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교토삼굴-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



사마천의 사기(史記) '맹상군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맹상군의 식객 중에 풍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풍환은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위해 세 개의 비상 시나리오를 준비해뒀다. 맹상군은 위기를 당해서도 이를 무사히 넘기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풍환은 교토유삼굴(狡兎有三窟)이라는 비유를 든다. 지혜로운 토끼는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피할 수 있는 굴 세 개를 만들어 둔다는 의미다. '교토삼굴'이란 고사성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필자는 요즘 우리 공사를 보면서 교토삼굴의 고사가 떠오른다. 신용카드 결제의 확산과 5만원권 발행으로 현금 사용량이 급감함에 따라 주력 제품인 화폐 제조량이 10년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자기앞수표의 감소율은 그 이상이다. 위기가 닥친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유사한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례적으로 현금사용 비율이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똑똑한 토끼처럼 굴을 파고 있다.

그중 하나가 각종 유가증권·카드·신분증을 스마트폰에서 사용이 가능하도록 발행·관리해주는 신뢰보안 서비스 사업(Trusted Service Manager·TSM)이다. 예를 들어 백화점이 상품권 발행을 요청하면 공사는 스마트폰에 내장돼 있는 통신가입자 칩에 디지털 형태로 발행해준다. 상품권 구매자는 스마트폰에 내장된 상품권을 백화점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연내 서비스 개시 예정으로 현재 모바일 상품권 이해 관계자인 교통카드사, 결제정산 대행사, 이동통신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화폐·국가신분증·상품권 제조기관이라는 공신력이 바탕이 되는 사업으로 외국의 조폐기관들도 진출하고 있는 분야다. 1차 상품권에 이어 신분증·카드로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이밖에 금 시장 양성화 프로젝트의 일환인 골드바 사업과 화폐제조 과정에서 축적한 다양한 위조방지 기술의 민간이전을 통한 신제품 창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 모두 아직은 큰 진전이 없다.

우리 공사의 위기 대응책도 그렇지만 필자 개인적 차원으로 눈을 돌려봐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축구 경기로 치면 연장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노후의 삶에 대한 대비책은 무엇인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오래 사는 위험'에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세 개의 굴을 준비한 2000년 전의 지혜로운 토끼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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