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해양이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한 동안 봄기운이 감돌던 회사채 시장에 또 다시 찬물을 끼얹고 있다. 지난해 웅진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회사채 시장은 최근 발행금리 하락과 물량 품귀 현상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조금씩 살아나는 듯 했다. 하지만 STX그룹의 유동성 리스크가 또 다시 불거지면서 하위등급 기업들에 대한 회사채 투자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STX그룹의 재무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일제히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한국신용평가가 이날 STX조선해양을 비롯해 STX팬오션, STX엔진, STX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2단계 강등한 것을 비롯해 한국기업평가도 전날 STX, STX조선해양, STX팬오션, STX중공업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끌어내렸다. 등급전망도 ‘부정적’을 부여해 추가 하락가능성을 열어놨다. 한 단계만 더 강등되면 STX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떨어지게 된다. 나이스신용평가도 STX와 STX조선해양의 장기 전망을 기존 BBB+(안정적)에서 BBB+(하향검토)로 조정했다. 이 여파로 이날 STX조선해양은 이틀째 하한가를 기록했고 STX팬오션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주들도 급락세가 지속됐다.
STX조선해양이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한다 하더라도 위기 탈출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NH농협증권에 따르면 STX그룹의 총 차입금(해외법인 포함)은 13조4,000억원이며 올해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물량은 1조1,000억원, 5월에만 5,000억원에 달한다.
이경록 NH농협증권 연구원은 “채권단과의 계약이 성사되겠지만 1년 단위 채무상환 유예 정도에 그쳐 급한 불만 끄는 것에 불과할 것”며 “신용등급마저 강등돼 앞으로 회사채 발행을 통한 채무 상환도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STX그룹 사태가 BBB등급의 회사채 투자 심리를 경색시켜 ‘제2의 웅진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연초 이후 회사채 시장은 지난해 웅진그룹의 법정관리 여파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최근 국고채 금리 하락으로 우량 기업은 잇따라 저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살아날 조짐을 보였다. 또 일부 고금리 회사채들은 탄탄한 소매 수요에 힘입어 예상외로 흥행몰이에 성공하기도 했다. 실제로 올해 3월 1,000억원 규모로 7.8%에 발행된 두산건설(BBB+) 회사채는 현재까지 동양증권, SK증권, 한화투자증권 등을 통해 리테일 물량으로 250억원 가량 팔려나갔다.
하지만 STX그룹 사태가 발발하면서 그나마 살아나고 있던 투자 열기가 한 풀 꺾이는 게 불가피해졌다. 유태인 동양증권 연구원은“A급 이하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AA급 이상 우량채로만 자금이 몰리는 등 악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경록 연구원도 “최근 저금리 상황과 맞물려 BBB등급의 기업의 회사채까지 투자심리가 확대될 조짐이 보였다”며 “하지만 STX그룹 사태로 업황이 부진한 하위등급 기업의 경우 자금조달 어려움과 스프레드 확대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은행권도 STX리스크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해 은행채 투자 심리도 약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TX그룹이 제1금융권에 물린 신용공여액은 11조6,144억원에 이르며 이에 따라 은행들이 쌓아야 하는 충당금 예상 설정액은 최대 2조5,749억원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STX조선해양이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하면 회사채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일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TX조선해양이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했지만 일반적으로 회사채 투자자는 은행과 달리 자율협약을 맺는 채권단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럴 경우 STX그룹이 회사채 상환에 더 집중하게 돼 회사채 투자자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