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시장의 탐욕' 제어 안되네

미국 금융규제 60% 이상 시행 안돼 위기 부른 대마불사 관행 여전<br>핫머니 규제 공조도 수면 아래로

# 올 6월 월가의 투자은행(IB)인 JP모건체이스와 모건스탠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인 합성부채담보부증권(CDO)을 발행하려다 포기했다. 여론의 뭇매가 무서운 게 아니라 한번 된통 당했던 투자가들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 지난 2010년 골드만삭스 등 월가의 대형은행들이 파생상품을 이용, 그리스 정부가 유럽연합(EU)의 감시를 피해 수십억달러의 재정회계상 분식을 은폐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폭로돼 파문을 일으켰다. 수수료에 눈이 어두워 그리스 재정위기가 곪아터지는 데 일조한 것이다.


5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월가의 현재 모습이다. 탐욕의 월가는 이번 아시아 금융위기도 부채질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은 2%(810억달러)가량 감소했다. 인도네시아가 무려 13.6%나 줄었고 터키와 인도도 각각 12.7%, 5.5% 급감했다.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위기를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증발하고 있는 셈이다. 월가의 핫머니는 신흥국 경기가 좋을 때는 밀물처럼 밀려가 자산 거품, 통화 절상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고 이상 징후가 보일 때는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들 투기자본의 폐해를 막기 위한 국제 공조체제나 토빈세 도입 등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잠깐 화두로 부상하다 이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올 7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회의의 코뮤니케에서도 빠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말 "이머징 국가의 자본통제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브라질 등 신흥국의 불만을 마지못해 수용한 것에 불과한 실정이다. 중국 등 브릭스(Brics) 차원에서 금융안전망을 구축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관련기사



미국 등의 금융규제 움직임도 연봉 및 보너스 규제, 금융 건전성 강화, 소비자 보호, 파생상품 투자 제한, 금융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등에 한정될 뿐 투기자본 규제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나마 '탐욕의 월가'를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며 이미 도입한 법안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2010년 7월 야심차게 도입했던 금융개혁법, 이른바 도드-프랭크 법안이 월가의 로비에 밀려 용미사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게 단적인 사례다. 법률회사인 데이비스폴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금융개혁법에 담긴 규제 조치의 60% 이상이 법에서 정한 시한을 지키지 못한 채 미뤄지고 있다.

금융위기를 부른 대마불사의 관행도 여전하다. 여ㆍ수신 등 은행 고유의 업무와 투자 업무를 구분 짓는 이른바 '글래스-스티걸법' 부활 논의도 금융위기 초기에는 급진전되는 듯 했으나 최근에는 의회 내에서 입씨름만 거듭하고 있다.

잠깐 흔들리는 조짐을 보였던 월가의 금융 권력도 굳건한 실정이다. JP모건체이스ㆍ골드만삭스ㆍ씨티 등 미 3대 투자은행(IB)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33%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반면 같은 기간 유럽 IB의 점유율은 20%나 줄었다. 벤 버냉키 의장이나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은행장 등 연준 인사들마저 "정부 지원을 받아 회생한 대형은행들이 오히려 리스크 높은 투자를 일삼고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할 정도다.

하지만 막강한 로비력과 현금 동원력을 앞세워 기존의 금융규제 법안마저 좌초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특히 월가는 미ㆍ유럽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빌미로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협상 안건에 금융서비스 분야를 포함시키는 물밑작업을 통해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화된 미국의 금융 규제 법안을 완화시키겠다는 의도다.

최형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