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2개월내 「기아신화」 다시 만들겠다”/김선홍 회장 심야밀착취재

◎「치욕」씻고 반드시 세계10대메이커 진입/노조 ‘1,000만원씩 갹출 회사살리기’ 제의/자동차가 인생의 전부… 국민에 면목없어『할말이 없어요.』 15일 하오 11시40분 기아그룹 여의도사옥 앞. 은행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부도방지대상업체로 지정된 기아그룹의 수장 김선홍 회장(65)은 퇴근길을 막아서는 기자에게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그냥 돌아가 달라』고 말했다. 이날 하오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동안 저녁식사도 거른 채 전계열사 사장단을 모아놓고 비상대책회의를 가진 뒤였다. 지난 70년 『대지가 얼마나 있으면 번듯한 자동차공장을 지을 수 있느냐』는 학산 김철호사장의 질문에 뛰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던 타고난 자동차인. 그해 11월부터 소하리에서 자동차공장 건설의 책임을 맡은 뒤 27년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온 기아맨. 그 심장부인 그룹빌딩을 나서면서 엔터프라이즈 뒷좌석에 기대앉은 김회장은 어느때보다 힘들어 보였다. 『1시간을 주차장앞에서 비맞고 기다렸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주시죠.』 김회장은 승용차문을 열며 동승을 허락했다.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그러나 김회장은 말이 없었다. 침울한 표정이었다. 차는 서강대교를 건너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거센 빗줄기가 차창을 때리는 가운데 희미한 한강만 쳐다볼 뿐 말문을 열지 않았다. ­오늘 긴급 사장단회의에서 뼈를 깎는 노력을 당부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방안은 없습니까. 『….』 ­은행에서 일방적으로 부도방지대상업체로 지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와 은행권에서는 경영진 퇴진까지 얘기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는데요. 『…. 정기자. 오늘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성을 되찾은 후 그때 다시 한번 만납시다. 역사가 평가해주겠죠.』 자신감일까. 아니면 포기의 심정일까. 그는 자신이 자동차산업과 기아에 쏟은 지난날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있었다. 58년 기아자동차의 전신인 기아산업 공채 1기로 입사한 그는 지난 80년대 초 위기에 빠진 기아를 「봉고신화」로 구하면서 「한국을 움직이는 전문경영인」이 됐다. 한국의 아이아코카로 불리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입사 32년만에 그룹회장에 취임하는 또하나의 신화를 창조한 주인공이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자동차를 근본으로 연관사업을 추진하되 딴 곳으로는 눈을 팔지 않겠다는 「본경영」을 내세우며 바퀴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원가가 다소 더 들더라도 완벽한 차를 만들 것을 지시, 실무진들과 마찰도 자주 빚으면서도 오늘날 「기술의 기아」를 만든 노경영자.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이날밤 비상 사장단회의에서 한 김회장의 말이 새삼스레 의미를 더한다. 『오늘은 참으로 비참한 날입니다. 이른 시일안에 방향을 잡아 오늘의 치욕을 깨끗이 설욕하고 국민에게 약속한 세계 10대메이커 진입을 꼭 이루도록 합시다.』 이날 김회장은 전화위복, 와신상담도 자주 입에 올렸다고 한 측근은 귀띔해 주었다. 김회장은 비장했다. 『우리들의 임기는 2개월 밖에 없습니다. 이 기간동안 기아를 노리는 이들의 엄청난 모략이 있을 것입니다. 기아에 보내는 국민들의 여망을 잊지말고 2개월내에 성적표를 보여주십시오.』 한 참석자는 『특히 자동차 노조위원장이 전화를 걸어와 우리가 도와줄 일이 없겠느냐며 필요하다면 노조원들이 1천만원씩 갹출해 회사살리기에 동참하겠다는 얘기를 김회장이 전할 때는 전 사장단이 눈시울을 적셨다』고 말했다. 도도한 한강물만 바라본 채 묵묵부답이던 김회장은 갑자기 옆을 스쳐가는 크레도스를 발견하자 밝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친구들이 저렇게 많이 있다』며 무거운 입을 뗐다. ­개인적으로 혹은 기업을 이끌면서 오늘만큼 힘든 적이 있었습니까. 『이건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에도 경험이 없던 건 아니지만(81년 위기에 처한 기아를 말하는 듯) 앞으로 이보다 더 큰 어려움이 닥쳐올 것입니다.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낮에 제일은행에 다녀온 직원들이 내 앞에서 목놓아 우는데…. 같이 있던 임원들이 모두 울었지요.』 ­81년 봉고신화를 지금 다시 기아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요. 『기아는 항상 신화를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일반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죠.』 ­5만5천여명의 그룹 임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힘있는 목소리로)잘 할 겁니다. 우리 기아사람들 이심전심으로….』 김회장은 목이 메인듯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정부와 은행권에 대해 할말이 많을 텐데요. 『앞으로 다 도움받아야 할 분들입니다. 무슨말을 하겠습니까. 역사가 평가해줄 겁니다. 역사가….』 서울 송파구 신천동 김회장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5분. 장미아파트라는 예쁜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건물이었다. 지난 79년 회사에서 분양받아 20년 가까이 살아온 집이라고 했다. 국내 8대기업 총수에서 남편으로, 2남2녀의 아버지로, 손자(1명)와 손녀(3명)의 할아버지로 돌아가는 자리였다. 김회장은 운전기사가 받쳐주는 우산을 물리친 채 현관으로 들어섰다. 『이렇게 늦게까지 댁에 못들어가시고. 내일은 어떻게 할거요. 기사아저씨 피곤하겠지만 댁까지 모셔드리세요.』 생각보다 훨씬 커(1백71㎝)보이는 김회장은 고개를 숙인채 2층계단으로 올라섰다. 『지금은 만감이 교차해서 무슨 말씀도 하실 기분이 아니실 겁니다.』 오랫동안 김회장을 모셔왔다는 운전기사가 안타까운 듯 한마디 던진다.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나에겐 차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무슨 면목으로 임직원과 국민앞에 서야할 지….』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응시하던 김회장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정을 넘긴 거리에는 계속해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정승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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