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INTERVIEW / 정문홍 로드FC 대표

아시아 넘버원 종합격투기 단체 창업 "15억 시청자 발판으로 사업 키우겠다"

정문홍 대표는 격투기 선수 출신 경영인이다. 2010년 사재를 털어 현재 아시아 넘버원 종합격투기 단체로 성장한로드FC(Road Fighting Championship)를 창립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제가 포춘지에 나올 만한 인물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경영 실적이 참담하거든요. 매번 적자이다 보니 재무제표는 보지도 않습니다.” 지난 7월 30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로드FC 압구정짐에서 정문홍 로드FC 대표를 만났다. 정 대표는 강원도 원주의 조그만 합기도 체육관 사범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현역 격투기 선수를 거쳐 현재는 로드FC 대표에 올라 있다. 로드FC는 2010년 그가 직접 설립한 종합격투기(MMA·Mixed Martial Arts) 단체로, 현재 규모 면에서 아시아 넘버원 단체로 성장했다.

정 대표는 로드FC의 프로모터도 겸하며 대회 조직 및 흥행, 선수 육성 등의 비즈니스를 총괄하고 있다. 정 대표는 국내에서 MMA가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또 해외 경기에 집중된 MMA 마니아들의 관심이 국내로 옮아올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왔다. XTM 채널의 ‘주먹이 운다’ 프로그램에 출연해 길거리 싸움꾼들의 실력을 평가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선 자신이 직접 이들과의 대결에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MMA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시들해질 땐 ‘트러블메이커’ 역할도 마다치 않았다.

‘한국 언론들은 한국 MMA의 성공이 싫은가본데, 맘대로 하세요’ 등 거친 표현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이들 논란은 대중이 MMA와 로드FC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런 그의 마케팅 방식에 격투기 팬들의 호불호가 많이 갈리긴 하지만, 그가 국내 MMA 스포츠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해온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MMA를 시작한 이유
MMA에서 워낙 이슈가 되는 인물인 만큼 세간에는 정 대표의 신상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최근에는 그가 수천억 원대의 재산을 물려받은 재벌 2세라는 루머가 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로드FC 같은 단체를 설립할 수 있었으며, ( 국내 프로 격투기 시장의 열악한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적자밖에 날 수 없는 구조인 로드FC를 어떻게 지금까지 운영해 올 수 있었겠느냐는 물음이 이 루머가 생겨난 배경이다.

그동안 적극적인 해명이 없어 더욱 조심스러웠던 신상관련 질문에 정 대표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요, 정반대입니다. 저는 생활보장대상자에 가까웠어요. 가정폭력에도 많이 시달렸고요. 어머니께서 행상을 하시면서 어렵게 저를 키우셨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성인이 되면서부턴 정말 아등바등 살았고요.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세민이었죠. 50만 원인가 90만 원인가에 고물 봉고차를 하나 구입해서 양말이나 유아복을 떼다 난전에서 팔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하다 보니 조금씩 돈이 모이더라고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고향인 원주에서 큰 헬스장을 두 개 열고 땅도사고 했는데, 이들 자산이 종잣돈이 되어 여기에 수익이 또 붙고 해서 로드FC 운영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20대 후반 쯤 그의 자산이 10억 원을 넘어서자 정 대표는 문득 삶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평생의 목표로 생각했던 ‘가난으로부터의 탈피’가 너무 일찍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정신적 방황을 이어가던 어느 날 운명처럼 그의 눈에 들어온 게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MMA였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항상 격투기와 함께 했을 정도로 골수 격투기 마니아였다. 시골 장날에 맞춰 이곳저곳 바쁘게 이동해야 했던 장돌림 시절에도 하루 한두 시간씩은 꼭 근처 체육관에 들러 합기도, 복싱, 태권도 등을 수련할 정도였다.

