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상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로 더 익숙한 '씨비스킷(1933~1947)'은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속에서 허우적대던 미국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던 경주마의 이름입니다. 씨비스킷은 선원들이 배에서 먹던 과자로 역시 군인들이 먹던 건빵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마 '하드택(Hard Tack·하드택의 모마 이름은 티비스킷(Tea biscuit)이었음)'에서 기인합니다. 곡물과 물 같은 간단한 재료로 만든 이러한 종류의 과자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는데 미국의 경우 초기 정착기부터 독립혁명과 남북전쟁 등 특히 어려운 시기 군인들의 주요 식량으로서 소박하지만 소중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명마 맨오워(Man o' War)의 손자이기도 한 씨비스킷은 부마 하드택과 모마 스윙온(Swing On) 사이에서 태어나 어느 정도 챔피언의 가능성을 예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체구가 작고 게을러서 초기 성적이 신통치 않았고 홀대를 받다 보니 성격도 난폭해져 경주로에서 퇴출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때 신기하게도 씨비스킷처럼 처량한 신세의 사람들, 즉 아들을 잃고 괴로워하던 마주나 고약한 성격의 조교사, 집안이 망한 기수를 만나 모두의 기적 같은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경주마로 활동하는 기간에 89전 33승, 2위 15회, 3위 1회라는 위대한 기록을 세웠던 씨비스킷에게 가장 드라마틱한 경주는 맨오워의 자마로 지난 1937년 미국의 3관마이자 최우수마였던 워에드머럴(War Admiral·1934~1959)과의 1대1 승부였습니다. 1938년 핌리코 레이스(1,909.5m)는 두 마리의 말이 실력을 겨루는 특별 경주로서 우여곡절 끝에 실패를 딛고 일어선 씨비스킷과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공가도를 달려온 워에드머럴이 대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수많은 신문과 라디오가 세기의 대결을 보도하는 가운데 씨비스킷은 혈통상 삼촌뻘이자 이름도 해군 제독인 워에드머럴을 이겼고 당당히 그해의 최우수마가 됐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정상에 오른 씨비스킷에게 동화돼 그를 응원한 국민들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대공황은 실업률이 50%에 이를 정도로 전쟁 못지않은 고난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초라했던 작은 체구의 암갈색 수말이 써내려간 신기록과 우승의 행진은 허기진 미국인들의 영혼을 자신감으로 채워줬습니다. 올해 8월 렛츠런파크서울에서 여러 국가가 참가하는 국제 경주가 열립니다. 한국의 대표 경주마가 승리해서 씨비스킷처럼 국민들의 사기를 드높여주기를 기대해봅니다. /김정희 말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