업부인 스마트폰 부문의 빠른 성장과 최근에 나타난 상대적 부진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아이폰이 시장에 등장한 2007년부터,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 진입에 총력을 기울였다. 애플의 자체 운영체제인 iOS에 빠르고 저렴하게 대응하기 위해, 2009년에는 자사 제품에 가격이 저렴한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삼성은 갤럭시S2의 성공과 함께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섰고, 수익률도 치솟았다. 특히 애플이 조기에 대응하지 않은 대형 스마트폰 제품군에서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해 애플이 아이폰 6 시리즈로 대형 제품을 출시하면서 삼성의 성장도 벽에 부딪혔다. 최근 발표된 실적 예고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4% 떨어진 61억 달러를 기록해 7분기 연속 이익 감소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면 크기 등 모든 요소가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소비자들은 애플이 제공하는 ‘혁신’에 기꺼이 비싼 가격을 지불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내부에선 2012~2013년 동안 스마트폰 부문의 이익률과 성장이 비정상적이었으며, 현재의 낮아진 수익률도 일정 정도 성과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CLSA증권의 한국지사장 숀 코크란 Shaun Cochran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전 세계에서 스마트폰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은 단 두 곳뿐이고, 삼성은 그 중 하나다.” 그는 “이익률이 예전만큼 굉장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높은 마진은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다. 현재로선 애플만이 그 수준을 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의 가까운 지인들은 스마트폰 부문의 현상황에 대해 그가 실망하고 있긴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고 전한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 스마트폰 업계의 1위가 아님을 인지하고 있다. 한 지인은 “이 부회장이 ’매출과 이익, 소비자 인지도 측면에서 1위는 애플‘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문제는 과거 수년간 우리가 소니, 필립스, 노키아를 벤치마킹했다는 점이다. 이제는 우리가 벤치마킹할 회사가 몇 남지 않았다.”
승계를 앞둔 후 계자
레노버의 양 위안칭 Yang Yuanqing CEO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이 부회장을 처음 만났다. 삼성과 레노버는 모두 올림픽의 공식 스폰서였다. 그는 “기업 스가 나란히 있었다”고 말했다. 레노버는 여러 제품군에서 삼성과 경쟁 관계에 있지만, 매년 컴퓨터용 반도체와 LCD를 20억 달러 이상 구매하는 삼성의 최대 고객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양 CEO는 이 부회장의 섬세함을 칭찬하며, 베이징 방문 당시 그가 건넨 선물이 특히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태어난 해를 알고 그 해 생산된 와인 한 병을 선물했다.”
완벽한 예의와 국제감각이 느껴지는 몸가짐으로 유명한 이 부회장다운 행동이었다. 사실, 이 부회장은 여러 측면에서 삼성을 세계에 알리는 홍보대사로 길러졌다. 한국 최고 대학인 서울대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전철을 따라 일본에서 게이오대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에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닷컴 버블이 한참이던 2000년대 초반 자신이 설립을 주도한 e삼성이 실패로 끝나자, 이 부회장은 부친 곁에서 자신의 타고난 ’사명‘받들기 시작했다. 후계자로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역할의 일환으로, 이 부회장은 주요 고객들-레노버처럼 고객인 동시에 치열한 경쟁 관계인 경우도 있었다-을 상대할 때 삼성을 대표했다. 일례로 애플이 아이팟 나노 iPod Nano에 삼성 플래시 메모리를 장착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 부회장은 스티브 잡스 Steve Jobs를 상대로 직접 협상에 나섰다. 시장에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애플 제품 제조를 위해 생산시설을 크게 늘려야 했던 이 결정은 삼성에게 큰 분수령이 되었다.