정문홍 로드FC 대표는 말한다. “MMA 시합을 본 순간 첫눈에 반했습니다. 바로 서울로 상경했죠. 그런데 당시만 해도 MMA가 막 저변을 넓혀가던 시기라 우리 나라에는 제대로 된 MMA 도장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으로 갔습니다. 이때가 2005년 무렵이에요. 제가 갓 서른을 넘겼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때부터 수년간 일본에서 MMA를 배우고 또 선수로도 뛰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대회 운영노하우도 이때 익힌 거고요. 2007년경에는 원주에 MMA 전문 체육관을 오픈했어요. 원주 체육관을 거점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일본에서 배운 MMA 지식과 기술들을 한국에 많이 전파하기 시작했죠. 이후 원주 체육관은 프로 파이터들을 많이 배출하면서 MMA 명문 도장으로 성장했습니다.”


●●● 로드FC의 탄생 배경
로드FC는 2010년 설립됐다. 로드FC의 설립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0년 이후 국내 프로 격투기 시장의 상황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종 격투기 간 프로 시합은 1990년대 후반부터 흥행몰이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입식 타격기 대회인 K-1(권투, 태권도, 가라테 등 서서 싸우는 모든 종류의 무술을 망라)과 MMA 대회인 프라이드(입식 타격은 물론 유도, 레슬링, 주짓수 등 상대를 넘어뜨리고 넘어진 상대에 대한 공격까지도 허용)가 크게 흥행하면서 바로 이웃 나라인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초부터 K-1이나 프라이드와 비슷한 콘셉트의 격투기 대회가 생겨나 단기간에 큰 인기를 얻었다.

갑작스러운 인기만큼이나 당시 국내에선 격투기 시장 과열 논란이 크게 일었다. 일본에 비해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신생단체만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야쿠자 연루설이 제기된 프라이드가 2007년 4월 시리즈 넘버 34(대부분의 격투기 단체들은 대회 이름에 개최 순번을 같이 넣는다. ‘프라이드 34’는 프라이드가 정식으로 개최한 34번째 대회라는 의미다)를 마지막으로 해산하고 그 여파로 K-1까지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내 격투기 단체 대부분이 같이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내 격투기 시장은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문홍 로드FC 대표는 말한다. “당시 우리나라 단체들은 프라이드나 K-1 등 일본 메이저 단체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자체 리그를 탄탄히 만들어 메이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생각 대신 ‘선수를 키워 메이저 대회에 진출시키는 식으로 (메이저 단체와) 협업하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죠.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먼저였는데 그러지를 못한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별히 서로 얽혀 있던 관계가 아니었는데도 메이저 단체가 넘어가니까 같이 무너진 거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00년대 후반의 이런 어두운 국내 격투기 시장 상황은 현재 아시아 최대 MMA 단체로 성장한 로드FC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 대표는 말한다. “처음엔 막막했어요. 저도 메이저를 목표로 한 단계씩 밟아나가던 선수였는데, 이제 메이저는 고사하고 뛸수 있는 무대 자체가 사라진 거였잖아요. 그나마 제 상황은 나은 편이었어요. 제가 가르치고 있던 제자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됐더라고요. 저야 어느 정도 재산이 있으니까 밥굶을 걱정은 없었는데, 얘들은 어떻게 합니까? 운동만 하던 선수들이 격투기 대회를 못 뛰면 뭘 할 수 있겠어요. ‘내가 격투기 단체 경영자가 되겠다’ 같은 거창한 생각은 1%도 없었어요. 그냥 ‘ 얘들이 뛸 수 있는 무대만 하나 만들어 주자’라는 생각이었죠. 그냥 막연한 책임감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무턱대고 만든 게 로드FC였습니다.”


●●● 이젠 빛이 보인다
격투기 단체 운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영의 미숙함은 둘째 치고, 시장 형성도 안 되어 있는 곳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하려니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적정 규모의 조직을 유지하고 대회를 개최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소요됐다. 이들 비용은 대부분 정 대표 자신의 재산을 털어 충당했다. 정문홍 로드FC 대표는 말한다.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었습니다. 인구 5,000만 명 정도 되는 나라에서 프로 격투기 시장이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당연한 얘기겠지만, 1회 대회 때부터 지난 5월 열렸던 23회 대회까지 전부 다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제가 로드FC에 올인하면서 헬스장 빼곤 대부분의 자산을 다 정리했죠. 헬스장은 정산하고 남은 돈을 로드FC로 끌어다 쓸 수도 있고 또 선수들이 트레이너를 겸하면서 운동도 하고 부수입도 챙길 수 있고 해서 그냥 남겨뒀습니다. 지금 제 앞으로 빚이 40억 원 정도 될 겁니다.”

