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조세회피처로 2800조 빠져 나갔다] 영국·싱가포르·홍콩이 탈세 관문… 라부안은 기업인 단골

법·규제장치 까다롭지 않아 페이퍼컴퍼니 하루면 설립<br>사법권·행정력 행사에 한계… 탈세혐의 알아도 속수무책



조세피난처로 송금하는 돈의 규모는 10년간 6배로 불었지만 보내는 국가는 사실상 그대로였다. 과세당국이 연일 역외탈세 척결을 말하지만 전세계 조세피난처에서 벌어지는 일을 막는 것은 역부족임을 드러낸다.

국내 사법권이나 행정권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범죄이기 때문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홍콩만 해도 조세협정을 맺지 않아 과세 관련 정보를 입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2003~2012년 조세피난처 62개국에 보낸 외화송금 내역을 분석한 결과 10년 전 상위 10개국의 10년 후 순위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영국ㆍ홍콩ㆍ싱가포르가 10년간 1~3위를 오르락내리락한 것이다.

2003년은 홍콩ㆍ영국ㆍ싱가포르ㆍ스위스ㆍ필리핀ㆍ캐나다ㆍ네덜란드ㆍ룩셈부르크ㆍ말레이시아(라부안)ㆍ아일랜드 순이었다.

2012년은 영국ㆍ싱가포르ㆍ홍콩ㆍ네덜란드ㆍ스위스ㆍ룩셈부르크ㆍ캐나다ㆍ아일랜드ㆍ말레이시아(라부안)ㆍ케이맨제도로 나타났다.

1위였던 홍콩의 순위가 3위로 내려가고 4위였던 필리핀이 순위 밖으로 밀려났으며 네덜란드가 7위에서 4위로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1993년부터 2013년 3월까지 국내 법인 및 개인의 해외직접투자액 역시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입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 20년간 해외직접투자액은 싱가포르(482억달러), 말레이시아(385억달러), 케이맨제도(368억달러)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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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5일 "영국과 홍콩ㆍ싱가포르는 세계적인 금융허브이며, 특히 아시아에서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돈이 도는 관문"이라면서 "법인을 설립한 후 이를 통해 다른 곳에 돈을 보내거나 새로운 법인을 세워 거래하는 경우 혹은 펀드에 투자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규모나 금융산업 발전 측면에서 상위가 아닌 말레이시아의 라부안이나 케이맨제도 등은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지역이다. 제주도의 20분의1 크기의 말레이시아 연방직할령인 라부안은 국내외 주요 기업가의 단골 역외탈세 지역으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곳에서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 설립은 단 하루 만에 완료될 정도로 법 규제장치가 까다롭지 않다. 금융거래를 위한 각종 통신ㆍ생활시설을 지원한 것은 물론 금융거래 내역에 대해서는 철저한 비밀에 부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최근 국세청이 영국을 통해 대대적인 자료를 입수했다고 밝힌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상대적으로 한국인의 비중이 낮다. 한 전문가는 "영국 정부가 자국의 입장에서 탈세범을 잡으려고 만든 자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조세피난처에 대한 역외탈세는 2011년 해외금융계좌신고제가 도입되면서 비로소 일부 규모가 파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외탈세 혐의를 잡았다고 해도 해당 국가의 거부로 재산을 압류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가 권혁 시도상선 회장의 역외탈세 의혹이다. 국세청은 권 회장에게 무려 4,000억원가량의 역외탈세 혐의를 갖고 있다.

이를 추징하기 위해 국세청은 2011년 홍콩에 등록된 시도상선 자회사인 시도카캐리어서비스(CCCS)가 세금 1,300억원을 체납했다며 우리은행 홍콩지점에 있는 CCCS의 예금계좌를 압류했다. 하지만 권 회장은 홍콩 법원에 소송을 냈고 압류중지 결정을 받아냈다.

이후 권 회장이 계좌에 들어 있던 485억여원을 전액 인출하자 국세청은 예금을 확보하지 못한 데 대해 우리은행에 책임이 있다며 대신 납부하라고 소송을 냈지만 그마저 패소했다.

과세당국의 한 관계자는 "해외는 국내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직접 세무조사를 할 수 없고 자산을 압류할 수 없다"면서 "다만 조세협정을 맺은 나라로부터 혐의자의 계좌 거래내역 등의 자료를 받거나 현지에서 간접적인 정보를 입수한다"고 설명했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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