복잡한 삼성-애플 관계 속에서 이 부회장은 지금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CEO 팀 쿡 Tim Cook, 그리고 애플의 전 세계 조달 및 공급망 관리를 총 지휘하는 쿡의 후임자 제프 윌리엄스 Jeff Williams와 꾸준히 연락을 취하고 있다. 양측 모두와 교류한 바 있는 미국의 한 기업 임원은 “애플 쪽 사람들이 친밀한 어조로 이 부회장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IMF 이코노미스트 출신으로 삼성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이건혁 부사장은 “양사를 로미오와 줄리엣 관계에 비유하고 싶다”며 “가문끼리는 반목하지만, 당사자들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표현했다(친밀한 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쿡과 윌리엄스는 이 부회장에 대한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애플은 여전히 삼성 메모리칩과 디스플레이를 구매하고 있지만, 2012년 스마트폰 디자인 특허 침해와 관련해 삼을 미국 법정에 제소해 10억 달러 규모의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삼성의 위력과 이 부회장의 인간적인 매력으로 형성된 친분 관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넬리 Agnelli 가문의 후계자이자 ‘ 피아트 제국의 이재용’ 이라 할 수 있는 존 엘칸 John Elkann은 이 부회장에게 아넬리 가문의 지분을 관리하는 상장기업 엑소르 Exor의 이사직을 맡겼다. 엘칸은 이 부회장이 엑소르의 업구조 단순화 및 보험업 진출 시도에 대한 좋은 조언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부회장에 대한 흔한 평가 중 하나로, 그가 재벌가 후계자치곤 보통 사람의 소탈함을 지녔다는 것이 있다. 이 부회장과 여러 차례 직접 대면한 경험이 있는 한 전직 삼성 임원은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치곤 놀라울 정도로 소탈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다. 성격이 좋고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재용 부회장이) 수행원 없이 혼자 돌아다닌다. 옷차림도 캐주얼하다. 인사도 ‘안녕하세요, 이재용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본사 경비원들에게 자신을 만났을 때 90도로 인사하지 말라고 지시를 하기도 했다. 건물 내부를 돌아다닐 때 출입증을 달고 다닐 뿐만 아니라, 중요한 손님이 올 땐 이건희 회장이 여성 인재들의 퇴사를 막기 위해 설립한 사내 보육시설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이 부회장은 한국 최고의 신랑감 후보일지도 모른다. 2009년 아내와 이혼했으며, 슬하에는 중학생 아들과 딸이 있다. 자택은 삼성이 수십 년간 소유하고 있는 서울 고급 주택가 부지에 있다. 방문객들은 집이 비교적 소박하다고 전한다. 자택 거실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리(Lee)’와 ‘박물관(museum)’의 합성어인 리움(Leeum)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아름다운 미술관은 이병철 회장 때부터 수집해 온 귀중한 한국 고미술품과 전 세계 현대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자택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에 특히 자부심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주로 자택에서 업무를 보면서 본사에 드문드문 나타나 신비로운 이미지를 유지했던 것과 달리, 이 부회장은 훨씬 자주 눈에 띄는 리더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삼성그룹을 간소화하고자 하는 그의 지속적인 노력과 궤를 같이하고 있고,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얻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삼성은 디스크 드라이브 제조, 방위산업, 석유화학 분야의 계열사를 매각했다.
외부 기업인들은 이 부회장의 전략이 예리한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한다. 디스크 드라이브 제조업체 시게이트 Seagate의 스티브 루조 Steve Luczo CEO는 2011년 삼성의 디스크 사업부문을 인수한 이유로 이 부회장의 통찰력과 판단력을 꼽는 등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경쟁업체인 웨스턴 디지털 Western Digital과 히타치 Hitachi가 합병을 결정한 상태에서, 삼성의 디스크 부문을 훨씬 시장점유율이 높은 시게이트에 매각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루조는 “이 부회장은 매우 적절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며 “주로 경영의 세부적인 측면에 대한 질문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분적으론 이 부회장의 특권화된 성장 배경 때문에 한국에는 그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한다. 삼성가를 잘 아는 한 한국 기업인은 “이건희 회장은 수천 명을 모아 놓고 ‘필요한 것은 뭐든지 지원해 줄 테니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50%를 달성하라’고 독려하는 스타일이었다. 이 부회장에게도 그런 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업가가 아니라 총수로 길러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실질적인 총수 역할을 수행 중이긴 해도 계열사들의 경영 최일선에 나설의도는 가지고 있지 않다. 전문경영인들이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했던 부친 때의 선례를 그대로 따를것 이라는 얘기다. 다만 그는 아버지와 달리 주변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이미지의 단점을 알고 있으며, 창업주일가의 역할을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가문을 위하여
서울 반대편 삼성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상암동에는디지털 미디어 시티(삼성 디지털 시티와는 별개의 장소다. 한국은 극도로 ’디지털‘화 된 곳이다)라는 산업단지가 있다. 신생 TV 및 게임업체들의 허브가 된 곳이다. 지난 6월 어느 날 맑은 오후, 상암DMC 내의 한스튜디오에선 남성 아이돌 그룹 엑소가 히트곡인 ’러브 미 라이트 Love Me Right‘의 안무를 한참 리허설 중이었다. 스튜디오 밖에선 10대 소녀 200명이 엑소를 보기 위해 스튜디오 밖에서 목이 빠져라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엑소를 초청한 기업은 CJ E&M으로, 한국의 소비재 및 영화제작 기업 집단인 CJ그룹의 자회사였다. 같은 날 엑소가 출연할 예정이었된 어느 인기TV 프로그램의 스폰서가 바로 CJ E&M이었다.
