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우리경제 무엇을 할 때인가/이헌재 조세연구원 자문위원(송현칼럼)

새해 아침이 되면 누구나 한마디씩 덕담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현실과 전망을 보면 억지로라도 덕담을 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경제성장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기업들은 투자실패에도 아랑곳없이 해외로 뛰쳐나가려고 한다. 국내에는 고용기회가 줄어들고 실업률은 올라가게 된다. 선거를 앞두고 통화공급도 불안하다. 물가상승 압력이 이어지고 수출증가세는 둔화된다. 반면 지속적인 수입증가로 국제수지는 더욱 악화될 것이고, 그 결과 환율상승의 압박이 뒤따를 것이다. 기업들은 줄을 이어 쓰러지게 되고 주식시장은 그나마 여기서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이것이 고비용·저효율구조 때문인지, 아니면 경기순환의 결과인지 이 상황에서 그 원인을 따지는 것은 쓸데없다. 그것이 규제 위주의 경제운용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든, 노사관계 등 경직된 기업환경에서 나온 것이든 따져서 얻을 것은 없다. 확실한 것은 세계경제여건의 획기적인 변화가 우리 경제에 작용하지 않는 한 고통은 상당히 오래가고 대가는 치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자, 이런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이런 상황에서 당장 효과가 나타날 처방은 없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일는지 모른다. 정부는 그저 재정수지와 통화공급의 안정을 지키면서 기타 경제지표의 움직임이나 예의 주시하면 그만이다. 홍수에 대비하는 농부의 마음자세라고나 할까. 지붕이나 고치고 도랑과 둑을 매만져 본질적으로 큰물에 대비하는 일이 중요하다. 홍수가 오는 마당에 개별적인 대책이란 의미가 없다. 이 어려움을 장기적으로 21세기의 경제를 겨냥한 기반과 틀을 다시 짜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매일매일의 일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둘째, 무엇보다도 저축이 중요하다. 우리 경제가 1만달러시대에 들어섰다고는 하나 여전히 저축은 중요하다. 국제수지적자도 결국은 투자에 비해 과소한 저축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축을 경시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저축증대와 자원절약에 모든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명분론에 빠져서 깨끗한 저축과 더러운 저축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반저축적 분위기를 이끄는 금융실명제나 금융소득종합과세 등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다 고양이이듯이 정재든 오재든 저축은 다 저축이다. 저축이 주는 실질적인 혜택과 사회정의라는 명분간의 우선순위에 대한 명백한 인식이 필요하다. 더러운 돈은 힘이 들더라도 세정이나 경찰 같은 국가행정의 생산성 증대와 효율성 제고에 의해서 행위 자체를 대상으로 규제되어야지 사후에 저축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거슬러 올라가서 파헤쳐 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셋째, 혼란된 정책시그널을 경계해야 한다. 국내경제만을 가지고 어떻게든 할 수 있었던 「우격다짐의 강수」가 통할 때가 있었다. 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개방경제에 살고 있다. 정책은 국제적으로 다같이 인식하는 시그널에 주파수를 맞춰야 한다. 가령 금융기관의 내부경영혁신을 통해서 금리인하를 도모한다고 발표했다고 하자. 외국의 전문가들은 당장 이를 금융완화의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물가와 환율상승이 뒤따르는 것으로 판단하여 대응행동을 결정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초의 정책의지와는 다르게 시장혼란만 일으킬 소지가 있다. 이제는 기발하고 뾰족한 수가 통하지 않는다. 원리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넷째, 이 기회에 과감하게 부실요인을 정리해버리기로 하자. 그동안 보호체제 아래 연명해오던 기업은 그것이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구분없이 다가오는 개방시대에는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다. 은행도 발등의 불을 끄기가 다급해진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관행처럼 이자탕감이나 상환기간 연장을 통해서 이들의 부실을 껴안고 갈 형편이 못된다. 국가경제도 부실화된 은행의 파산이나 정리를 감내할 각오까지 해야 한다. 아뿔사, 덕담이나 할 세밑에 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뭐하나. 더욱이 새해는 정치의 해라고들 하는데. 모두 부질없는 소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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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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