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노조와 사회적 책임


현대자동차 노조가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 자녀를 우선 채용할 수 있도록 한 올해 노사협상 요구안이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기아자동차도 근로자를 신규 채용할 때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1차 합격자의 25%를 장기근속자 자녀에게 할당하고 면접에서도 가산점을 줘서 우선 채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장기근속자 자녀들은 형식적인 입사시험을 치르면 아버지의 일자리를 세습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만큼 다른 취업 지망자들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기아차는 2005년에도 노조 간부가 취업 쿼터를 할당받아서 수천만원씩에 거래했던 사실이 드러났었다. 최근 들어 취업난이 극심해지자 그동안 노조 간부들이 독식하던 취업 쿼터가 이젠 장기근속자에게도 할당되는 것 같다. 이 같은 채용 비리의 진보를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까. 현대차 노조는 고용 세습이 기아차ㆍ한국GM 등 많은 단위사업장에서 전부터 적용돼왔는데 새삼스럽게 비난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고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대기업 강성노조 요구 사회정의 위배


이런 일이 허용된다면 대학도 학생이나 교수를 뽑을 때 제 자식을 우선 뽑도록 허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더 이상 비리가 비리가 아니며 부패가 부패가 아닌 세상에 사는 것 같다. 그나마 비정규직에게는 이런 혜택이 돌아가지도 않는다. 노조의 힘은 높은 도덕성과 연대의식에서 나온다. 그럼으로써 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근로자의 10% 내외에 불과한 노조가 노동시장을 흔들 뿐 아니라 일부 노조의 부패는 도를 넘었다. 일부 힘센 노조가 끝없이 벌이는 이기적인 불법 투쟁과 그로 인한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문제이다. 근로계층 간의 끈끈한 연대는 간 데 없고 노노 갈등만 심화된다. 결국 노조 대 비노조, 정규직 대 비정규직, 장기근로자 대 청년실업자 간의 극심한 대립을 빚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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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측은 노조가 고용 세습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위협하기 때문에 노조의 요구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사 간의 합의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이런 방식으로 뽑는다면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업의 경쟁력이 매우 걱정스럽다. 그동안 이들 기업에 취업하려고 문을 두드렸던 수많은 취업 지망자들의 분노와 실망은 어떻겠는가. 이들 공개채용의 경쟁률이 수백 대 1이라지만 이것도 속임수에 불과하다. 대기업ㆍ공기업 등이 말로는 인재 제일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정실인사ㆍ청탁인사 등 각종 채용 비리가 적지 않다는 비판이 있는데 게다가 고용 세습까지 보장된다면 우리의 노동시장은 희망이 없다.

법원도 대를 이어 일자리를 보장한 현대자동차 노사의 단체협약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울산지법은 현대차 단체협약 조항은 사용자의 인사권을 침해한 것이며 단체협약도 사법상 일반 원리나 사회질서에 위배되면 무효라고 못박았다. 우리가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자녀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도 자녀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절실한 소망을 기업과 노조가 채용 비리로 농락해도 되는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 해서 교육 개혁, 대학 개혁을 논의하고 있지만 이에 앞서 기업의 채용구조 개혁이 더욱 시급한 것 같다.

고용관행 개선 경제민주화 동참해야

일부 대기업의 강성노조는 경기가 좋든 나쁘든, 회사가 이익을 냈든 어려움에 처해 있든 해마다 회사의 발목을 잡고 온갖 혜택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 때문에 열악한 근로 조건으로 고생하는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들에게는 고통과 절망이 가중된다. 일부 노조의 이기적이며 비윤리적인 투쟁은 우리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도대체 경제민주화란 무엇이며 동반성장은 무엇인가. 재벌만 때려잡으면 경제민주화가 되는가. 이제 노조는 더 이상 보호를 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그런 만큼 노조도 기업에 못지않게 사회적 책임과 경제민주화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 우리 사회가 진정 경제민주화를 추구한다면 부당한 고용 관행부터 개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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