CJ는 절제된 분위기의 삼성과 유사한 점이 그리 많지 않지만, 한 가지 중대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CJE&M의 경영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촌누나 이미경부회장이다. 이미경 부회장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DreamWorks Animation에 일찌감치 투자해 큰 수익을 올린 것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CJ의 C는 삼성그룹의모태인 제일모직(현재도 존재한다)의 머릿글자에서 따 왔다.
CJ는 한국 최대 영화관 체인뿐만 아니라 국내외 여러 유통업체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가의 활동범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재용 부회장의 첫 여동생 이부진 사장이 경영하는 고급 호텔기업인 호텔신라는 면세점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둘째 여동생인 이서현 사장은 제일모직 패션부문과 한국 최대 광고회사 제일기획을 이끌고 있다. 이 부회장의 일가가 이끄는 기업으로는 신세계 백화점과 한국의 주요 일간지인 중앙일보도 있다. 중앙일보는 1960년대 이병철 회장이 설립했으며, 현재는 소유 관계를 갖고 있진 않지만 친삼성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인식 되고 있다. 한 마디로 삼성은 한국인의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청년층은 삼성(그리고 현대 · LG 등 다른 재벌들)이 신규 창업 기회를 빼앗아 간다고 비난하면서도 삼성 입사를 꿈꾸고 있다. 삼성그룹의 18개 상장기업 주식이 실제 시장가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된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통하고 있다. 소유주 일가가 주주보단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인식이 있는 탓이다.
이 부회장이 지분 23%를 보유한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 삼성물산 지분 7%를 소유한 엘리엇이 움직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저평가됐으며, 제일모직이 삼성전자 지분 4%를 인수 대가로 지불하는 건 부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엇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식에서 이건희 일가가 차지한 지분은 전체의 5% 미만에 불과하며, 이재용 부회장과 그의 두 여동생은 이번 인수를 통해 이 회장 타계 이후 납부해야 할 상속세를 줄이는 효과를 얻게 된다.
삼성은 엘리엇의 기습공격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엘리엇이 한국 법원에 제출한 2건의 가처분 신청은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7월 17일 세간의 관심을 모으며 열린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을 포함한 주주들은 이 합병을 승인했다. 삼성 제국이 외국 투자자로부터 이런 공격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마지막은 아닐 공산이 크다.
삼성의 미래
한국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Douglas MacArthur이 상륙한 서해의 항구도시 인천은 삼성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삼성그룹이 세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단 4년 만에 로슈 제넨테크 Roche Genentech,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 Bristol-Myers Squibb 등 여러 세계적 제약회사에 바이오의약품을 공급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이 부회장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고 알려진 이 회사는 큰 규모, 수십억 달러의 투자, 제조업 노하우를 활용한 유망사업 신규투자 같은 삼성의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언뜻 보면 바이오로직스는 ‘추격자 모델’ 의 또 다른 사례로 보인다. 바이오로직스는 제조법을 가진 기업의 주문을 받아 생산이 어려운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대만 폭스콘 Foxconn이 애플과 델 같은 유명 브랜드를 갖춘 기업들에 제품을 공급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기존 의약품이 안정성 높은 화학물질로 만드는 것과는 달리, 바이오의약품은 단백질로 만들어져 살균 과정의 난이도가 훨씬 높다. 대형 금속 용기로 가득한 대형 산업단지인 바이오로직스 인천 공장의 최대 생산용량은 3만 리터다. 이미 건설이 시작된 제2플랜트는 ‘설비(1만 5,000리터 용량의 탱크)’가 10개에 달한다. 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 비즈니스 개발 담당 부사장 제니퍼 휘트 Jenifer Wheat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설비를 10개 갖춘 플랜트”라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이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성공적인 출발을 위해 해외에서 영입한 60여 명의 제약업계 베테랑 가운데 한 명이다.