로드FC가 유명해지면서 스폰서를 맡겠다는 기업들도 나타났다. 하지만 정 대표는 이들 기업이 내민 손을 쉽게 잡지 않았다. 편하게 가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지만, 일부러 먼 길을 택했다. 정 대표는 말한다. “자금이 필요하긴 했지만 급하다고 아무 기업의 돈이나 마구잡이로 받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곳들이 많았어요. 저나 선수들에게 기업 행사 들러리를 서라는 등 우스꽝스러운 조건들도 마음에 안 들었고요. 저도 마케팅 쪽으로는 상당히 관대한 입장인데 그래도 이건 아니다 하는 게 있거든요. 격투기 선수들은 무도인이기도 하잖아요. 무도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습니다. 지금 로드FC 스폰서를 맡고 있는 지앤푸드나 마세다린 등은 수년째 접촉하면서 우리나라 MMA를 응원하는 그들의 진심을 확인했기에 후원을 받고 있는 겁니다.”

지난 7월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열렸던 로드FC 24는 여러모로 큰 의미를 남긴 대회였다. 24 대회는 로드FC의 첫 해외 진출 사례로, 로드FC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도약하기 위한 첫 발판이기도 했다. 24 대회에 출전한 최홍만선수가 사기혐의로 피소됐다는 소식이 현지에 알려지면서 일본 내 지상파 중계가 불발될 뻔도 했지만, 다행히 8월 1일 토요일 저녁 7시 황금 시간대에 방송을 탈 수 있었다. 특히 로드FC 24는 중국의 IT 전문기업인 치후 360 Qihoo 360이 메인 스폰서를 맡으면서 중국 내 첫 중계는 물론, 적자를 면한 첫 로드FC 대회로 기록되기도했다.

정문홍 대표는 말한다. “그냥 될 대로 되라 하고 열나게 가다 보니까 뭔가가 보이더라고요. 생각해보세요. 24 대회부터 15억 명의 인구가 우리 로드FC를 봐요. 물론 이들이 티켓을 팔아주는 건 아니죠. 근데 우리 경기를 봐주는 이 엄청난 인구를 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더라고요. 이왕 하는 거 재밌게 하자고 오버하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하고 또 일이 잘 안될 땐 좌절도 하면서 좌충우돌 달려왔는데, 이제는 이게 진짜 좋은 사업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에는 중국, 일본 등에서 서로 투자를 하겠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매력적인 비즈니스 아닌가요? 올해 중국 대회까지 성공하면 반석에 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로드FC 경영의 원동력은 ‘사람’
정문홍 로드FC 대표의 경영 철학은 ‘결국은 사람’이다. 자신이 그간 쌓아온 사제(師弟)의 인연이 지금의 로드FC가 존재하는 데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말한다. “로드FC 직원들은 99%가 제 제자들입니다. 사실 답답할 때도 많죠. 그동안 운동만 하면서 살아온 애들이 대부분이라 부족한 면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보장할 수 있어요. ‘믿음’이죠. 적어도 딴마음 품는 애들은 아니라는 거예요. 일이야 익숙해지면 되는 거고 모자란건 채워주면 되는 거잖아요. 꼭 필요한 업무 능력이 있으면 배우고 오라고 장기 휴가를 보내주기도 합니다. 물론 아주 전문적인 분야의 일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있죠. 그런데 그런 종류의 직원들(고문 변호사, 링 닥터 등)조차도 전부 다 제 제자들입니다. 사범 경력만 20년이 넘다 보니 많은 제자가 있지 않겠어요. 어려운 거 아니까 자원봉사를 자청해서 해주더라고요. 최근엔 조직이 커지면서 일이 너무 많이 늘어나 아예 직접 고용한 전문직 제자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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