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함경남도 신포시 금호지구에 들어서는 경수로의 건설부지 공사가 오늘(19일) 드디어 착공된다. 지난 94년 12월 북한의 핵 투명성 확보를 위한 북·미 제네바 핵 협상이 타결된 이후 3년8개월만이다.착공식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주최한다. 우리측에서는 KEDO대표단 80여명을 비롯, 초기공사 참여기술자 88명, 한·미·일 취재기자 27명 등 2백여명이 참석한다. KEDO대표단과 취재진은 선박편으로 이미 동해항을 출항했다. 북한측에서는 원자력관계자와 경수로 협상을 맡았던 외교부 당국자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관계에 획기적 전기
이번 경수로 착공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착공식은 비록 부지건설 준비공사의 첫 삽질에 불과하지만 경수로의 마무리에는 최소한 8년이 소요된다. 여기에 남북관계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기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
경수로는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대안이다. 미국 등 핵 확산 금지조약(NPT) 주도국들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 그동안 북·미간 협상에서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또 건설비용을 대부분 한국정부에 떠넘기기식으로 나오는 등 개운치 않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고 한반도에서 핵 위협을 제거한 것은 큰 성과다.
경수로사업의 타임테이블은 착공식에 이어 올해중 경수로 1기공사에 들어간다. 98년 경수로 2기공사 착공, 2003년 1기 완공, 2004년 2기 완공 등으로 되어있다. 사업비는 부지공사비 4천5백만달러를 포함, 총 52억달러로 추정된다. 재원은 한·미·일 3개국이 분담키로 돼있으나 분담률을 놓고 서로 생각이 다르다. 미국은 북한에 중유비용을 제공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한푼도 내놓을 뜻이 없음을 명백히 하고있다. 일본은 10억달러이상은 곤란하다는 자세다. 우리정부는 사업비의 60%이상은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어떻든 우리나라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할 형편이니 적어도 30억∼35억달러 정도는 내놓아야 한다. 경기불황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에 주름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국민의 부담이다.
경수로사업에는 여의도의 3배에 달하는 2백60만평의 부지에 남북한 연인원 1천만명, 1일 최대 7천명이 동원된다. 오는 2000년께 본공사가 본격화할때는 최고 5천명의 우리 기술자가 파견된다. 지난 45년 남북이 분단된 후 남북이 서로 손을 맞잡는 최초의 대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경수로가 완공되기까지 우리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물자가 북한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남북한간 공존의 장이 마련되는 셈이다.
○북한도 개방에 나서야
지금 북한은 식량난으로 세계 곳곳에 구호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개방의 문은 전혀 열 생각이 없다. 체제붕괴가 두려운 탓이다. 최근들어 급증하고 있는 북한 탈주민들의 한결같은 탈출동기도 첫째가 굶주림이다. 김정일을 비롯한 공산당 간부들은 이데올로기 유지를 위해 주민들이야 굶든 말든 상관이 없다. 이미 이데올로기는 역사의 유물로 사라진지 오래인데도 말이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긴장을 강요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전쟁불사론도 외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시점에서 갖는 경수로 착공식은 그 의미가 크다. 우선은 남북한 관계의 변화 가능성이다. 한국의 기술자들과 북한의 노동인력이 얼굴을 맞대고 일할때 북한 주민들이 받는 충격은 쉽게 상상이 간다. 은행이나 의무시설 등의 지원인력도 체재하게 된다. 정기적인 운송수단도 필요하다. 어쩌면 북한으로서는 강제적으로 개방을 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북한이 경수로를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까닭이다.
경수로사업의 첫 삽은 뜨지만 본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직도 걸림돌이 많다. 착공준비에만 열중하느라 한·미·일 3개국간에 재원분담률이 확실히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재원조달 방안도 국민경제에 주름이 가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KEDO와 북한간에는 이미 체결된 6개 의정서외에 앞으로 7개 의정서를 더 체결해야 한다. 훈련프로그램, 인도일정과 북한의 의무사항이행, 경수로 가격조건, 사용후 연료처리 등이다. 이 의정서는 대부분 북한측 의무사항이기 때문에 협상에는 난관이 예상된다.
이제 북한도 성실한 자세로 나와야 한다. 지구촌시대에 혼자서만 고립돼 살 수 없다.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신뢰감을 보여 주어야 할때다. 경수로 사업이 남북한간 이질감을 해소하고 통일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