바이오로직스 투자가 수익을 내기까진 앞으로 몇 년이 걸리겠지만, 삼성그룹은 이미 그 방안을 찾아냈다. 바이오로직스가 지분의 90%를 소유하고 있는 자회사 삼성 바이오에피스 Samsung Bioepis가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고 있다. 기업가치 70억 달러 정도로 평가되는 이 회사는 최근 미국 나스닥 상장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삼성은 헬스케어 전략이 IT와 의료시장의 결합이라는 전략 아래 진행되는 다양한 노력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휘트 부사장은 “IT와 의료 간의 시너지 효과는 언뜻 봐선 잘 드러나지 않지만 매우 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너지 효과를 통해 진정한 혁신에 기반한 신사업을 창출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삼성은 기존 기업을 인수하기보단 신규 창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랜 동안 한국 정부가 삼성 등 재벌기업들이 수익을 R&D에 재투자해 국내경제 발전에 기여했을 때 보상을 제공해온 것도 한 가지 이유다. 또 삼성은 20년전 인수합병 실패로 인해 뼈저린 아픔을 겪었다. 90년대 중반, 삼성은 거의 10억 달러를 투자해 캘리포니아 소재 컴퓨터 업체인 AST 리서치 AST Research를 인수했다. 이후에도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결국 이 인수는 실패로 끝났다. 그룹의 전략 담당자들은 여전히 이 때의 충격을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도 이 사건은 삼성이 인수합병을 꺼리는 이유로 종종 거론되고 있다.
삼성은 최근 인수에 조금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회사 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벤처투자를 담당하는 미국 내 한 자회사는 사물인터넷 시장 공략을 위해 스마트싱스 SmartThings라는 소프트웨어 업체를 인수했다. 올해 들어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애플, 구글 등 경쟁 기업들에 대적하기 위해 모바일 결제 전문 벤처업체 루프페이 LoopPay를 2억 5,000만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애플과 비교해 삼성이 열세인 분야는 자체 모바일 생태계 구축 부분이다. 갤럭시 시리즈가 성공을 거두자, 삼성은 애플·구글과 맞설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무선사업부가 자본을 투자해 서울에 미디어 솔루션센터를 설립하고, 독립적 운영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구글 등 협력업체들의 심기만 거슬렀을 뿐, 거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작년 말 삼성은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직원 2,000명이 일하고 있던 미디어 솔루션센터를 조용히 해체하고 직원들을 재배치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미디어 솔루션센터의 실리콘밸리 지부는 유지하고 디즈니 임원 출신인 존 플레전츠 John Pleasants를 영입해 경영을 맡겼다. 내부 관계자들은 모바일 서비스 전략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캘리포니아 벤처투자전문가 제이 Y. 엄 Jay Y. Eum은 “삼성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IT업체다. 해답을 찾아낼 때까진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갈망하고 모색하는 기업
90년대 초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기업문화가 지나치게 폐쇄적임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매년 유망한 중간급 관리자 100명에게 1년씩 안식년을 제공해 전 세계각지로 나가 지역 문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관점을 배우게 했다. 이 제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본사에선 MBA를 보유한 비(非)한국인 직원 수백 명이 글로벌 전략 수립에 참여하고 있다. 외국인으로부터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겠다는 취지다. 오랜 동안 삼성은 갈망하고 끊임없이 모색하는 회사였다. 이재용이 이끄는 삼성은 이제 세계 최고를 벤치마킹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내면화함으로써 변신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삼성은 대개 12월에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한다. 이건희 회장의 건강 상태와 별개로,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취임도 아마 이 때 발표될 가능성이 크다. 벼락 치듯 갑작스럽게, 새로운 관점과 경험을 가진 인물이 삼성의 공식 리더로 올라설 전망이다. 앞으로 수십 년간, 이재용 부회장의 가장 큰 과제는 목표를 어떻게 현실화 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