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매출 8,300억원… 1조 클럽 ‘코앞’
‘0914’ 단순한 명품 아닌 한국 기술력·디자인 담을 것
버버리·마이클코어스·마크제이콥스·코치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 20여곳에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핸드백을 공급하는 기업이 있다. 30년도 채 되지 않는 업력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명품 핸드백 10개 중 하나는 이 회사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명품’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87년부터 핸드백 제조자개발생산(ODM)으로 세계적인 위치에 오른 기업 시몬느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연 매출(2013년 7월∼2014년 6월, 연결기준)은 8,300억원이었는데 올해는 ‘1조 클럽’ 달성이 무난해 보인다. 판매가격으로 따지면 핸드백 7조원 어치를 세계 각국에 납품하는 셈이다.
시몬느는 베인앤컴퍼니의 ‘글로벌 럭셔리 마켓’ 보고서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자사의 세계 명품 핸드백 시장점유율이 9%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몬느를 이끄는 박은관 회장은 1979년 나라 밖을 돌아보고 싶어 핸드백을 수출하는 무역회사에 입사했던 때를 떠올리며 웃었다.
“패션에 대한 ‘끼’가 있었던게 아니라 그때는 국비장학생이나 무역회사 직원이 아니면 외국 나가기가 쉽지 않았었다”는게 그가 핸드백과 인연을 맺은 이유다.
그는 “1980년 이탈리아에 가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 두오모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역사적 향기를 느꼈고 초록·보라·라임색의 남성복을 보며 남자들도 이런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7년여간 세계 곳곳을 돌며 일을 배우다 1987년 직접 차린 핸드백 제조업체가 시몬느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의 작은 나라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브랜드의 핸드백을 만든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창업 직후 ‘메이드 인 이탈리아’였던 DKNY 핸드백을 그대로 본떠 만든 제품을 미국 DKNY 측에 내밀며 담판을 지었다.
이탈리아의 역사 깊은 공방도 처음에는 한국처럼 작게 시작했을 것이라고 담당자를 설득한 끝에 물량을 수주했고 한국 기업도 품질 좋은 핸드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그 기술력을 인정한 다른 명품 업체들도 시몬느를 찾기 시작했다. 그에게 자체 브랜드 0914 론칭은 숙원이었다.
헤어졌던 연인을 우연히 다시 만난 날짜인 9월 14일을 브랜드 이름으로 정한 것은 이미 업계에서 로맨틱하기로 이름난 일화다. 그날 다시 만난 옛 연인은 그의 아내가 됐다.
30년에 가까운 기간 쌓아온 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0914는 단순한 명품을 표방하지는 않는다.
박 회장은 “명품이라면 브랜드의 전통과 제품의 질, 가격 등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정작 유럽인들도 ‘럭셔리’(luxury·명품)라는 개념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0914를 꼭 ‘한국 명품’으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디자인으로 만들어낸, 한국에 뿌리를 둔 브랜드라는 점이다.
박 회장은 “글로벌 브랜드가 되려면 브랜드가 속한 국가와 사회의 성숙도도 중요한데 이제 한국은 명품의 소비시장이 아니라 오리진(origin·기원)이 될 수 있는 곳”이라며 “10∼15년 전과 달리 한국도 ‘퍼스트 클래스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나라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초반부터 코치·토리버치·케이트 스페이드 등의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유럽 제품이 독점했던 미국 시장을 되찾은 것처럼 한국에서도 질 좋은 한국 제품이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유럽 제품의 벽은 높다.
그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지갑을 선물받아야 만족하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미국은 품질·디자인·가격이 좋은 상품이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크게 따지지 않는데 아직 우리나라 소비자는 다소 보수적이고 유럽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대신 0914는 ‘3초 백’(눈에 자주 띄는 흔한 백)이 되지 않기 위해 동일 제품을 10개 안팎으로만 생산하는 철저한 다품종 소량생산 원칙과 독특한 디자인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그래서 이달 론칭과 함께 선보일 제품의 디자인과 색깔도 640가지에 이른다.
박 회장은 “0914는 소박하면서도 격조있는 제품을 추구하지만 그 안에서 디자인 모티브는 굉장히 다양하고 독창적”이라며 “이미 시장에 있는 스타일의 제품은 없을 것이고 유명인이 들어서 대박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채널 역시 6개월∼1년 정도는 가로수길 백스테이지(Bagstage) 매장과 0914 플래그십 매장으로만 한정하고 이후에도 0914의 콘셉트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백화점 1곳 정도에만 입점하는 안을 추진할 생각이다.
박 회장은 0914 핸드백에 대해 “정말 좋은 소재로 정성을 담아 만들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그 가치를 알아줬으면 한다”며 “(0914의 가치가 자리잡는데) 꽤 오래 걸릴 것으로 보기 때문에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 노력의 열매가 아니라 꽃봉오리만 봐도 행운으로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