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차명거래엔 “종이호랑이” 불과/허점 드러난 금융실명제

◎“검은 돈 차단” 도입취지 벌써 무력화/정부 “현제도로 충분” 개선의지 없어지난 16일 서울고법이 내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실명전환한 일부 대기업총수와 기업인에 대한 무죄판결을 계기로 금융실명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행 금융실명제의 허점이 판례로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는 현행 제도가 충분하다며 제도개선에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않아 개혁의지가 벌써 퇴색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실명제의 허점은 불법행위를 목적으로 한 차명거래에 대해 현행 실명제가 완전히 무력하다는 점이다. 이들 기업총수는 노씨가 기업체 등으로부터 뇌물로 받은 돈을 돈세탁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이름을 빌려줬는데 아무런 처벌도 받지않게 된 것이다. 현행 실명제가 돈세탁에 대한 규제조항이 없는데다 이번 판결로 차명거래가 사실상 합법화된 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금융실명제가 「금융기관의 거래자 확인의무」라고 강변하고 있다. 돈의 실소유자와 관계없이 금융기관 직원이 창구에 온 사람의 신분증만 확인하면 되는 제도라는 것. 따라서 예금주가 남의 이름으로 차명을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이같은 정부의 입장에 따른 것이다. 금융기관이 형식적 확인만 하면 되는데 이름을 빌려준 기업인이 무슨 죄가 있느냐는 내용이다. 하지만 검찰은 지금까지 이들처럼 이름을 빌려준 사람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왔다. 국민정서와 법상식을 기초로 할 때 이들의 행위가 용납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실명제에 마땅한 처벌규정이 없으므로 차명거래를 견제하기 위해 그동안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왔는데 앞으로는 이마저 불가능해졌다. 재경원의 해석이 같은 정부부처인 검찰과 실명제의 발목을 잡은 결과다. 정부는 돈세탁방지법 제정에 대한 여론을 한은의 금융기관직원에 대한 돈세탁금지규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제 이조차 허구로 드러난 셈이다. 보다 핵심적인 문제점은 「검은 돈의 흐름을 차단하고 형평과세를 달성한다」는 실명제와 종합과세라는 양대 개혁조치의 도입취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실명제의 완결판은 금융소득종합과세다. 실명거래를 통해 개인의 금융자산 내역이 확인돼야 종합과세가 가능하다. 만연된 차명거래가 이번 판결이후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종합과세조차도 무기력화될 처지가 됐다. 정부는 조세회피 목적이 있는 차명거래의 경우 조세범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조세범처벌법은 파렴치범에 한해 일년에 몇차례정도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어서 사회적 안정을 고려할 때 쉽사리 남발할 수 없는 수단이다. 결국 이같은 사태의 원인이 차명거래 합법화에 있으므로 차제에 차명거래를 규제하는 내용의 대체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재경원은 차명거래를 불법화하는 것은 일반인의 상거래나 가계거래 등을 규제하는 결과로 모든 국민을 범법자로 만드는 셈이어서 도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김&장법률사무소의 박진순 변호사(경실련간사)는 개인의견을 전제로 『차명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를 두는 수단 등으로 법률안 마련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금융거래관행 등이 함께 바뀌어야지 실명제 내용의 수정만으로 모든 것을 달성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양대개혁을 문민정부 최대의 치적으로 자랑하면서 개혁의 내용이 부실화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그동안 개혁이 짜임새없이 즉흥적으로 추진됐다는 반증이라는 주장도 있다.<최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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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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