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여신이 가장 많은 우리은행의 지난 4월 한달 순이익이 110억원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STX와 쌍용건설 등 대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쌓아야 할 대손충당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특히 회생 기대가 점쳐졌던 STX팬오션이 전격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쌍용건설까지 법정관리 위기에 몰리면서 수천억원의 대손비용을 추가로 쌓게 됐다. 여기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예대마진이 더 줄어들면서 순익 하락폭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
9일 금융계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4월 순이익이 대기업 부실에 따른 대손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110억원 수준으로 추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은행은 1ㆍ4분기 순익이 전년 동기 5,925억원에서 수직 하향하면서 1,921억원까지 추락했는데 이런 추세라면 2ㆍ4분기 또다시 순익이 절반 이하, 최악의 경우 훨씬 더 안 좋은 상황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은행은 지난주 STX팬오션의 법정관리 신청 결정으로 STX팬오션에 빌려준 950억원가량의 채권액을 고스란히 대손충당금으로 쌓는 등 5월 실적이 더 좋지 않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STX그룹 구조조정을 이끄는) 산업은행이 당초 STX팬오션 인수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가 돌연 법정관리로 바꾸는 등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인 신속성과 방향성이 흔들리면서 대기업 구조조정이 예측 불가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이러다 보니 은행권이 소신 있게 구조조정에 동참하지 못하고 부실만 쌓여가며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순익이 급감한 것은 저금리 체제로 예대마진이 줄어든데다 STX 등 주요 기업의 부실에 따른 대손충당금이 주요 이유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우리은행은 기업대출 부실에 따른 이익감소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대주주로 있어 기업지원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은행은 성동조선 지원에도 발을 빼려다 당국의 입김에 이를 접었다. 최근에는 포스텍에 대출해주면서 담보로 갖고 있던 STX 주식을 처분해 대출금을 회수하려다 금융감독원의 제지를 받은 상태다.
은행권의 부실은 이제부터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STX그룹의 은행권 부채는 줄잡아 13조원에 이른다.
현재는 STX조선해양ㆍSTX중공업 등 조선업 위주의 주력 계열사들이 자율협약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들 회사에 빌려준 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쌓을 필요가 없지만 STX팬오션의 사례처럼 법정관리행 등으로 돌아설 경우 은행권이 수조원대에 이르는 부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면 은행은 빌려준 채무 전부를 대손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쌍용건설도 은행권의 대표적인 우환거리다. 은행권은 2월 쌍용건설에 대한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이후 1조원 안팎에 달하는 신규 대출, 기존 대출의 출자전환 등을 단행했다.
이는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에 은행권이 갖고 있던 대출ㆍ보증규모인 1조3,000억원대와 맞먹는 수치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워크아웃 및 법정관리가 진행되고 있는 22개 건설사가 퇴출 수순을 밟게 되면 은행권은 1조3,00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가뜩이나 조선ㆍ건설ㆍ해운 등 주요 업종의 기업 부실로 순익이 줄어들고 있는데 예대마진 하락 등으로 구조적으로 은행권 수익구조가 악화하고 있어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실제로 신한금융은 올 1ㆍ4분기 4,81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전년 동기(8,273억원)에 비해 41.8%나 감소한 수치다. 순이자마진(NIM)이 하락한데다 부동산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대손충당금 증가로 대손비용이 크게 늘어났는데 다른 지주회사들도 반토막 수준으로 이익이 급강하하고 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대기업 대출의 부실 확대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은행권의 부실 확대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최 금감원장은 지난달 20일 "거시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거액 부실 여신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리스크 및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기업 구조조정을 상시 추진해야 한다"며 "비이자이익 확충 및 수익기반 다변화를 통해 이자이익 중심의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경비절감 노력 등으로 경기침체 지속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