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국민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말문이 막힌다. 차기 기업은행 감사 인선 얘기다. 차기 기업은행 감사로 내정됐다는 이상목 전 청와대 비서관은 "내가 예전에 중소기업 대표를 할 때 은행 거래를 많이 해서 은행을 잘 안다"며 감사로서 역량이 충분하다고 설명한 것으로 금융권 관계자가 전했다. 본지가 22일자에 보도했듯 정부는 이번주로 임기가 만료되는 현 기업은행 감사의 후임으로 이 전 비서관을 내정했다. 물론 이 전 비서관이 금융계 시각과는 달리 금융 시스템과 은행 경영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또 그가 중소기업인 입장에서 외부인의 눈으로 기업은행이 잘 커나가도록 이끌 수 있는 내공을 갖고 있느냐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은행 거래를 많이 했기 때문에 감사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라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은행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이 돼서는 안 된다. 현실이 될 수도 없다. 금융은 어느 업종보다 전문성이 중요하고 국가 경제나 산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일반 공공기관이라면 외부인의 눈으로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금융은 다르다"며 "아무리 국책기관이라도 금융 문외한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업은행 노조도 반발하고 나섰다. 기업은행 노조는 22일 성명서를 내고 "금융감독원 인사는 전문성이나마 기대할 수 있지만 청와대 인사는 그마저도 없다"며 "기업은행은 우리나라 중소기업 금융을 책임지고 있는데 아무나 임원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도 큰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던 게 전관은 아니지 않느냐"고 할 정도다. 금융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은 국민이 정부에 경영을 위탁한 것이지 정권 인사를 위한 나눠먹기식 자리를 내주라고 맡긴 게 아니다. 대통령이 금감원에 낙하산 인사가 문제라고 해놓고 정작 측근 인사를 내려보낸다면 국민들이 뭐라고 할 것인가. 이게 바로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사회'인가. 국민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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