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박근혜 대통령과 지지율

한 남자가 오랜만에 맞선을 보게 됐다. 그는 상대 여자에게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 가능한 한 남자답게 보이려 했다. 그런데 여성 쪽 반응이 의외로 차가웠다. 생각과 달리 마초 같은 남자보다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남자를 선호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맞선이 들어오자 이번에는 정반대로 전략을 바꿨다. 밥을 시키든 영화를 보러 가든 먼저 여자 쪽 의사를 물으며 마냥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어라? 이번에도 퇴짜였다. 여자는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자분이 전혀 박력이 없네요. 저는 상대가 남자답게 리드해주기를 원했거든요."

박근혜 정부가 건강보험료 개편을 사실상 백지화했다가 연내 재추진으로 다시금 선회했다고 한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올해는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밝힌 지 며칠 만에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언론에서는 원칙도 없는 무소신 행정의 극치라고 비판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런 행태를 보인 데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다름 아니라 '연말정산 파문'으로 놀란 박근혜 정부가 건보료 개편안에 지레 겁부터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연말정산 과정에서 고소득층의 반발이 의외로 거센 데 질겁한 박근혜 정부였다. 이런 판에 고소득 직장인 및 피부양자들에게 보험료를 추가로 물리는 건보체계 개편안까지 내밀 경우 더 강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판단에 사실상의 백지화로 후퇴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의외였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더니 고소득층의 조세부담이 늘어 화가 치민다던 여론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소득층의 부담을 늘리는 개편안을 포기하겠다고 했더니 더 큰 분노를 표출하는 것 아닌가. 이쯤 되면 여론의 분노만큼이나 박근혜 정부로서도 당혹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도대체 정부가 어떻게 처신해야 옳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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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의 단편소설 '내일'에서 첫 장면은 여자 친구의 뜬금없는 절교 선언으로 시작된다. 남자가 거듭 이유를 물어도 침묵하던 여자는 나중에 편지로 사연을 알려온다. 남자가 환히 웃는데 갑자기 앞니 사이에 끼인 고춧가루가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자신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던 애정 심리가 와르르 무너져버렸다는 편지 끝의 췌사는 굳이 듣지 않아도 좋다. 문제는 소설의 후반부다.

세월이 한참 지난 어느 날 남자는 명동 길을 걷다 우연히 옛 여자를 먼발치에서 발견한다. 여자는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막 음식점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가 갑자기 손수건을 꺼내 남자의 입 가장자리를 정성스레 문지른다. 그곳에 묻어 있는 고춧가루를 닦아주는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춧가루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여자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왜 그럴까. 박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진은 지금쯤 속된 표현인 '멘붕'의 표정으로 소설 '내일'을 읽는 심정일 것이다.

왜 그럴까. 해답은 박 대통령이 자신이 표방하는 원칙 정치와 달리 의외로 포퓰리스트적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데서 풀어야 한다. 포퓰리즘은 본질에 충성하기보다 상대적·현상적 평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소신 정치는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 안에는 필요하다면 대중의 돌팔매조차 피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내포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가치 있는 정치보다 대중의 칭찬을 받고 싶다는 데 욕심이 더 기울어 있는 듯하다.

대중은 쉽게 열광한다. 지금 당장의 혜택만 요구하려 든다. 그래서 쉽게 지친다. 박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박수를 보내다가도 자기 주머니가 가벼워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 매몰차게 돌아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 대통령에게는 지금이 바로 그런 어려운 시기다. 요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매스컴마다 난리법석이다. 그러나 지지도란 오를 때도 있고 내릴 때도 있는 법이다. 이럴 때일수록 흔들리지 않고 표적을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에서 그토록 비판하고 비방을 쏟아내도 지지율이 30% 언저리에 걸쳐 있다면 여전히 기회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직 3년이 남아 있다. 지지율이 10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다. 퇴임 후도 있다. 개혁은 늘 당대 지도자의 희생을 요구한다. 성공의 열매를 향유하는 것은 후대 정치인이게 마련이다. 선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모델 역시 생존 당시와 사후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어떤 평가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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