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한국바둑의 위기


지난 1980년 12월에 열린 왕위전 결승 5번기. '잡초류'서봉수 7단이 '전관왕'조훈현 8단과 바둑판을 마주했다. 그동안 조 8단에게 눌려온 서 7단은 제 2국에서 기상천외한 수를 들고나왔다. 그 유명한 '흉내바둑'. 이것으로 서 7단은 독주하던 조 8단을 무너뜨렸다. 일본 유학파가 아닌 순수 한국파가 바둑계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한때이기는 하지만 세계기전이 TV로 생중계되고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호시절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바둑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첩자인 승려 도림과 바둑친구를 맺었다는 얘기가 삼국사기에 담겨 있다. 신라에도 고수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룰을 가진 현대바둑은 1945년 11월 조남철 초단이 서울 남산동에 한성기원을 세우며 시작됐다. 이후 1954년 1월 한국기원이 발족하면서 '361로(路)의 수담(手談)'은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관련기사



△우리 바둑이 1,000만명에 가까운 애기가들을 확보하기까지는 일부 걸출한 인재들이 큰 몫을 했다. 1980년대 '천재'조훈현와 '국제전의 사나이'서봉수는 한국을 바둑 변방국에서 중심국으로 바꿔놓았고 1990년대 41연승 신화의 '돌부처'이창호와 '세계최고 공격수'유창혁은 1993년부터 1995년까지 4대 국제기전 8차례 싹쓸이를 이끌며 한국 바둑의 전성기를 열었다. 2000년대 '센돌'이세돌의 등장은 중국의 맹렬한 추격 속에서도 세계최강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런 한국바둑이 최근 위기에 빠졌다. 이달 중순 LG배 16강전에서 전원 탈락한 데 이어 지난주 말에는 이세돌 9단마저 춘란배 결승에서 천야오예(陳耀燁) 9단에게 져 올해 열린 국제기전 4개를 모두 중국에게 내줬다. 1990년대생인 '90후'로 세대교체를 한 중국과 달리 각종 학원과 게임에 청소년들을 빼앗기며 극소수 '천재'들에게 기대는 한국 바둑계의 현실이 안타깝고 두렵다. 사회와 경제를 넘어 문화, 취미생활에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불균형의 단면 같기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