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벌써 IMF(국제통화기금) 체제를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데는 국내 영화 수입사들의 역할이 지대하다. 그것이 진짜 한국경제의 활력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 이상 반가울 일은 없을듯. 그러나 수입을 둘러싸고 재현되고 있는 과당경쟁 탓이라면 문제는 다르다.국제영화시장에서는 이미 지난 2월 미국에서 열린 영화 견본시장 「아프마」(AFMA) 때부터 이상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 영화수입상들이 얼마나 열을 올렸던지 현지 언론들이 『한국이 이미 IMF를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였다. 이런 흐름은 지난 5월 칸 필름 마켓에서도 예외없이 이어져 「버라이어티」등 세게 유명 연예전문지들이 『한국 수입상들이 몰려온다』는 기사를 연일 내보냈을 정도였다.
외화의 고가 수입에 앞장섰던 삼성, 대우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발을 빼자 이번에는 금융자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 물론 과거 수백만 달러를 호가했던 수입가격대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수십만으로 단위는 뚝 떨어졌다. 문제는 수입상들이 자제했으면 그 절반 값 이하로 수입할 수 있었다는데 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뱀파이어 영화 「슬레이어」는 호러물 전문 감독 존 카펜터의 흡혈귀 영화로 영화 전편이 잔혹의 극치를 달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하도 유사한 선배 영화가 많이 나와 잔혹한 장면도 잔혹이라는 이미지만 남길뿐 그다지 신선한 맛은 없다.
이 영화는 삼부 파이낸스가 처음으로 수입한 영화인데, 지난 2월 아프마에서 28만달러를 들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3억3,000만원선. 현지 언론들이 깜짝 놀랄만한 가격이었다. 3류 B급영화인 탓이었다. 마케팅 비용까지 합치면 6~7억원 정도의 지출이 예상되는데, 비디오 판권 2~3억원을 빼면 서울에서 15만명은 동원해야 본전을 챙길 수 있다.
수신금리가 20~30%대인 파이낸스사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도박 한 판을 벌인 셈이다. /이용웅 기자 YY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